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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최정순
ㆍ작성일	2009-12-27 (일)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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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1)
편지 (1)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최정순

여학생들의 재잘거림 소리로 교실은 장속이다. 그 속에서 당번이 목이 터져라 외쳤다. 잘 들어보니 나를 교무실로 오라는 전갈이었다. 애들의 시선이 모두 내게 쏠렸다. 그 순간 이런저런 생각들이 번개처럼 스쳤다. 밀린 수업료도 다 냈고, 도둑영화 한 편 본 일도 없으며, 빵집에 들락거리거나 청소시간에 뺑소니를 친 일도 없다. 그렇다고, 상 받을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하필이면 종업식 날 나를 교무실로 부르는 이유가 뭘까. 가슴을 조이며 교무실로 갔다.

내 학창시절 때만 해도 도덕교육과 학교규율이 참 엄격했다. 집에서는 아버지가 무서웠고,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무서웠다. 하물며, 쉬는 시간 선생님들이 모두 자리에 계시는 교무실로 불려가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교무실 출입은 규율을 어긴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갑자기 호출명령을 받은 나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담임선생님 앞에 선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뜻밖의 일에 가슴이 뛰었다. 편지 한 통이 지휘봉과 나란히 책상에 놓여있지 않은가. 선생님은 나를 뻔히 바라보며 말없이 그 편지를 건네주셨다.

편지를 먼저 읽은 선생님의 표정을 읽지 못한 어설프기 짝이 없던 여중 3학년생인 내가 벌써 이순을 훌쩍 넘어 은발이다. 이 새벽, 내 마음은 벌써 색동옷을 입고 웃고 울고 지냈던 그 시절로 돌아갔다. 이성으로부터 온 편지를 애들 앞에서 까발리지 않고 교무실로 불러 은밀히 넘겨주신 속 깊은 선생님의 마음을 새삼 되새겨본다.

우리 집은 텃밭이 울밖에 있었다. 공교롭게도 아랫마을로 가는 지름길이 텃밭 가상으로 나 있어서 어머니 대신 텃밭에서 푸성귀를 뜯어오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 날도 하필이면 상추를 뜯고 있을 때 그 오빠가 올 게 뭐람. 오빠는 나를 볼 적마다 내 이름을 부르며 말을 걸었지만 부끄러워 상추 소쿠리에 고개를 처박고는 말대꾸를 해본 일이 없다. 사실은 이름만 어렴풋이 알 뿐, 나이도, 언제 군대에 입대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 받은 편지가 바로 그 오빠로부터 배달된 군사우편이자 이성으로부터 받은 첫 편지다. 아마 골방에서 편지를 읽었겠지. 글귀는 떠오르지 않으나 그 당시 학적부상 이름이 잘못 기재되어‘정애’라고 불렀는데 편지 첫 줄에 “귀여운 정애야”라고 쓴 글귀만이 또렷이 떠오를 뿐이다. 밤새도록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던 답장은 결국 붙이지 못했다. 편지 간수를 잘못해서 어머니한테 들켜 자다 말고 일어나 야단맞은 추억이 지금 왜 이리 달콤한지.

싸락눈이 내리는 괴괴한 밤, 강아지 방울소리를 들으며 잉크를 찍어 펜으로 편지를 썼던 아득한 그 옛날이 다시 돌아온다면, 나는 어머니한테 열 번 야단을 맞는다 해도 답장을 쓰리라.

(2009년 12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