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례 운조루(雲鳥樓) 공식 홈페이지 ▒

ㆍ작성자	전성권
ㆍ작성일	2010-07-06 (화)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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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가게
구멍가게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전성권

우리 동네엔 '가계집'이라는 예스럽고 멋스러운 이름을 가진 구멍가게가 하나 있다.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며 지켜보아도 빤히 쳐다만 볼 뿐 무엇하러 왔느냐고, 무엇을 줄거냐고 묻지도 않는다. 들락거리는 손님도 거의 보이지 않고 담배라고 쓰여 있지만 담배도 팔지 않는다. 동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가끔 들러 늦은 조반이나 점심을 해결하고 그늘 밑 평상에 앉아 낮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보일 뿐이다.

주인장 말씀은 수익을 기대해서가 아니라 오랫동안 있어온 동네가게라 그만둘 수도 없단다. 오가는 사람들이 그립고, 세상 사는 이야기나 돌아가는 얘기가 듣고파서 계속할 거라고 한다. 녹슨 철제 선반엔 과자 몇 개와 소주, 맥주 그리고 막걸리가 있을 뿐이다. 동네 마을부녀회가 운영하는 구판장도 있다. 상당히 현대적인 건물에 진열장도 제법 현대식이지만 구멍가게에서 맛볼 수 있는 정은 없다. 막걸리 한 잔 마실 때 김치나 어설프게 끓인 국물이 없으니 퍼지게 앉아 세월을 보낼 수도 없으니 말이다. 조금만 나가면 대형 마트가 있으나 대량으로 구매할 일이 아니면 구멍가게로 간다. 집에서 손수 기른 콩나물도 있고, 고추 가는 기계도 있기에 갈 수 밖에 없다. 동네사람들은 어르신들이 편안하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가급적이면 구멍가게를 이용한다. 처음엔 구멍가게에 들를 때 주인어르신이 없어 가게 문을 활짝 열어 놓은 가게에서 기다리곤 한다. 알고 보니 조석으로 가게 옆 텃밭에 다녀오느라 가게를 자주 비운단다. 이제는 어르신이 계신 시간을 잘 알기에 시간을 맞추어 구멍가게를 찾는다. 정이 있고 여유가 있는 구멍가게가 오래토록 지속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몇 달 전의 일이다. 머리도 복잡하여 무작정 차를 몰고 간 곳이 고향마을이었다. 고향마을에 들르니 한낮이라서인지 동네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너무도 변했다는 느낌이 들어 차로 한 바퀴 돌고 나오려니 엄마가 보고파서 인사드리고 올 요량으로 일단 동네슈퍼를 찾았으나 쉬 찾지 못하고 한참을 달려서야 길가에 있는 조금만 가게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찌나 반갑던지……. 가게 유리창에는 신발 벗고 '들어오세요.' 라고 쓰여 있어 길가에 신발을 가지런히 벗고서 들어갔다. 그 가게는 조그만 현관을 개조하여 냉장고와 음료박스를 쌓아놓고 거실 한 편에 박스마다 물건을 넣고 파는 그야말로 어릴 적 보았던 그 구멍가게 수준이었다. 하지만 있을 것은 다 있는 듯했다. 할머니께 엄마가 생각나서 왔고 엄마산소에 가려고 한다고 말씀드리니 소주 한 병과 새우깡 한 봉지, 종이컵 몇 개를 챙겨주면서 마음이니 이 정도면 엄마가 기뻐하실 거라고 하셨다. 세상에 엄마가 보고 싶어서 왔느냐며 효자라고 연실 혼잣말을 하셨다. 그때 느끼기를 그 구멍가게는 어느 대형마트보다 커 보였고, 그 할머니는 어느 점장보다 더 위대해 보였다. 만약 그 구멍가게마저도 없었다면 시내까지 나와야 했을 테니까 말이다.

요즘 매스컴에서 대형마트들이 동네골목까지 진출하여 영세상인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는 소식을 자주 접한다. 구멍가게에 짙게 배어있는 정이나 애환을 알 길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대형할인마트가 동네에 들어오면 주변도 말끔해지고 부동산 가격도 상승할 뿐만 아니라 양질의 물품을 저렴하게 살 수 있어서 좋다고 할 것이다. 물론 그 사람들의 말도 일정 부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용창출이네 지역경제 활성화네 하고 허울 좋은 말을 다 하고 입주하면 반경 10km내의 상권을 다 흡수한다니, 가족의 생계를 다 책임지고 있는 자영업자들은 어쩌란 말인가. 생각해 보면 살벌한 이야기다. 또 대형마트는 철저한 수익성 위주로 운영되기에 서민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은 구하기 어렵다. 구멍가게는 비록 수익이 안 나는 품목이고 유인상품이라 해도 서민생활에 꼭 필요한 물품들을 갖추니 말이다. 또 외상도 없다. 어느 할인마트에서 외상을 주는가. 서민 입장에서 생활하다 보면 외상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김치를 담그려 해도 고추 가는 곳을 찾으려면 몇 리를 더 가야하고, 맛있는 반찬을 사려 해도 찾을 수 없을 때가 있을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사람 사는 곳에는 사람 사는 재미와 정이 있어야 한다. 때론 외상도 하고 덤으로 더 달라고 우겨도 보며, 이리 많이 주면 손해 안 보냐고 행복한 투정도 부리면서 살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급격한 경제발전의 부산물인지 모르지만 자영업자 비중이 세계에서 제일 높다고 한다. 자영업자들의 생활에 물꼬를 터 줘야 할 필요도 있지만 사람 사는 재미가 있어야 하기에 구멍가게는 존재해야 한다. 구멍가게에서 나누는 막걸릿잔의 속정은 서민들만의 행복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