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조루를 지킨 사람들

운조루는 유이주가 유배를 당하는 불우함을 잊기위해 대구에서 구례를 찾아와 말년을 은둔할 심산으로 지은 집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집터를 잡아 상량도 하기전에 다시 나라의 부름을 받아 영달이 시작되고 그 자손들도 계속 초창기의 복록을 유지하였으므로 지리산록 명지중의 산 증거처럼 풍수사들의 호기심을 자극해왔다. 앞서 유씨일가의 일기를 통해 살폈듯이 이미 국운이 기울던 구한말 때부터 풍수지리명당을 믿는 사람들이 옮겨오기 시작했지만 일본제국에 나라를 빼앗긴 일본식민시절 이곳을 찾아 온 이들에 의해 두 동네가 생겨날 정도로 유씨일가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일반이 생각하는 것처럼 고관대작이 나온 집안은 아니라는 특징도 흥미를 끈다.


★ (2대) 유덕호(柳德浩 1757∼1815)

오미동에 터를 잡은 유이주이 사촌동생 유이익의 둘째 아들로 종백부인 유이주의 집안일을 돕다가 34세때인 1790년 유이주의 양자로 입적했다. 호가 수분실이며 죽은 뒤 호초참판의 증직을 받아 추사 김정희가 쓴 묘지명을 남겼다. 토지면 토호 재령이씨 이시화의 딸과 결혼해 3남 2녀를 낳았으나 가대는 그의 친동생 광호(洸浩)의 아들 억(億)을 양자로 들여 운조루를 관리케했다.


★ (3대) 유억(柳億 1796∼1852)

유덕호의 친동생(유이익의 9남)으로 유덕호에게는 서자뿐이었으므로 유이주의 대를 이어 운조루를 맡았다. 30세때 무과에 급제해 함경도 감영의 중군, 평안도 병마절제사겸 토포사등 벼슬을 했다. 그는 늙어서 집에 돌아와 그의 호를 딴 ≪圓石集≫(원석집)을 남겼으며 화첩, 장서 등을 수집해 오늘날 많은 유품이 전해온다. 그는 당호를 ≪足閒亭≫(족한정)이라 했다. 견용(見龍), 택선(宅善), 주선(籌善), 방선(邦善) 등 네 아들을 두었으며 견용이 운조루를 맡았다. 둘째 택선(竹溪1819∼1873)은 1851년 무과에 급제, 현감 및 오위장을 지냈다. 그의 아들 제관(濟寬)은 여산, 금산, 광양군수 등을 지내고 갑오동학난 때 관군편에 서서 전라좌도소모사를 맡았다.


★ (4대) 유견용(柳見龍1817∼1851)

아버지 유억이 죽기 1년전에 35살의 나이로 죽어 큰 행적을 남기지 못했다. 제양(濟陽)과 제영(濟榮) 등 두아들을 두었다.


★ (5대) 유제양(柳濟陽 二山, 1846∼1922)

여섯 살때 아버지를 여의고 그 이듬해에 할아버지를 여의어 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숙부인 택선의 보살핌을 받으며 독서에 열중해 77살에 죽기까지 1만여편의 시를 썼다. 특히 그는 아버지가 죽던 1851년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해 죽도록 일기를 써서 ≪是言≫(시언)이란 기록을 남겼다.

큰아들 영환이 일찍 죽자 손자에게도 일기를 쓰도록 지도해 구한말과 일본식민시절의 사회변화와 풍습을 알 수 있는 자료가 되고 있다. 그는 매천 황현(黃玹), 소천 왕사찬(王師璨) 해학 이기(李沂) 등과 폭넓게 교류했으며, 농사 일기, 동 향학, 면 향약 등 많은 기록을 남겼다. 두 부인에게서 다섯 아들을 두었다.


★ (6대) 유영환(柳永桓 1869∼1892)

아버지 이산공의 가업을 돕고 살다가 23살의 나이에 요절했다. 형업이란 아들과 딸 하나를 남겼다.


★ (7대) 유형업(柳瑩業 1886∼1944)

나이 일곱 살때 아버지를 여의고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열세살때(1898년)부터 일기를 쓰기시작 1937년까지 무려 40여년간의 일기를 남겼다. ≪紀語≫란 이름으로 남긴 이 일기는 그의 할아버지가 시를 많이 쓴데 견주어 일상생활을 상세하게 적어 대한제국의 패망과 3?1만세, 지적측량, 신식학교제도 등 근대화과정을 살필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그의 일기를 통해 금환락지를 찾아 몰려온 이사자들의 동태를 살필 수 있다. 두 아들을 두었다.


★ (8대) 유증교(1906∼1971)

민선 면의원 부의장을 했다. 다섯아들을 낳았는데 큰아들이 여순반란때 경찰에 의해 죽어 둘째아들 종숙(鍾淑?1930∼1991)이 운조루를 맡았다.


★ (9대) 유종숙(柳鍾淑 1930∼1991)


★ (10대) 유홍수(柳鴻洙 1954∼ ) 고등학교를 나와 아버지를 이어 운조루를 관리하며 농사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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