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구례 운조루 금환낙지 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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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우리풍수 | 구례 운조루 금환낙지 명당]


조선 후기 명당에 터잡기 교과서

운조루 아래에 있는 금환낙지 명당으로 알려진 춘해루.  

호남의 대표적인 명가 고택 가운데 하나인 운조루(雲鳥樓,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다. 운조루는 입향조 류이주(柳爾胄, 1726~97)가 삼수 부사를 지낸 뒤 풍수적으로 길지(吉地)임을 확인하고 들어온 땅으로(1776년) 조선 후기 터잡기 양식을 파악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류이주가 이곳을 길지라고 확신한 까닭은 강 건너 오봉산이 아름답고, 사방의 산들이 다섯 가지 모양(五星)을 갖추었으며, 물이 풍부하고, 풍토가 후덕하며, 대지(垈地)가 거처하기에 좋다 등 다섯 가지 이유 때문이다.


이러한 터잡기 기준은 이보다 20년 앞서 저술된 것으로 알려진 이중환의 ‘택리지’와 상당한 차이를 보여 비교가 된다. 이중환은 ‘집터를 정하는 데 가장 먼저 수구(水口)가 닫혀 있는가를 살피고, 다음으로 들판의 형세와 사방의 산, 흙 색깔을 보라’고 하였다. 이중환과 류이주가 터잡기에서 차이를 보여주는 부분은 수구(水口)다. 운조루는 수구가 닫혔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이중환의 관점에서 보면 터잡기의 큰 금기사항을 범하고 있는 셈이다.


어쨌든 이곳 오미리에는 3개의 명당 터가 있다고 전한다. 첫 번째가 금거북이 진흙 속으로 들어가는 금구몰니형(金龜沒泥形), 두 번째가 금가락지가 땅에 떨어지는 금환낙지형(金環落地形), 마지막으로 다섯 가지 보물(금·은·산호·진주·호박)이 모이는 오보교취형(五寶交聚形)이다. 이 가운데 운조루는 금구몰니형이고, 아래 춘해루(春海樓)가 금환낙지형이라 한다. 금환낙지형의 집터는 원래 만석꾼 박참봉의 집이었는데, 지금은 주인이 이씨로 바뀌었다(마을에 살고 있는 류맹효 전 교장 증언).


춘해루에는 금가락지 모양의 담 안에 대나무를 심고, 그 안에 다시 탱자나무를 심었다. 담은 이곳을 처음 방문하는 이들도 금가락지 모양을 형상화했음을 쉽게 알 수 있게 한다. 그런데 뒤꼍의 대나무와 탱자나무는 무슨 까닭으로 심었을까? 물론 대나무는 농경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것이긴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마을 뒷산 너머의 작은 봉우리 두 개에서 찾을 수 있다. 풍수에서는 이를 규봉(窺峰)이라 하여 꺼리는데, 아마도 이를 가리기 위해 대나무를 심은 듯하다. 만약 그렇다면 이는 류이주의 풍수 실력이 대단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운조루와 춘해루말고도 오보교취형의 명당이 이 마을 어디엔가 있다고 한다. “해방 전 이곳에는 오보교취형의 명당이라고 믿고 들어온 집들이 12가구나 있었는데, 운조루나 춘해루보다 웅장했다.” 오보교취형의 명당을 찾기만 하면 저절로 부귀영달한다는 소문만 믿고 찾아와 집을 짓고 산 사람들은 명당발복의 효험이 없고, 가지고 온 재산마저 탕진하자 ‘풍수에게 속아 수천금을 주고 왔는데…’ 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떠났다”고 류교장은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이곳이 해방 전뿐 아니라 그보다 훨씬 이전에도 명당 열풍에 휩싸인 적이 있다는 증언이 있는데, 일본인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은 “1929년 이곳을 방문했을 때 이미 전국 각지에서 이주해온 100여호의 집들이 있었고, 또 십수호의 집들을 짓고 있었다”고 적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운조루와 춘해루만이 옛 모습을 부지하고 있을 뿐 이전의 집터는 모두 논으로 바뀐 지 오래다. 시대 흐름 탓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일부 풍수전문가들은 이곳 터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의견을 제기하기도 한다. ‘택리지’에서 강조하는 수구(水口)가 닫히지 않았다는 점을 드는가 하면, 마을 뒷산이 이곳 오미리를 감싸지 않고 구례읍 쪽에 있는 사도리(沙圖里·도선국사의 전설이 깃든 마을) 쪽으로 돌아앉았으므로 산의 얼굴(面)이 아닌 등(背)에 해당하기 때문에 명당이 될 수 없다고도 주장한다. 반면 이곳 운조루와 춘해루에서 과거 급제자가 여럿 나왔고, 만석의 재산을 유지한 것으로 보면 명당임이 틀림없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운조루와 춘해루 터가 있는 오미리 마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조선 후기 사대부의 터잡기의 전형을 보여주는, 풍수사에서는 아주 중요한 교육장임이 틀림없다.   (끝)




김두규/ 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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