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운조루의 '쌀 뒤주' 이야기 - 베네딕숑

운조루 0 28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것이지만, 예전에는 집집마다 '뒤주'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주로 쌀을 보관하며, 그밖의 각종 곡물을 보관하기도 했던 이 뒤주는, 그저 지금의 '쌀통'으로서의 기능만을 한 것이 아니라, 그 집안의 부와 재력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뒤주가 큰 집일수록, 그 집에는 사계절 내내 보릿고개 한 번 없이 쌀이 그득그득 들어차 있었고, 그 집의 아가씨 도련님들은 모두 일 한 번 하지 않고도 매 끼니를 배불리 먹을 수 있었지요. 일년 가야 한 두 번 쌀밥 한 공기 먹어 볼까 말까 했던, 보통의 가난한 집안에서는 이 '큰 뒤주'야말로 부러움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


그러나 큰 뒤주는 또한 서민들 사이에서 은밀한 비난과 풍자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양반 가문의  큰 쌀독이 채워지기까지는 대대로 물려온 논을 가지고 서민들을 부린 후, 서민들의 어려운 살림을 봐주지 않고 가혹한 세를 뜯어 쌀독을 채우는 과정이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서민들 입장에서는 '쌀독에서 인심난다'는 속담보다  '쌀독 채우는 데엔 인정사정 없다'는 말이 훨씬 더 와닿았을 법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양반가의 쌀 뒤주 중에는, 서민들의 부러움과 존경을 동시에 받았던 쌀 뒤주도 있었다고 합니다.  지리산 노고단을 뒤에 두고 고색창연하게 자리잡고 있는 구례 토지면 오미리의 운조루- '구름 속의 새처럼 숨어 사는 집'이라는  뜻의 이  99칸 양반가에는, 그 이름처럼 '구름 속의 새처럼 숨어' 나눔을 실천한 이들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뒤주가 있습니다.  



지금도 운조루의 곳간채에 가면, 쌀 뒤주가 하나 있다고 합니다. 두 가마 반 정도의 쌀이 들어가는 이 풍신 좋은 소나무 쌀 뒤주는 언뜻 보면 여느 뒤주와 비슷해보이지만, 하단부의 네모난 구멍을 여닫는 마개에 씌어있는 글귀가 이 뒤주를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 줍니다. 


"타인능해(他人能解)"


마개에 쓰여 있는 이 네 글자는,  '다른 누구라도 능히 이 구멍을 열고 닫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곳간채에서도 가장 중요한 금고 중의 금고라 할 만한 쌀 뒤주- 아무도 탐을 내지 못하도록 꼭꼭 숨겨 자물쇠를 채워두어도 시원치 않을 판에 누구든 자신의 쌀 뒤주를 열고 닫아도 좋다니, 대체 이것은 무슨 뜻이었을까요?


몇 겹의 자물쇠로 꼭꼭 채워두고도 밤새 머슴을 부려 곳간채를 지키게 했던 다른 양반가의 쌀 뒤주에 반해서, 운조루의 쌀 뒤주는 누구든 언제든 들러 열어보아도 좋은 것이었습니다. 즉 가난하여 배를 곯는 사람이라면 낮이든 밤이든 몰래 운조루의 뒤주에 와서 얼마든지 쌀을 퍼가도 좋다는 뜻이었지요.


물론 다른 양반가에서도 수해나 가뭄 등 재해가 있거나 보릿고개가 길어 서민들이 힘겨워할 때면, 세를 깎아주거나 곳간의 쌀을 얼마쯤 내놓는 식으로, 재산을 내놓는 일이 드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운조루의 쌀 뒤주가 아름다운 것은, 특별한 때가 아니라 언제든지, 그 누구에게든 열려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참으로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 꼭 재해가 일어나거나, 보릿고개여야만  서민들이 배를 곯았던 것은 아니었겠지요.


다른 이들이 모두들 즐거워하는 한가위나 대보름 명절에도 어느 집에서는 우는 아이에게 풀죽만을 쑤어먹여야 했을는지도 모르고, 또 멀쩡한 족보있는 양반가문이라 해도 물려온 재산이 없어 배를 곯는 민망한 경우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은 차마 남들에게 손 내밀지도 못하고, 어린 아이들을 달래가며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텨갔을 것입니다.



운조루의 쌀 뒤주에 적힌  '타인능해'라는 이 넉 자의 글자가 말하는 바는 이렇듯, 말 못할 사정으로 배를 곯는 이들로 하여금, 다른 이들의 따가운 시선 없이 세 끼 밥이라도 나누고자 하는 데 있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자선이라 하는 것은, 베푸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선을 베푸는 일이겠지만, 받는 이의 입장에서는 견딜 수 없는 부끄러움이고 자존심의 상처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지요.


