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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김양수
ㆍ작성일	2010-05-28 (금) 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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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
잡초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김양수

비가 내렸다. 봄 가뭄으로 밭작물이 말라들던 때 대지를 촉촉이 적시는 반가운 단비였다. 나무 이파리는 물기를 머금어 녹음이 더욱 짙어지고, 물을 대는 농부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갈증에 시달리던 잔디들도 생기를 되찾아 5월의 풋내음을 한껏 뿜어내고 있었다. 비가 내린 다음 날은 잡초를 뽑기에 좋은 날이다.

처음 시골생활을 시작했을 때, 잡초는 뿌리째 뽑아 없애야하는 섬멸의 대상이었다. 성격 탓도 있겠지만 잘 정돈된 모습으로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고개를 내밀기 바쁘게 잡초를 공격했다. 하지만 놈들은 숨바꼭질하듯 눈을 피해 곳곳에서 솟아났다. 마당의 잡초들을 전멸시키면 화단에서 출현하고, 또 화단을 공격하면 잔디밭에서 나타났다. 두더지마냥 고개를 내밀었다. 혼자서는 힘에 겨워 아내의 도움으로 협공을 시작했다. 마당과 잔디밭에서 동시에 놈들을 공격하고, 또 숨 돌릴 틈을 주지 않고 화단과 채마밭에서 협공을 하였다. 동시다발적 급습으로 놈들을 초토화시켰고 전리품으로 한동안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그런데 놈들은 패전을 인정하지 않았다. 반격의 기치를 높이 들고 마당과 잔디밭 등 가능한 모든 곳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적기에 내린 비와 따뜻한 햇볕은 공세의 고삐를 바짝 죌 수 있도록 놈들의 우군이 되어주었다. 손쓸 틈도 없는 대 역전의 드라마였고, 아내와의 협공이 더 이상 의미가 없는 상태가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우기가 되어 나는 한동안 발이 묶였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놈들은 그 틈을 타 몸을 살찌우고 세력을 키워 점령지를 더욱 넓혀갔다. 그렇게 달포가 흘렀다. 그동안 놈들의 공격은 대단해서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모든 곳은 그들로 가득 찼다. 반전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놈들의 점령지 모든 곳에 제초제를 뿌렸다. 절대로 선을 넘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화학전의 유혹을 떨치지 못했다. 제초제에 노출된 놈들은 시름시름 앓더니 누런 황달기를 보이다 피골이 상접한 채 고통스럽게 말라 죽었다. 전멸이었다. 놈들을 초토화 시켜 소기의 목적은 이루었지만 나에게도 화학전의 후유증이 나타났다. 노출된 피부에 좁쌀만한 수포가 생기고 미열이 났다. 놈들의 몰살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는 전술은 아니었다. 더 심각한 후유증이 시간을 두고 나타났다. 공들여 가꾸던 나무들이 시름시름 앓더니 이파리가 뒤틀리고 잔가지들이 신음하기 시작했다. 내성이 강한 단풍나무는 다음 해에 기력을 회복했으나 소나무 대여섯 그루는 끝내 세상을 등졌다. 나에게도 커다란 손실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나무들이 앓기 시작했을 때, 폐허 속에서 놈들이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말로만 듣던 끈질긴 생명력이었다. 밟아도 뽑아도 제초제를 뿌려도 굴하지 않는 그 끈질긴 생명력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잡초의 박멸이라는 이루지 못할 기치를 내리기로 했다. 종전은 아니지만 전면전을 피하면서 놈들의 존재를 일부 인정하는 공존의 길을 선택했다.

잔디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가뭄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낸 것이 잔디만은 아닌 듯 잡초들도 뿌리가 부실하고 줄기가 튼실하지 못했다. 이럴 때는 잡초를 뽑는 일이 조금은 수월할 것이다. 비가 내린 다음 날이면 나는 잡초를 뽑는다. 단단히 굳었던 흙이 적당히 물러져서 잡초를 뽑을 때 줄기가 끊어지지 않고 뿌리 채 잘 뽑히기 때문이다. 때가 적절하면 일손을 덜 수 있다. 잔디를 피해 잡초만 없애려고 안간힘을 다했다. 잘 가꾸어진 잔디 이파리가 하나라도 상하는 게 싫었던 것이다. 잡초를 뽑는 일은 한 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그 정도면 충분한 휴식으로 머리가 맑아지기 때문이다.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을 두는 격으로 잡초 뽑는 일을 핑계 삼아 한가로운 시간을 즐기는 것이다.

사람들은 생활에서 지혜를 배운다. 할머니는 허리가 아프고 신경통이 도지면 비 올 것을 대비하여 빨래를 걷는 등 비설거지를 하셨다. 신경통과 기후와의 상관관계를 이해하신 것이다. 나는 비가 내린 다음날 잡초를 뽑는다. 비로 흙이 물러지면 잡초가 잘 뽑혀 일손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농부들도 잡초를 완전히 제거하지는 않는다. 피해를 주는 것들은 없애지만 논둑이나 밭둑에서 자라는 잡초는 어느 정도 크기까지 자라도록 용인하여 그 둑이 무너지는 것을 예방한다. 잡초의 뿌리가 뒤엉킨 채 흙을 움켜잡아 둑을 견고하게 지탱하도록 이용 것이다. 잡초를 익초(益草)로 농사에 활용하는 지혜이다.

나도 집 주위의 잡초들을 완전히 없애려고 하지 않는다. 다년간의 경험으로 잡초를 완전히 없앤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시간과 노력을 너무 많이 필요로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래서 나는 잡초를 뽑는데 전력을 다하지 않고 약간의 게으름을 피운다. 적과의 동침, 즉 잡초가 어느 정도 자라는 것을 용인하는 공존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궤변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잡초에 시달리지 않으면서 한가로운 삶을 즐기는 여유를 누리고 있다. 나는 잔디밭에서 휴식을 취한다. 반복되고 지루한 일상사 사이로 잡초를 뽑으면서 머리를 식힌다. 잡초를 뽑을 때면 짓누르던 고민이 사라지고 시야에 잡초만이 들어온다. 그 순간 세상에는 나와 잡초만이 존재한다. 잡초가 나를 잔디밭으로 인도한다. 그곳에 앉아 새로운 생각과 창작의 시간을 갖는다. 그러는 사이에 다른 쪽에서는 또 잡초가 자란다.

(202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