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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고지연
ㆍ작성일	2010-05-25 (화)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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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빨간꽃
엄마와 빨간 꽃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고지연

며칠 전까지만 해도 화사하게 자태를 뽐내던 튤립이 제 몸을 벗어내고 있다. 지난겨울 유독 추웠던 날씨 탓인지 올봄 꽃들은 유난히 아름답다. 부지런한 관리원 아저씨들 덕에 우리 아파트는 봄이면 여러 종류의 일년초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호사를 누린다. 꽃잔디를 시작으로 튤립, 호랑이발톱, 그리고 꽃 이름도 모르는 나는 그 작은 들꽃에 매료되어 한참씩 넋을 놓고 바라볼 때가 많다. 형형색색의 꽃들이 고개를 내미는 날이면 계절의 변화에 찬사를 보내며 행복해 한다. 주인을 따라 나온 강아지도 뭐가 좋은지 연신 꽃밭을 맴돌며 킁킁댄다.

친정엄마는 꽃을 참 좋아하신다. 어린 시절 봄이면 마당 앞 꽃밭엔 온갖 종류의 꽃들이 피었다. 개나리, 붉은 철쭉, 자홍색의 자산홍, 새빨간 모란, 자줏빛 목련, 세상의 붉은 꽃들을 온통 우리 집 앞마당에 모아놓기라도 한 것처럼 엄마는 그렇게 꽃가꾸기에 열중이셨다. 하루하루 빨간 꽃으로 채워져 가는 화단을 보며 아름답기보다는 적당히 더운 날씨와 어우러져 더욱 덥고 답답함만 느껴질 뿐이었다. 어린 시절 엄마에게 엄마는 왜 그렇게 빨간 꽃만 좋아하느냐고 물어 본 적이 있었다. 엄마는 그냥 색이 고와서라고 하셨다.

그런 엄마와는 달리 난 화려한 철쭉보다는 진달래를 좋아했고, 노란개나리보단 보라색의 제비꽃을 좋아했다. 이름 없는 야생화를 좋아했고, 가을이면 하얀 구절초를 한 아름 꺾어 화병 가득 꽂아두곤 했었다. 초가을 코스모스가 만발한 신작로를 걸을 때면 손끝에 와 닿는 느낌이 좋아 한참을 걷곤 했었다.
세월이 흘러 내 나이가 40을 훌쩍 넘어버렸다. 우리 집 베란다엔 빨간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자홍색의 베고니아, 빨갛다 못해 핏빛 미니 장미까지. 언제부턴가 빨갛지 않으면 꽃이 아닌 듯 연신 빨간 꽃을 사 나른다.

사람은 누구나 비슷한 삶을 사는 듯하다.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면서 그토록 이해되지 않았던 일들이 누가 굳이 일러주지 않는 데도 깨닫게 되는 지혜가 생기니 말이다. 봄이 되면 꽃구경을 가고, 가을이 되면 핏빛 단풍과 샛노란 은행잎을 보면서 연신 감탄사를 쏟는다. 엄마가 왜 그토록 빨간색을 좋아했는지, 이제는 하나도 궁금하지가 않다.

나는 나이가 드는 게 그다지 서운하지 않다. 많은 것을 이해하고 좀 더 오래까지 기다려줄 수 있는 여유가 생겨 즐겁다. 꽃 속까지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이 생겼고, 열심히 먹이를 찾는 작은 곤충들을 쫓는 느림의 미학을 터득해가는 지금이 너무 행복하다.

두 아들이 묻는다.“엄마는 왜 그렇게 빨간색을 좋아해? 촌스럽게.”
(201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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