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북알프스, 그 무릉도원(1)
일본 북알프스, 그 무릉도원(1)
행촌수필문학회, 벽송 김정길
알프스하면 으레, 얼음과 눈으로 뒤덮인 하얀 산, 또는 고산준령의 대명사로 불리는 유럽 알프스와 정상인 몽불랑(4,807m)을 떠 올리게 된다. 하지만 일본에도 해발고도 3천 미터가 넘는 일본알프스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다. 일본 알프스는 1896년 영국인 W.웨스턴이 일본 혼슈(本州) 중앙부인 중부산악지대의 골격을 이루는 히다산맥(북알프스), 기소산맥(중앙알프스), 아카이사산맥(남알프스)의 3개 산맥을 통칭해 발표한 <일본 알프스-등산과 탐험>을 통해 알려졌다. 이제는 우리나라 산악인들도 영남알프스, 충북알프스, 전북알프스 등 알프스 이름붙이기 경쟁을 할 정도가 됐다.
예부터 다테야마는 일본의 3대 명산(후지산, 하쿠산, 다테야마)의 하나로 일본인들에게 숭상을 받아왔으며, 8세기부터 성행한 산악신앙은 17세기에 번성기를 맞기도 했다. 다테야마는 산에 대한 전설이 많고, 여자를 거부하는 신성한 산으로 여신을 신사로 모시고 있다. 또한 일본의 지붕으로 불리는 구로베 알벤루트는 3천 미터 급 산봉우리를 가로질러 나가노와 도야마 현을 잇는 90km에 달하는 국제산악관광코스로 알려졌다. 웅대한 자연과 변화무쌍한 지형 그리고 아름다운 꽃과 다양한 동물, 케이블카, 버스, 로프웨이, 무궤도전차 등 다양한 교통수단을 아용해서 다테야마를 횡단하노라면 그 아름다운 풍광에 저절로 도취될 수밖에 없다. 중부산악국립공원에 있는 다테야마는 오오야마(雄山,3003m), 오난지야마(3016m, 大汝山), 벳산(別山,2874m) 등 세 개의 봉우리가 그 위용을 자랑한다. 그 동쪽에는 산의 모양이 마치 뾰쪽한 칼과 창의 모습을 닮은 검악(劍岳)이 천연의 요새처럼 버티고 있다. 다테야마는 9월 하순이면 만산홍엽, 10월말이면 설원을 연출하며 산악인들을 유혹하고 있다. 하지만 워낙 눈이 많이 쌓여서 오난지야마 휴게소는 7월말에서 9월말까지, 라이조사와산장(雷鳥莊)은 4월 중순에서 11월 하순까지만 운영할 수밖에 없다.
다테야마의 최대 화산호수 미쿠리가를 비롯한 여름에도 녹지 않은 눈 계곡 등은 예부터 등산, 스키, 캠프, 등 산악레크레이션의 장소로 널리 알려졌다. 구로베 계곡은 수백 미터에 달하는 기암절벽과 일본에서 가장 깊은 협곡이다. 그곳에 186m 높이의 거대한 아치형 구로베 댐이 축조되어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웅장한 방류 모습을 바라보면 가슴이 저절로 시원해진다. 1971년 구로베 알벤루트 개통과 함께 28km에 이르는 무로도다이라고원까지 산악도로가 만들어졌다. 그 정상부를 관통하는 터널을 뚫어 버스가 구로베 댐을 오가고 있다. 또한 무로도다이라고원까지 케이블카와 고원버스를 이용해서 오를 수 있다. 이 때문에 최근 들어 다테야마의 3천 미터가 넘는 산봉우리들이 병풍처럼 장관을 이루는 풍광을 조망하는 산행이 인기를 끌고 있다.
아무튼 산(山)소리만 들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산에 미친 호남지리탐사회원 16명이 일본 북알프스로 불리는 다테야마(立山) 등정 길에 나섰다. 삼복더위가 유난히 기승을 부리는 올 8월 중순, 나고야공항을 거쳐 다테야마 들머리에 있는 도야마현에 도착하자 일본해와 대자연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풍광이 우리 산꾼들을 반겼다. 우리가 등정 목표로 세운 다케야마 연봉에서 흘러내린 풍부한 그 수자원으로 이루어진 구로베강과 진쓰강 등이 활 모양의 도야마만을 따라 흘러가며 비옥한 농경지의 젖줄이 되고 있었다.
입산 나들목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오자 고산준령들이 서서히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중부국립공원지역의 다테야마 입구에서 무로도다이라고원을 잇는 산악도로(28km)의 통행료는 대형버스가 5만 엔, 중형버스는 3만 엔이나 받고 있어 산꾼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설상가상으로 3일 동안 계속내린 폭우로 인해 계곡과 시냇가에는 엄청나게 불어난 흙탕물이 성난 노도처럼 흘러가면서 다테야마 등정을 앞둔 산꾼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가 통과해야할 산악도로는 오후 6시부터 통행을 금지하고 있었다. 오후 9시에서야 겨우 허가를 받아 자욱한 안개 속을 비행기가 이륙하듯이 아슬아슬하게 오르자 무로도터미널이 마중 나왔다. 전쟁에 나가는 군인들처럼 완전무장하고, 장대비가 쏟아지는 칠흑같이 어두운 길을 헤드라이트에 의지해서 40분 쯤 걷자 유황냄새가 진동하는 라이조사와산장(雷鳥莊)이 나왔다. 나고야공항에서 8시간 30분이 걸린 셈이다. 땀에 젖고 비에 젖은 몰골들이 영락없는 비 맞은 수탉과 암탉 모습이었다. 다테야마 여신의 가호가 있기를 빌며 늦은 저녁으로 허기를 달래고 잠자리에 들었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사흘 동안 내렸던 폭우가 내일까지 이어진다면 일본 북알프스의 탐사가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202호를 숙소로 배정받은 8명의 회원들이 하나같이 장대비가 쏟아지는 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거리자 회원 하나가 “집 나오면 고생이다.”라며 좌중을 웃겼다.
(201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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