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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박인경
ㆍ작성일	2010-08-29 (일)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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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을 퐉하다

순간을 포착하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박인경

벌거벗은 여자아이가 울부짖으며 달려 나오고 있었다. 뒤로는 검은 연기에 덮여 불타는 마을이 보였고, 소녀의 얼굴은 공포로 가득했다. 그녀의 옷은 이미 다 타서 벗은 상태가 되어 베트남전쟁의 비참함을 느끼게 해주는 한 장의 사진이었다.

8월도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건만 햇살은 아직도 뜨거웠다.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퓰리처상 사진전’을 보려고 마감일에 가까워 서둘러 서울로 향했다. 수십 년의 서울 생활을 접고 떠났는데도, 그 서울엔 내가 떠난 빈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많은 사람과 차량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친구는 벌써 강남터미널 하차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술의 전당은 주차장부터 만원이었다. 전시장 입구는 늦게나마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찾아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표를 구입하고 전시장으로 들어서니 계단 아래쪽까지 줄을 지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방송매체를 통해 이번 행사가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다는 풍문은 들었지만, 이미 두 달이나 시간이 지나서 한산할 것이라는 내 예상은 빗나갔다. 세계적으로 명성있는 퓰리처상에 대한 높은 관심 때문일 것이다.

퓰리처상은 1917년 조지프 퓰리처(Joseph Pulitzer)가 만들었다. 그는 19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언론인으로서 컬럼비아대학에 200만 달러를 기부하여 시작되었다. 기부금은 언론학과와 장학제도의 설립, 공공 봉사, 미국문학, 교육진흥을 장려하는 상을 만드는데 사용해 달라는 그의 뜻에 따라 쓰여 지고 있다. 보도 사진 부문의 수상은 1942년부터 시작되어 현재는 특종사진과 특집사진 분야까지 넓어졌다. 우리나라에는 6.25한국전쟁 당시 대동강다리를 건너는 피난민들을 찍은 사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전시작품 사진은 150장으로 1942년부터 2009년까지의 수상작들이다. 많은 작품 가운데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한 것은 단 한 작품으로 6.25전쟁의 어두운 단면만 부각되고 있어 안타까웠다. 작품의 내용은 주로 전쟁이나 정치적 내분에 의한 갈등으로 인한 폭력 사태나 살인을 다룬 것이 많았다. 홍수나 화재로 인해 위기에 처한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장면도 있어 숙연한 마음도 들었다. 세계적으로 뉴스거리가 되었던 클린턴의 외도로 인한 국회 탄핵현장에서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뒤에 서 있는 힐러리의 모습도 흥미로웠다.

내게 가장 인상에 남는 사진은 두 가지였다. 한 가지는 ‘외로운 지도자, 두 명이 그 곳에 있었다.’라는 제목의 폴 바티스(Paul Vathis)의 작품이었다. 1961년 4월 존 에프 케네디가 이끄는 행정부는 쿠바와의 접전으로 지지도가 하락하는 곤경에 처하게 된다. 케네디는 전임자인 아이젠하워의 조언을 얻기 위해 대통령 별장이 있는 캠프 데이비드로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을 초대한다. 대중을 위한 의례적인 사진을 찍고 돌아서는 케네디와 아이젠하워의 뒷모습 사진에는 당시 마음의 무거운 짐을 안고 있는 케네디의 외로움이 물씬 나타나 있었다.

다른 하나는 ‘안아주지 못해 너무나, 너무나 미안했다’란 표제의 케빈 카터(Kevin Carter)의 사진이었다. 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사진 기자로 1993년 3월 새로운 변화를 위해 무자비한 기근을 겪고 있는 수단으로 갔다. 어느 날 수풀 속에서 가느다란 울음소리가 들렸다. 굶주림에 지쳐 구호소로도 갈 수 없는 작은 소녀가 거기 있었다. 갑자기 독수리 한 마리가 날아와 소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카터는 재빨리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독수리를 쫒아 버렸다. 이 사진이 발표되자 그는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되었다. 왜 아이를 먼저 구하지 않았느냐는 것이었다. 너무나 괴로웠던 카터는 자살을 선택했다. 그의 나이 33살이었다. 세월이 흐른 뒤 케빈 카터의 딸은 인터뷰에서 ‘사진 속의 어린 소녀는 나의 아버지였고, 노려보고 있는 독수리는 비평가들과 같았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공감이 가는 비유였다.

전시장 끝에서는 사진작품집을 판매하고 있었다. 조금 고가(高價)였지만 구입을 하였다. 문득 친정아버지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공무원이시던 아버지는 어느 날 우리나라 현대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사진집을 사오셨다. 저학년이어서 역사 공부를 깊이 있게 배우지 않았건만 나는 그 사진집을 읽은 덕에 어린 나이지만 비교적 많은 것을 사진이라는 영상물을 통해 깊이 기억할 수 있었다. 나도 미래의 손자를 위해 잘 보관했다가 가보(家寶)로 물려주려 한다.

천천히 걷는 1시간 30분여의 관람이 끝나자 마치 토막이 끊어진 긴 영화의 터널을 빠져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전시장을 나오니 하늘에선 소낙비를 쏟아 붓고 있었다. 마치 열대 지방의 스콜처럼. 그 비를 바라보고 앉아있으니 사진작가 존 화이트(John. H. White)의 말이 여운처럼 들려왔다.

“나는 사진을 찍기만 한 것이 아니다.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삶의 모습을 잡아 낸 것이다. (I don't really take picture. I capture and share life.)"

(201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