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그 권태로움에 관하여
캄보디아, 그 권태로움에 관하여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최윤
난 지금 이름 모를 캄보디아 남자가 모는 오토바이 뒤에 앉아있다. 눈을 감고 있으면 바람과 풀 냄새가 한국과 똑같다. 다만 눈을 뜨면 낡은 오토바이를 능숙하게 모는 캄보디아 아저씨의 뒷모습이 보인다. 수상 가옥촌에 갈 때 탔던 청년의 오토바이는 왠지 모를 불안감이 들었다. 그러나 돌아올 때 태워 준 아저씨의 뒷모습은 왠지 듬직해 보였다. 가끔 어딘가를 가리키며 뭐라고 하기도 하고,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반갑게 아는 척하며 떠들었다. 캄보디아 아저씨는 내가 모르는 언어로 뭔가 열심히 설명하고 있을 때, 난 하늘을 바라보았다. 동남아의 공기는 왠지 이승과 천국의 경계 같다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캄보디아 처녀들을 아는지. 장가 못간 농촌 노총각에게 시집오는 앳된 처녀들이라고 많이들 생각할 것이다. 얼마 전, 캄보디아는 학대당하는 자기 나라의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나라로 시집오는 것을 막기도 했었다. 나 역시 캄보디아에 가기 전엔 동남아 여성들을 그리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었다.
캄보디아 여성들은 왜 그리 권태로워 보이는지 모른다. 수도 프롬펜에서 씨엡립으로 가는 도중 많은 시골 마을을 거치며 사람들을 관찰했는데, 캄보디아 남자들은 권태로움을 이기려고 공놀이를 한다든지 무언가 만들거나 하는데, 이상하게도 여자들은 멍하니 앉아있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젊은 여성들이 그랬다. 그들은 모여서 놀지도 않고 쓸쓸히 홀로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은 무척 권태로워 보였고, 슬퍼보였다. 물론 내 편견일 수 있지만 그게 사실일수도 있다. 젊은 그녀들에게 시골 마을은 예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고, 즐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을 것이다. 책을 읽을 수도, 쇼핑을 할 수도, 문화 공연을 관람할 수도 없는 그런 상황일 것이다. 젊은 마음에 얼마나 그 단조로운 곳을 떠나고 싶을까. 그녀들이 한국에 대해 동경하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난 권태를 가장 싫어한다. 얼마 전, 이상의 ‘권태’를 읽었는데 그런 권태를 느끼고, 글을 쓴 이상이 안쓰러웠다. 권태가 찾아오면 그저 그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시간은 참 답답한 시간이다. 캄보디아 여행이 참 좋았지만, 그들의 권태가 내 몸에 숨어들까봐 두려웠다.
수상 가옥 마을에서 만난 여자 선생님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아주 적은 급료를 받고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그녀는 아마 도시에서 공부하다 그곳으로 왔을 것이다. 교육자다운 단정한 옷차림에, 표정에도 교양이 엿보였다. 그러나 수업을 마치고 수상 가옥으로 들어가는 그녀는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다른 이들은 가족끼리 머리의 이를 잡는다거나 공놀이를 하거나 빗물에 목욕을 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과연 그녀는 그 긴 밤 시간 무엇을 하며 보낼지 궁금하여 나도 모르게 작은 한숨이 나왔다.
다른 사람의 삶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평가한다는 것은 잘못된 일일 것이다. 그들도 나름대로 행복하다고 생각할 수 있기에 참 미안한 일이다. 하지만 내가 느낀 캄보디아 사람들은 왠지 권태롭고 슬퍼 보였다. 그들은 원래 맘이 착하고 순수한 민족인 것 같다. 속없이 능청을 떨며 사는 삶이 아니라 힘든 삶을 얼굴에 솔직히 나타내며 사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4박5일 동안의 여행 중에 정말로 밝은 미소를 짓는 캄보디아 여성은 자주 보지 못했다.
캄보디아를 떠난 비행기가 한국으로 돌아올 쯤엔 동이 터 오고 있었다. 난 졸면서 이곳이 꿈인지 현실인지 혼란스러웠다. 꿈을 꾸다 일어나면 이어폰엔 김광석의 노래가 흘러나오곤 했다. 예전에 말했듯 난 김광석의 노래를 좋아하지 않는데, 하늘 위에서 듣는 그의 노래는 감미로우면서도 서글펐다. 그 노래를 듣는 중 난 또다시 꿈을 꾸었다. 오토바이를 몰던 캄보디아 아저씨의 땀 냄새가 느껴지며 ‘주공 피아노’ 가방을 들고 있던 캄보디아 아주머니가 나타났다. 그 피아노 가방은 한국에 있을 때는 누구의 가방이었을까. 그 주인은 버려진 자신의 가방이 이 먼 나라 아주머니의 손에 소중하게 들려있을지 상상이나 했을까. 이 알 수 없는 가방의 인연처럼, 나와 캄보디아 사람들이 전생에 인연이 있어 짧은 시간이나마 함께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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