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일보] 운조루를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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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조루(雲鳥樓)를 생각하라



한해를 시작하면서 운조루(雲鳥樓)를 생각한다. 즈믄 세월, 온갖 풍상을 견뎌온 퇴옥(頹屋), 그 빛바램 속에 담긴 전설을 떠올린다. 헌데, 정해년(丁亥年) 벽두(劈頭)에 느닷없이 고택(古宅) 이야기를 꺼낸 것은 무슨 까닭인가?


운조루는 조선 영조 52년(1776년) 낙안군수를 지낸 류이주(柳爾胄)가 세운 집이다.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지리산 문수골 아랫자락에 터를 잡은 이곳엔 눈길을 끄는 게 두 개 있다. 하나는 굵은 통나무로 만든 뒤주고, 다른 하나는 굴뚝이다.


뒤주와 굴뚝에 숨은 뜻은…


쌀 두 가마 반이 들어가는 원통형 뒤주의 밑부분에는 가로 5㎝ 세로 10㎝의 자그마한 직사각형 구멍이 뚫려 있다. 구멍을 여닫는 마개에는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글씨가 쓰여있다.


‘누구든 마음대로 쌀을 퍼갈 수 있다’는 뜻이다. 뒤주에선 소출(所出)의 20%인 한해 서른여섯 가마가 나갔다고 전해온다.


운조루를 찾은 사람들은 이웃이나 과객(過客)이 끼니를 거르지 않도록 했던 그 넉넉한 마음씨에 감탄한다. 하지만 필자는 뒤주가 있는 자리에서 더욱 숙연해진다.


뒤주는 후미진 곳간채에 놓여있다. 사랑채나 안채에 놔둔 여염집과 다르다. 주인과 얼굴을 마주치지 말고 편안하게 쌀을 가져가라고 배려한 것이다.


나지막한 굴뚝도 고개를 숙이게 하는 유물이다. 한옥은 굴뚝이 높아야 아궁이와 구들장의 연기가 잘 빠진다. 운조루의 굴뚝은 그러나 다른 집에 비해 아주 낮다.


그렇다면, 집 주인은 왜 굴뚝을 채 1m도 안되게 만든 것일까? 그것은 연기가 높이 올라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보릿고개를 넘으며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하던 배 고픈 사람들이 밥 짓는 연기가 올라오는 것을 보면 더 서러울 거라는 속내였다.


운조루의 뒤주와 굴뚝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시사한다. 아파트 광풍(狂風)으로 얼룩진 지난해는 한국사회의 양극화가 절정을 이룬 시기였다. 경제적인 부가 특정지역으로 집중되고, 빈부 격차는 극심해졌다. 올해도 이 간극(間隙)은 더욱 벌어질 전망이다.

(...생략...)

부유층은 ‘돈을 가진 자의 도리’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 도리를, 류이주의 8세손인 류응교(柳應敎·전북대) 교수는 ‘…200년이 지나도록 망하지 아니하고 오늘날까지 가문이 번창한 것은 오로지 분수를 지키며 생활하고, 이웃을 돌보았던 마음이 전승되어 내려왔기 때문이라고 본다’고 썼다.


운조루를 생각하라’는 일갈(一喝)은 그 때문이다.

하여, 올해의 화두(話頭)는 ‘배려’였으면 한다. 없는 자의 자존심까지 ‘배려’한, 운조루의 숨은 뜻을 되새겼으면 한다.


겨울 운조루를 보았느냐


그 단아함 속에 깃든


단호함을 보았느냐


…누백 년 늙은 퇴옥


호랑이 뼈 대신


말뼈가 걸린


슬픈 권위의 잔해


시골 양반의 위엄과 음덕을 그늘처럼 깔고 앉아서


이제는 눈 속에 묻혀 사라져가는


겨울의 전설


그 서릿발 같은 아름다움을 보고 있느냐


(유자효, ‘겨울 운조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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