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지산은 전주시 북쪽에 누워있는 생명의 낙원이다. 동(東)으로 우아동, 서(西)로 송천동, 남(南)으로 금암동, 북(北)으로 호성동으로 둘러싸여 있다. 도심(都心) 안에 있는 시민들의 휴식공간이자 보배로운 건강지킴이다. 잘 조성된 산책길에 나무가 우거져서 새소리와 바람소리, 자연의 소리를 벗하여 산행하기에 좋은 천국 같은 산이다. 지세가 완만하고 볼거리가 다양하며 한가로운 등산길이어서 흥미롭다.
송천동에서 출발하여 다람쥐 재롱떠는 울창한 단풍나무 숲을 걸어가면 칠부능선(七部稜線)에 쉼터가 있다. 쉼터에는 시원한 정자가 두 채나 있고 게시판도 있다. 즐비하게 설치된 각종 운동기구가 등산객들을 끌어들인다. 쉼터에서 반들반들 다져진 황톳길을 지나면 하늘높이 솟아오른 잣나무 숲이 반긴다. 그 숲 바로 아래는 문화의 요람 한국 소리문화의 전당이 있다. 각종 문화행사가 열리는 소리문화전당의 감미로운 노래 소리는 행인의 발길을 붙잡는다. 전당의 뒷길을 걸어 맛좋은 복숭아 생산지 대지마을을 지나면 동물원이 나온다. 범이나 사자 등 맹수들의 포효(咆哮)에 깜짝 놀라 등줄기에 소름이 돋다가도 빙글빙글 돌아가는 놀이기구에 눈이 머문다. 유치원 아이들의 조잘대는 모습에 어린 손자의 재롱이 겹쳐 보인다. 동물원 뒷길을 돌아 가파른 길을 훠이훠이 오르면 우아동 뒷산인 정상에 이른다. 정상에 있는 정자에는 장기와 바둑이 마련돼 있어 시원한 산바람에 신선놀음을 즐길 수 있다. 윷판이 벌어져 오일장날처럼 사람들이 붐빈다. 우아동 뒷산에서 방향을 바꾸어 오르막길 내리막길을 반복하여 걷다 보면 동물원 앞 체련공원에 이른다. 널따란 축구장에는 젊음은 건각들의 기량을 겨루는 모습이 활기차다. 체련공원 왼편 능선에는 울창한 삼나무 군락지가 있어 인체에 유익한 피톤치드를 뿜어낸다. 삼나무 군락지를 지나 정상으로 올라가면 조경단을 만나 조선왕조의 숨결을 들을 수 있다. 능선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산바람은 꿀맛처럼 감미롭다. 이 길이 건지산 일주도로인데 잰걸음으로 두 시간쯤 걸린다. 내가 건강할 때 즐겨 걷던 건지산의 일주도로다.
내가 교통사고를 당한지 1년이 되는 7월 중순이다. 지겹던 병상생활에서 벗어나고자 무거워진 몸으로 건지산을 바라보며 길을 나섰다. 지팡이를 짚고 허리에는 복대를 둘렀다. 많은 사람들의 틈에 끼었다. 몸은 무거우나 마음은 날아갈 듯 가벼웠다. 단숨에 정상에 이르고 싶었으나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왼손을 불끈 쥐어 치켜들고 오른 발을 질질 끌며 힘겹게 산을 오르는 젊은이가 보였다. 나는 젖 먹던 힘을 다하여 그 젊은이를 앞질렀다. 나 역시 환자인 주제에 앞질러 가면서도 마음이 개운치가 않았다. 뒤에 오던 사람이 내 옷깃을 스치며 바람처럼 앞질러 갈 때 그 넘치는 건강이 부럽기도 하였다. 뇌졸중으로 반신불수가 된 젊은이가 재활의 꿈을 안고 애써 걷는 모습을 보노라니 연민(憐憫의 정이 느껴졌다. 고난을 당해봐야 아픈 사연을 느끼듯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애틋한 마음이 내 가슴을 후볐다. 저 젊은이가 하루 속히 회복되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칠부능선 쉼터에 이르렀다. 다소 무리한 계획이었으나 오늘의 산행목표지점이기에 강행군을 했던 것이다. 허리가 땅기고 약간의 통증이 왔다. 정자(亭子)에 앉아 숨을 골랐다. 정신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즐비하게 늘어서있는 운동기구에는 줄을 서서 기다리는 정도였다. 산이 좋아 찾아 드는 건지산 사람들, 그 많은 사람들을 따뜻한 가슴으로 안아주는 건지산이 고맙고 감사했다.
젊은 시절 내가 즐겼던 평행봉에서, 몸을 실어 빙글빙글 돌다 살포시 내려서는 사람이 있었다. 백발의 노년이지만 육체미가 넘쳐보였다. 노년에 이르도록 꾸준히 운동으로 건강을 지킨 사람이다. 젊은 여인들이 운동기구를 타고 신바람 나게 돌아가는 풍만한 육체미는 생동감 넘치는 한 폭의 그림이다. 뇌졸중으로 재활의 꿈을 안고 고통스럽게 운동하는 젊은이도 있다. 양 다리를 운동구에 걸쳐 열심히 돌리고, 줄을 당겨 양 팔의 근육운동을 하면서 통증을 참는 일그러진 얼굴이 대견하게 보였다. 몸이 건강하여 활발히 운동하는 사람, 몸이 불편한 사람들의 몸짓을 바라보노라면 만감이 교차한다.
건지산 사람들은 각양각색이다. 모두가 행복한 사람들만은 아니다. 새파란 젊은이가 뇌졸중을 만나 재활의 희망을 안고 고통스러워하는 사람, 나처럼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힘겨워 하는 사람, 젊거나 늙은 사람, 건강하거나 병든 사람, 말 못할 사연으로 근심과 걱정이 있는 사람들이 찾아 든다. 건지산 사람들은 나름의 소망을 이루려고 고통을 감내한다. 참기 힘든 고통과 번민이 있어도 실망하지 않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건지산 사람들, 건지산은 이 사람들을 가슴으로 품어주고 재활의 길을 열어준다. 어린이들에겐 나무처럼 싱싱하고 푸른 꿈을 심어주고, 병든 사람들에겐 상큼한 산의 정기를 불어 재활의 희망을 안겨주며, 젊은이들에겐 찬란한 꿈을 안겨준다. 노인들에겐 피고 지는 낙엽처럼 돌고 도는 윤회(輪廻)의 진리를 깨우쳐 준다.
생명의 숲 건지산 사람들이, 산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와 바람소리,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고 있다. 나는 그들이 건지산의 정기를 받아 병든 자는 치유되고, 근심걱정을 멀리 하여 나름의 소원이 성취되기를 간절히 빈다. 교통사고의 상처를 딛고 건지산에 올라, 건지산 사람들의 소원성취를 기도하는 나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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