우렁찬 함성이 드높게 울리고, 붉은 물결이 파도처럼 일렁인다. 넓은 운동장에도 분주한 거리에도 빨간색이 너울거린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월드컵축구경기가 한창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응원단의 중심 색깔은 빨간색이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붉은 셔츠를 입고, 머리띠와 두건을 두르고서 목이 터져라 응원을 한다. 비오는 날은 비옷까지도 빨강색으로 입고 모든 응원 도구도 역시 빨간색이다. 우리는 그들을 '붉은 악마'라 부른다.
빨간색은 신성을 뜻하며 주술의 의미도 있다. 그래서 신을 모시는 제단이나 제복, 기구들에도 붉은 빛깔이 많다. 동짓날에 팥죽을 쑤어 먹어 액막이를 하거나, 향교 앞에 홍살문을 세워 두는 이유가 그것이다. 부적의 색깔이 빨간색인 것도 같은 이치(理致)다. 축구 경기 도중 태극전사들이 공격을 할 때 붉은 악마들이 요동을 치며 응원을 하면, 상대편 혼령들의 방해마저도 막아 우리 전사에게 힘을 실어 주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곤 한다.
붉은빛은 으뜸, 열정, 기원, 사랑, 생명, 생산을 나타내기도 하며 색깔 중의 제왕이다. 삼원색 중에 첫 번째이고, 일곱 빛깔 무지개색 중 맨 앞에 있다. 우리가 태중에서 막 세상으로 나왔을 때 가장 먼저 인지하는 색깔도 빨간색이라고 한다. 그래서 일생동안 무의식 속에 빨강색이 살아 있다고 한다. 그런 강렬함 때문에 축구 경기에서 두 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반칙을 범할 경우, 마지막으로 빨간색 카드로 퇴장을 명령하는가 보다.
빨강은 사연도 많은 빛깔이다. 어려웠던 옛날, 힘들게 공부를 마치고 처음으로 입사한 직장에서 첫 월급을 받으면 제일 먼저 부모님이나 도움을 주었던 어른께 빨간색 내복을 선물했다. 그러나 공산주의이념에 빠져 그들이 추구하는 사상을 믿고 따르는 이들을 '빨갱이'라 일컬었다.
빨강은 금적색, 붉은색, 적색, 빨간색으로도 불린다. 세계 여러 나라의 국기에 애용되는 색이기도 하다. 특히 우리나라의 국기 중앙에는 태극 형태의 빨강색이 있다. 이는 오행 사상 중에 양(陽)에 해당된다. 보다 확장적이고 실물 태양을 상징하는 일본의 국기나 중국의 5성기의 붉은빛보다 우리 국기의 빨간색은 깊이 있고 다소 어두운 색이다. 구(舊) 소련의 국기나 공산주의 국가에서 나타난 적색의 의미는 피와 정열 그리고 혁명을 상징한다. 역동적이며 파괴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의 양(陽)은 그렇게 순간적이고 혁명적인 의미가 아닌 살아 움직이는 우주의 근원인 것이다.
빨강색은 음식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세계에서 유명한 식품 업체들이 선호하는 기본 색채는 붉은빛이다. 버거킹, 맥도널드, 피자헛, 코카콜라 등의 외국 기업은 물론이고 국내의 롯데나 오리온제과도 빨간빛을 사용한다. 정육점의 불빛도 적색이다. 이는 눈에 빨리 띄는 것은 기본이고 식욕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붉은색이 들어간 야채에는 비타민A가 많아 눈에도 좋고 심장 질환에도 효과가 있다.
빨강은 따스한 느낌도 준다. 수도꼭지의 더운물은 빨간색으로 칠한다. 붉은색으로 칠해진 방에 들어가면 체온이 올라간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성적인 욕구를 상승시킬 때에도, 불타오르는 사랑도 빨간빛으로 표현한다. 권투 선수의 장갑도 빨강색이다. 여자 화장실을 표시할 때도 이 색상을 사용한다. 화투의 바탕색도 붉은빛이며 이것은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한다.
한때 빨강색은 혁명 혹은 불순의 세력이라 하여 사용을 제한한 적도 있었으나 지금은 월드컵과 더불어 온 세상이 빨간색 천지다. 올 가을에 유행할 색조도 빨강이라고 한다. 이미 빨강색 화장법을 비롯하여 의류까지 붉은색이 대세(大勢)다. 기업들도 레드 마켓팅(Red Marketing)에 열중하고 있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면 빨간색 코트에 빨간색 구두를 신고 빨강 멋쟁이가 되어 볼까 한다.
(2010.6.28.)
*우리나라 응원에 빨강색을 이용하게 된 것은 1997년 8월 '붉은 악마'가 결성된 뒤부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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