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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김병규
ㆍ작성일	2010-09-08 (수)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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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등산의 천둥소리
천등산의 천둥소리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김병규

아내의 칠순 생일이 다가왔다. 자식들은 일가친척과 이웃사촌을 모시고 칠순잔치를 열자고 했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나와 만나
47년을 살아 오면서 단 한 번도 챙기지 못한 아내의 생일 때문에 나는 늘 빚진 자의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 기회에 빚을 갚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아내는 펄쩍 뛰었다. 내가 겪고 있는 투병생활과 집안의 사정을 조목조목 말하면서 생략하자고 강력히 주장했다. 자식들은 아내의 뜻을 존중했다. 그 대신 숲이 우거진 어느 휴게소에서 식솔들이 모여 하루를 뜻있게 보내기로 결정했다.

청정한 천등산 계곡 ‘금계휴게소’에서 식솔끼리 칠순잔치를 갖기로 했다. 천등산은 전북 완주군 운주면에 있는 산이다. 해발 707m의 천등산은 대둔산과 쌍벽을 이룬 우리 고장의 보배로운 명산이다. 대둔산이 금강산에 버금가는 소금강이라면, 천등산은 하늘이 밝힌 등불의 산이다. 기암절벽을 자랑함은 물론 짙은 숲이 어우러지고 암반층으로 구성된 견고하고 아기자기한 산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는 마음까지 씻어주는 곳이다. 대둔산이 인류문명의 찬란한 옷을 입고 화려한 자태로 길손의 마음을 붙잡는 산이라면, 천등산은 인류문명을 거부한 채 태곳적 신비를 지닌 산이다. 밀림처럼 우거진 숲에서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가 어울려 자연을 노래하는 살아있는 산이다.

지루했던 장마가 잠시 외출을 한 듯, 맑은 해가 솟았다. 식솔들을 만난다는 기대를 안고 즐거운 마음으로 천등산으로 가는 길을 나섰다. 굽이굽이 숲이 우거진 계곡 길, 불어오는 산골바람은 자연이 주는 은총 같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계곡을 따라가니 ‘금계휴게소’에 이르렀다. 정화수 같은 물이 흐르는 계곡 옆으로 6~70개의 평상이 놓여있었다. 비 가림이 된 평상에는 수많은 피서객이 있었다. 우리도 예약된 두 개의 평상에 짐을 풀었다. 잠시 뒤 대전에서 큰딸 가족이 도착했다. 경기도 안양에서 큰아들 가족이 왔고, 충남 서산에서 막내아들 가족도 왔다.
열여섯 식솔이 다 모였다.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였다. 반갑고 기쁘고 즐거운 만남이었다. 나는 일곱 손자 하나하나를 가슴으로 안아주었다.
준비된 아내의 생일상에는 7개의 촛불을 켰다. 큰아들 주도로 생일잔치를 열었다.

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 축하 합니다.
할머니의 7순 생일을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노래에는 막내아들의 막내이며, 초등학교 1학년인 김정욱의 목소리가 제일 우렁찼다. 피서객들의 관심은 모두 우리에게 쏠렸다. 가까이 있는 피서객들에게 준비된 떡과 과일을 나눠주었다. 즐겁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많은 피서객들과 어울려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는 일곱 손자들 모습을 보노라니 행복한 미소가 절로 나왔다. 큰손자 김진우가 4년 반 뒤면 대학생이 된다. 앞으로 12년 뒤면 저 아이들이 모두가 성년이 된다. 저 아이들이 올곧게 자라서 나라에 쓰임 받는 큰 사람이 되도록 간절히 기도를 했다.

즐거운 순간은 빠르게도 지났다. 정오가 지났다. 갑자기 하늘에는 먹장구름이 덮였다. 산골에는 어둠이 깔리고 번개가 하늘을 갈랐다. 이어서 천둥소리가 산골을 흔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천둥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저쪽 하늘에서 이쪽 하늘까지 울러 퍼지는 천둥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천둥소리에 놀라는 것은 자신도 모르게 죄가 있지 않나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천둥소리와 함께 장대 같은 소나기가 무섭게 내렸다. 비가 그치는가 하면 천둥 번개가 치고 비가 쏟아지기를 반복하더니 기필코 소나기 3형제가 내렸다. 소나기를 끝으로 하늘의 먹장구름이 사라졌다. 소나기 삼형제가 내린 계곡에는 삽시간에 물이 불어 무섭게 흐르고 있었다. 하늘에서는 언제 소나기가 내렸느냐는 듯 석양을 알리는 햇살이 밀림사이로 쏟아져 내렸다. 변덕이 심한 하루가 굴곡이 심했던 아내와 내 인생에 겹쳤다.

아내와 나의 70년 인생을 뒤돌아보았다. 그 긴 세월 밝고 즐거운 날이 있었는가 하면, 어둡고 고통스러운 때도 있었다. 기쁘고 즐겁고 슬프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반복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소나기 삼형제가 변덕을 부리던 그날, 소나기는 천등산 계곡에 모여 더 큰 소리로 더 기운차게 흐르고 있었다. 천둥소리를 끝으로 천등산에 찬란한 황혼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천등산의 황혼처럼 우리 인생의 황혼도 아름답게 가꾸어보자고 다짐했다.

(2010. 9.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