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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이애란
ㆍ작성일	2010-07-17 (토)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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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피아노
낡은 피아노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이애란

나에겐 낡고 오래된 피아노 하나가 있다. 요즘 웬만한 집에는 피아노 한 대쯤은 있기 마련이지만 내가 열 살쯤엔 어지간히 부잣집이 아니고선 피아노를 가지고 있는 집이 그리 많지 않았다. 게다가 우리 아버지는 미국 유학중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짬짬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을 부쳐주는 돈으로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우리 형제 넷이서 생활해야 했기 때문에 부자는커녕 식구들 생활비만으로도 틀림없이 빠듯했었다. 그런데 엄마는 내게 피아노를 가르치셨다.

내가 대단한 음악적 재능과 열정이 있는 아이도 아니었고, 엄마도 딸을 위대한 피아니스트로 키우고 싶은 큰 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독실한 크리스쳔이었던 엄마는 내게 피아노를 가르쳐서 교회에 봉사시키고 싶었던 듯 싶다. 집에 피아노가 없으니 매번 학원에 가야만하는 내가 안 되었던지 엄마는 아끼고 아껴 모은 돈으로 피아노를 사주셨다. 사실 그때의 행복감은 나이가 든 지금까지도 어렴풋이 생각난다.

피아노가 처음 내 방에 들어온 날, 난 종일 피아노 앞을 떠나지 못했고, 그런 내 모습을 보는 엄마의 행복해 하던 눈빛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러나 난 오래지 않아 피아노에 시들해졌고 엄마 눈치만 보다가 결국 피아노 배우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그때부터 난 여럿이 방에 모여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피아노연주 장면이 나오면 그 모습을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을 견디기 어려워서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곤 했었다. 그때 우리 집에서 값나가는 물건이라곤 우리가 살던 작은 전세집 말고는 피아노가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정도니 난 어지간히 불효를 했던 것이다. 그 뒤로도 오랫동안 주인을 잘 못 만난 피아노는 커다란 몸집을 미안해 하며 내 방 한 쪽 벽면을 다 차지하고 있었다. 아쉬움이었을까 아니면 미련이었을까, 엄마도 나도 피아노를 없애고 싶어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피아노는 내가 가는 곳마다 줄곧 따라 다녔다.

그러던 어느날부터인가 피아노 앞에 앉아보기도 하고 건반 한두 개를 눌러보기도 하면서 다시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나를 다시 피아노 앞으로 이끌었나보다. 조금만 배워보다 힘들면 관두지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배우기 시작한 지가 벌써 십 년쯤 지났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강산이 변할만큼 오랜 시간동안 피아노는 내 친구가 되어주었다. 신기하게도 피아노는 내가 슬플 때 슬프지 않게 해주고 기쁠 때 더욱 기쁘게 해 준다. 애써서 많이 만나지 않아도 늘 함께하고 있는 걸 아는 오랜 친구처럼,

잡다한 세상살이를 굳이 입밖에 내뱉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 위로해 주는 친구처럼 피아노는 언제나 내 옆에 있다. 세상에 이런 친구가 있다는 게 감사하다. 너무 낡아서 조율을 해도 금방 소리가 내려앉아 이제는 악기로서 생명을 다한 게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난 이 친구를 버리지 않고 늘 함께하려 한다. 긴 세월 거들떠보지 않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벌써 30년가까이 변함없이 옆에 있어준 친구다. 이젠 교회 반주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엄마의 작은 소망은 이루어진 셈이다. 딸 역시 내 손때가 묻은 이 피아노 앞에 앉아 사랑스런 음악을 연주한다. 딸과 나를 음악으로 소통하게 해 주었으니 내 오랜 30년지기 친구에게 더 고마움을 느낀다. 때론 이런 내 친구가 한 잔의 커피같다는 생각을 한다. 한 잔의 여유로, 한 모금의 위로로 내 가슴을 적셔주는 커피. 난 오늘도 이 커피같은 친구와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