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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이수홍
ㆍ작성일	2010-08-04 (수)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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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점심
화려한 점심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이수홍

사흘 전 최병철 님의 전화를 받았다. 그분은 작년여름 건지산 벤치에서 알게 된 85세의 노신사다. 점심식사나 같이 하자는 것이었다. 내가 7월 25일 일요일에나 시간이 나기에 그날 만나기로 했다. 옛 도청 옆에 보신탕을 잘 하는 집이 있으니 거기서 만나자는 것이었다. 그분의 집이 우리 집과 가깝다는 것을 안 나는 홈플러스 네거리에 있는 ‘오마니’란 식당에서 12시에 만나자고 했다.
어른이고 내가 장소를 정했으니 먼저 가서 기다리는 것이 예의다. 작년에 1권을 드렸는데 한 권 더 달라기에 내 수필집과 행촌수필17호를 들고 10분 전에 식당으로 갔다. 그런데 가던 날이 장날이라더니 그날이 바로 정기휴일이 아닌가. 길에서 기다리는데 건너편 사학회관 앞에서 그 식당을 찾으려고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얼른 내가 찾아가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홈플러스 2층 식당으로 갔다. 5,500원짜리 돈가스 오무라이스를 주문했다. 행여 내가 돈을 낼세라 얼른 식대를 내고 전표를 받았다.

밥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마주보고 정담을 나누었다. 그동안 어떻게 하면 자식들 귀찮게 하지 않고 편하게 죽을까 생각하면서 살았단다. 그런데 요즘엔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어 어떤 식으로 멋지게 살까란 꿈을 꾸면서 사는데 그게 다 내덕이라고 했다. 작년 8월 8일 건지산에서 만났을 때 내가 쓴 책 《노래하는 산수유 꽃》한 권을 드리며 컴퓨터를 배우라고 권했다. 컴퓨터를 배우려면 우선 컴퓨터를 새것으로 구입하라는 말까지 내 경험담을 구체적으로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컴퓨터를 130만원에 구입하고 구 도청 옆에 가서 컴퓨터를 배운지 3개월이 되었다고 했다. 하도 감사해서 점심이나 대접하고 싶어 전화를 하려는데 번호를 알 수 없었단다. 방법을 찾다가 지난번에 받은 책 생각이 났단다. 그래서 손자에게 주었던 그 책에서 전화번호를 알아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선배님으로 모실 테니 컴퓨터도 지도해 달라고 했다. "저보다 11살이나 연상인 분과 사귀면 제가 손해를 봅니다."라고 농담을 했더니 너털웃음을 웃으면서 잘 부탁한다고 했다. 고기보다는 채식을 좋아한다고 돈가스 1/3정도를 썰어서 내 접시에 건네주셔서 마음이 찡했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손님들과 흰 가운을 입은 주방 아주머니들이 우리를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멋진 젊은 오빠[Y,O(Young Old)]들'이 왔다고 생각했으리라.

식사를 마치고 나서 자기 집에 가서 차도 한 잔 하고 컴퓨터를 보자고 했다. 늙으면 아이가 된다고 컴퓨터 자랑을 하고 싶어 그런 것 같아 냉큼 따라갔다. 처음 방문이니 수박이나 한 덩이 사겠다고 했더니 극구 말려 그냥 가는데, 실은 근처에 슈퍼도 없었다. 집 앞에 가서 공무원이면 호화주택에 산다고 감시대상이 되겠다며 농담을 하고 문패를 보니 아들과 며느리의 것이 나란히 정겹게 걸려있었다. 회사에 다녔던 큰아들, 교직에 있었던 며느리와 손자들이랑 함께 산단다. 곱게 늙은 백발부인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부인도 건강한 것을 보니 무척 행복한 부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안방에는 고가(高價)의 돌침대와 자개농이 있고 컴퓨터가 책상 위에 있는데 노트북이었다. 왜 노트북일까 의아했다. 학원에서 만난 예쁜 여학생이 보내 준 메일도 있다고 자랑을 했다. 아직 메일을 주고받는 것도 서툴러 아이디는 물론 비번까지 알려주면서 열어보라고 했다. 여학생의 메일 내용은, 좀 먼저 배워서 강의를 잘 알아듣지만 옆에서 물어보는 최 선생님에게 신경을 써서 자세히 알려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내용이었다. 얼굴도 예쁘다고 자랑을 해서 진한 농담을 하려다가 좀 더 가까워지면 하려고 참았다. 다과와 수박을 대접받고 어차피 컴퓨터를 시작했으니 노트북 말고 큰 화면의 컴퓨터를 준비하라고 했다. 손자도 선생님이라고 생각하고 무조건 배우고 기록을 하라고 당부하고 돌아왔다.

그분은 공원에서 처음 만났을 때 행복하려면 복권을 사라는 말을 해서 나는 글을 한 편 쓴 일이 있다. 그때 또 한 말이 성삼문의 임사부절명시(臨死賦絶命詩)를 외우면서 기가 막히게 좋은 시인데 한문 글자를 알고 싶다고 했다. 집에 와서 컴퓨터에서 검색을 해 보니 이런 시였다.

擊鼓催人命(격고최인명)-북소리 둥둥 울려 사람목숨 재촉하니
回首日欲斜(회수일욕사)-해도 절로 고개를 돌리는 구나
黃泉無一店(황천무일점)-황천에는 주막한곳 없다 하니
今夜宿誰家(금야숙수가)-오늘밤은 어느 집에 쉬어 가는가

오늘은 또 삼국지에 나온 조조의 아들이 지은 칠보시가 알고 싶다고 하여 나도 알 수 없어 컴퓨터에서 검색하여 알려주겠다고 했더니 검색방법도 알려 달라고 했다.
“七寶詩(칠보시) : 曹植(조식)-일곱 걸음에 지은 시(詩). 위(魏)나라의 조조(曹操)의 아들인 조식(曹植)이 형인 문제(文帝)의 미움을 받아서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에 시(詩)를 짓지 못하면 죽이겠다는 위협(威脅)을 받은 즉시(卽時) 일곱 걸음 만에 지어서 죽음을 모면하였다는 시다.

煮豆燃荳萁(자두연두기)-콩을 꽁깍지로 볶아대니
豆在釜中泣(두재부중읍)-콩이 가마 속에서 눈물 흘린다
本是同根生(본시동근생)-본래 같은 뿌리에서 생겼는데
相煎何太急(상전하태급)-서로 볶고 달임이 이다지도 성급한가

충절과 혈육에 관한 두 시를 보고 칠남매의 자녀를 두었다는 그분의 철학을 짐작 할 수 있었다.

그분은 나에게 컴퓨터를 배우면서 선배님이라고 하였는데 나는 그분 덕에 시 공부를 했다. 또 연세도 나보다 훨씬 높으니 선생님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내가 컴퓨터를 배울 때 친구나 손녀, 손자에게도 배우고 음료수를 사들고 점심을 대접하면서 친구에게도 배웠던 길을 따르는 것 같아 성심성의껏 알려줄 생각이다. 나는 최 선생님의 생시계(生時計)를 10년 정도 거꾸로 돌려주었다. 나의 생의 시계도 그렇게 되돌려 줄 사람은 없을까?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나다. 좀 손해일지 모르지만 친구로 생각하고 가끔 만나 화려한 점심을 먹으면서 젊게 살아야겠다.
(2010.7.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