  운조루를 세우고 지켰던 많은 주인들은 이를  배려하여, 주는 자의 입장에서 생색내려 들지 않고, 그저 필요한 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것을 가져가게 하는 조용한 나눔을 실천했던 것입니다.




운조루에서는 해마다 논농사 2만 평을 지어 연평균 200가마 가량의 수확을 거두어 들였다고 합니다. 글건데 이중 36가마 가량을 타인능해의 쌀 뒤주에 넣어두었다고 하네요.  1년 수확의 20% 가량을 가난한 이웃들을 위하여 꼬박꼬박 썼던 것입니다.


운조루 쌀 뒤주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일화도 있습니다.


운조루에 살았던 류억 선생께서, 어느 날 쌀 뒤주를 살펴보더니 황급히 며느리를 불러들이셨다 합니다. 좀처럼 작은 일에 아랫사람을 괴롭게 하는 일이 없으셨던 시아버님께서, 노발대발하시니 며느리로서는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마음을 졸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것은 쌀 뒤주에 남아있던 쌀 때문이었습니다.


류억 선생께서는, 뒤주에 쌀이 많이 남은 것을 보고는 우리 집안에 덕이 모자라 혹 뒤주에서 쌀을 가져가는 사람에게 불편함이라도 준 것이 아닌지, 그래서 배를 곯으면서도 차마 뒤주의 쌀을 가져가지 못한 이가 있는 것이나 아닌지 꾸짖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 뒤주에 남은 쌀을 당장 어려운 집에 죄다 가져다주고 깨끗하게 비워오라고 명하셨다고 합니다.


이렇듯 운조루의 주인들은 아무리 가난한 이들이며, 남의 베품을 받는 이라 할 지라도 자존심과 주체성이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며, 언제나 받는 이들이 혹 마음이라도 상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배려하며 나눔을 베풀었습니다.



문득 예전에 이런 기사를 본 것이 생각납니다. 최근에는 복지시설에서 살아가거나 어려운 가정의 청소년 들이,  더 이상 연예인이나 기업가 등 유명인이 와서 자선을 베풀어도 별로 반기지 않는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많은 유명인들이 자선을 한다고 언론매체를 대동하고 찾아와서는, 사진 몇 장을 찍고는 흰 봉투를 전달한 후 더는 찾아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런 보여주기 위한 자선 앞에서, 그 자선을 받는 이들의 마음은 또 얼마나 다치게 될까요.



그러나 이러한 각박한 현대사회에도, 곳곳에 새로운 운조루의 쌀 뒤주가 생겨나는 것을 봅니다. 어느 고장의 작은 동사무소 앞에 놓여 있다는 '사랑의 쌀통'은 어려운 이웃들이 아무리 비우고 또 비워도, 누군가에 의해 다시 채워진다고 하지요.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이웃과 자신의 것을 나누어 쓰고자 하는 마음들은 언제나 있었고, 우리의 주식인 '쌀'을 나누려는 마음이야말로 가장 필요하고 귀한 나눔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쌀-작은 쌀 한 톨이 모이고 또 모여 큰 뒤주를 가득 채우는 이치는, 그 큰 뒤주를 채우는 쌀알의 수만큼은 못될 지라도 가능한 많은 이와 더불어 쌀을 나누어 먹으라는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누어 먹을 때, 더불어 먹을 때, 더 달디단 음식이 바로 우리의 쌀이겠지요!


저는 종종 저희 회사도 우리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의미의 커다란 쌀 뒤주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빵 한 개, 과자 한 봉지를 먹어도 쌀의 영양이 그득그득 담겨 있어, 오며가며 작은 빵 한 개만 사먹어도 쌀 한 바가지를 퍼가는 만큼의 영양과 건강을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밥 한 공기 챙겨먹을 여유도 없이 바쁜 사람들, 일과 공부에 지친 모든 사람들에게 '타인능해'의 쌀 뒤주- 언제 어디서 누구든지 부담없이 꺼내어먹을 수 있는 영양과 건강으로 가득찬 맛있는 쌀 뒤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타인능해- 비단 쌀을 만지는 데 있어서만이 아니라, 하루하루 살아가는 저의 마음가짐 역시 마찬가지겠지요.  그 어느 누구에게든 맑고 깨끗한 유리창처럼 활짝 열어보일 수 있는 마음, 그 누구든 편견없이 품어 안을 수 있는, 그 어머니 같은 '타인능해'의 마음.....


제가 만드는 쌀음식에도, 또 자그마한 저의 마음의 창에도, '타인능해'의 아름다운 네 글자가 깊이 깊이 새겨져 있길 기도해 보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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