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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이애란
ㆍ작성일	2010-09-22 (수)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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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함께하느 사람들
시간을 함께하는 사람들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이애란

며칠 전 핸드폰으로 반가운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대학 때 활동했던 합창단 동기 모임을 갖는다는 소식이었다. 한 통의 문자가 나를 20여 년 전으로 되돌아가게 했다.
대학을 갓 입학했을 땐 교복 속에 갇혀 지내다 갑자기 사회인 대접을 받으며 어른이 된 느낌만 들었지 사실은 아주 철이 없던 시절이었다. 학교에서 짜준 시간표대로 따르며 생활하다 갑자기 주어진 자유로운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도 몰랐다. 그때 여러 동아리 선배들이 활동을 같이 할 후배를 찾아다니기도 하고 안내지를 나누어 주기도 했다.
난 합창단 동아리에 들어갔다.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기에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된 동아리였다. 별로 사교적이지 않아서 갑자기 많은 친구들과 선배들이랑 어울리는 게 쉽진 않았지만 노래하는 시간이 좋았고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어서 좋았다. 일주일에 두 번 모이는 합창 연습 시간을 기다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때 배운 노래 중 성 프란체스코의 기도문을 가사로 한 '평화의 기도'란 곡을 좋아했는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해주소서라는 구절을 보고 나는 그래도 사랑 받는 게 더 좋다고 말하곤 했다.
훗날 아이들을 얻은 뒤 사랑 받는 것보다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하던지 그 노랫말에서 나오는 사랑의 의미를 그제야 깨달았다. 더불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 기도문에서 말하고 싶었던 신의 사랑이 아닐까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사랑이 남녀 간의 사랑밖에 없는 줄 알았을 정도로 나는 어린애였다.
오래된 사진첩을 꺼내 보는 행복감처럼 내 오래된 추억을 더듬으며 그때 만났던 친구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며 모임에 나갔다. 멀리 사는 사람들이 많아서 참석한 사람이 많을 거라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모임 장소에 도착해보니 벌써 여럿이서 모여 있다가 들어오는 나를 반가이 맞아주었다. 타향에 둥지를 틀고 사는 친구들도 대부분 와주었다. 내가 그 친구들을 추억하며 기분 좋게 왔듯이 그 친구들도 자기들이 보냈던 젊은 시간들이 아주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 잡은 듯했다. 가까이 사는 친구들은 가끔이라도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졸업한 뒤 처음인 친구들도 있었다. 그런데도 낯설지 않고 반가웠던 것은 아마도 젊은 날의 아름다운 감성을 함께 공유한 이들이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모습이 많이 변한 친구도 있고 옛날과 거의 비슷한 친구도 있지만 저마다 가정을 이루고 건강한 사회인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 모습들을 보니 젊은 날 그들과 함께 했다는 게 뿌듯하고 즐거웠다. 내 기수의 단장이었던 선배가 이번 모임을 추진했고 적지 않은 우리들의 식사대를 지불해주었다. 그 선배에게도 우리들은 기억하고 싶은 아름다운 젊은 날의 추억인가보다.
식사를 마치고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작고 조용한 카페엔 다른 일행이 없어서 우리들만을 위한 공간이 되었다. 못다 나눈 이야기를 나누고 대학 시절 우리가 부르던 노래들을 한 친구의 기타 반주에 맞춰서 4부 합창으로 불렀다. 우린 모두 대학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그때 한 무리의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친구들이 들어오다 우리가 합창을 하는 것을 보고 너무 좋아했다. 나는 요즈음 아이들은 비트가 빠른 경쾌한 음악에 길들여져 있어서 예전에 우리가 부르던 노래들을 공감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느끼는 감성은 세대를 넘어도 공감하는 부분이 있나보다. 아이들이 더 불러달라는 요청을 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우리가 헤어질 때면 항상 부르는 단가인 보리밭을 부르는 것으로 우리의 모임을 끝냈다. 다음 달 소리문화축제 때 후배들과 같이 참여하기로 했기 때문에 곧 만날 것을 약속하며 모두들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사람이 살아가는 게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을 함께한다는 것은 더욱 아름답고 소중한 일이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모든 일상이 기쁘지만은 않았으리라. 고통도 있었을 테고 슬픔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 자리에서 성실하게 살아온 친구들을 보면서 비록 나와 아무런 인연을 맺지는 못했어도 이 세상을 같이 공유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그 사람들도 어디선가 누군가와 시간을 함께하며 살고 있을 게다. 한 직장의 어떤 역할을 맡은 사람으로 혹은 한 가정의 기둥으로 소중하지 않은 인생은 하나도 없다. 나무가 백 년을 살면 고목으로 칭송을 받지만 사람이 백 년 살다가는 자식들이나 사회의 짐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어찌 사람의 인생을 고목에 비할까. 힘들고 지친 가운데서도 함께 어우러지며 성실히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귀하고 소중하다.
우리는 따뜻했던 시간을 함께했고, 함께 하고 있다. 그 시간 속에서 우리가 쌓아 온 추억들은 앞으로도 나와 친구들의 지친 발을 쉬게 해 주는 그늘이 되어 줄 것이다.
열심히 살고 있는 내 친구들이 모두 귀하게 다가온 날이다. 소중한 친구들의 앞날을 축복하며 다음 만날 날을 기다린다.

(201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