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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김정길
ㆍ작성일	2010-11-05 (금)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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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메시지 '33'
희망의 메시지 ‘33’
벽송 김정길

예부터 우리민족은 ‘3’자를 유난히 좋아했다.
그리고 ‘33’이란 숫자는 우리민족에게 희망, 또는 행운을 가져다주는 고유명사로 여길 정도였다. 예컨대 일제 치하에서 우리민족이 절망의 터널에서 갇혀 있을 때 민족대표 33인이 발표한 3‧1독립선언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통해 온 국민이 똘똘 뭉쳐서 광복을 쟁취해 낸 저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3‧1절과 제야가 되면 보신각종을 33번 타종해서 민족대표 33인의 고귀한 뜻을 기리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가뭄이 들면 나라와 모든 백성이 비를 갈구한다는 일체감의 표시로 동자(童子) 33명으로 하여금 비가 오도록 비는 기우제를 올렸다. 고려 때부터 시작된 과거시험에서 33인을 뽑았던 것은 그 목민관으로 하여금 백성과 일체감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올 10월 13일,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땅 칠레의 북부아타카마사막 산호세광산에서 광부 33명이 보내온 ‘희망의 메시지’를 통해 세계인들이 일체감을 갖는 축제가 벌어졌다. 그 광산이 무너져 절망과 탄식으로 가득 찬 700m 암흑 같은 땅속에서 69일 만에 33명이 모두 구출되는 각본 없는 인간드라마가 연출되었기 때문이다. 아리엘 티코나는 지하에 갇힌 42일째에 아내가 여자아이를 출산하는 동영상을 전달받고 딸의 이름을 스페인어로 희망을 의미하는 '에스페란사'로 지었다. 그리고 절망 속에 한줄기 빛처럼 태어난 딸의 미래를 축복하며 33명의 광부들과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기에 전원 구출이라는 대서사시를 쓰게 됐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세계 33개국 취재진의 대형라이트가 구조용 캡슐설치대를 대낮같이 비치며 구출되는 그들의 모습을 전 세계에 생생하게 전달하였기에 그 드라마는 더욱 빚을 발했다.
올 8월 5일, 금광의 매몰로 시작된 절망의 사투가 69일 만에 33인 생존자 전원 구출이라는 기적 같은 드라마로 승화되는 순간이었다. 그들이 매몰된 지 첫 2주일간은 33명 모두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닌 것으로 여겨지다 극적으로 생존사실이 알려지면서 원대한 미래를 다시 꿈꾸는 희망의 드라마가 연출된 것이다. 그들의 단결력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필설로 형용하기 힘든 희망으로 가득 찬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칠레 국민은 물론 세계인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주는 길라잡이 역할에 충실했다.
10월 13일, 맨 처음 지상으로 구출된 사람은 플로랜오 아발로스였다. ‘불사조’로 일컫는 구조캡슐의 문이 열리기 무섭게 아주 건강한 모습으로 걸어 나왔다. 동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촬영해서 전 세계에 알려 이목을 집중시켰던 그는 가족들과 뜨거운 포옹으로 화답했다. 일곱 살의 아들은 감격에 겨운 눈물을 터트리며 세계인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달궜다.
그런가하면 쾌활한 성격의 마리오 세풀베다는 산타클로스처럼 어깨에 메고 올라온 자루에서 돌을 건네며 지하 감옥에서 가져온 기념품이라며 폭소를 자아냈다. 가장 나이가 어린 19세의 지미 산체스는 “가장 많이 힘들 때 내 곁에 딸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버텼다.”고 토로했다. 유일한 볼리비아 출신인 카를로스 마마니는 가난 때문에 일자리를 찾아 칠레의 광산에 왔다가 5일 만에 매몰돼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클라우디오 야네즈는 지하에서 여자 친구 크리스티나 누네스에게 편지로 청혼을 받고 구조된 직후 수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즉석 결혼식을 치르는 깜작 쇼를 연출하였다.
이렇게 칠레 광부 구출 드라마는 33명의 영웅을 탄생시켰다. 그 중에서 최대 공신은 작업반장으로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했던 루이스 우르수아(54)가 아닌가 싶다. 그는 대원들에게 식량을 적절히 나누어 주며 절망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도록 현장에서 진두지휘하며 살신성인의 자세로 임했기 때문이다. 구출작전이 전개될 때에도 마지막까지 남아서 대원들을 모두 올려 보낸 뒤 지상으로 올라와 세계인들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사람들은 그를 칠레 대통령으로 뽑아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또 다른 영웅들은 지상에 있었던 구조대와 칠레국민들이었다. 사상 유래 없는 장기간의 구조작업과 전대미문의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오르게 될 이번 구조작전에는 광산 기술자와 구조 전문가, 의료요원 등 250여명과 미국 항공우주국의 첨단기술이 총동원될 정도였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삼성전자가 만든 휴대폰이 위기에 처한 광부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 구세주 역할을 톡톡히 해내 화제가 되고 있다. 암반을 뚫은 뒤 구조용 캡술에 음식물과 의약품, 그리고 광부들의 가족사진과 축구경기 동영상 등을 담은 삼성의 휴대폰을 지하로 내려 보내 그들이 구출될 수 있다는 믿음을 줬기 때문이다.
그동안 수많은 재난과 사건사고를 보아왔지만 그토록 인간의 힘과 땀을 모아 극복해낸 사례는 없었다. 저마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 청혼한 애인 등 꼭 살아서 땅 위로 올라가야하는 삶의 목표를 던져준 그들이 바로 모든 생명을 구출하는 원동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69일간의 암흑 속에서 인간의 삶에 대한 갈망과 희망, 그리고 동료애와 사랑을 세계인들에게 일깨워주는 대서사시였다.
칠레는 이제 훨씬 더 단결됐고 더 강력해졌으며 전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고 사랑스러운 국가로 재탄생했다는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의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의사들도 그들의 정신적, 육체적, 심리적 건강이 놀라울 정도로 양호한 상태라며 이는 69일의 시련이 가져다 준 ‘기적’이라고 극찬했다.
생사의 문턱을 넘나들면서도 삶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세계인에게 보내준 칠레광부 33명과 우리민족대표 33인의 존재가 더욱 위대해 보인다. 이제 ‘33’이라는 숫자는 앞으로 우리민족뿐만 아니라 세계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로 통하게 될 것이다.
(2010. 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