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날더러 못하는 게 뭐냐고 묻는다. 특출하지도 못하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린다는 뜻일 게다. 그럴 때면 좀 쑥스럽기는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다. 사실 운전면허증도 18년 전에 취득했다. 그런데도 여직 운전을 못하는‘21세기의 운전맹이다. 운전학원에 접수하고 필기시험은 한 번에 합격했다. 바로 실기시험에서 브레이크가 걸렸다. 장장 열두 번째에야 합격을 했으니, 오죽하면 수입인지 붙일 자리가 없어 두어 장을 뜯어내고 열두 번째 수입인지를 붙였을까. 하도 오래된 일이라 이제는 창피하지도 않다. 뒤이어 남편이 운전면허증을 취득하면서 우리 집에도 승용차라는 새 식구가 불어났다.
남의 자식은 가르쳐도 자기자식은 못 가르친다고 했던가? 남편은 나한테 운전을 가르치려고 작심을 했던지 여름방학이 시작되자 새벽이면 나를 깨웠다. 연습하기 싫어서 꾀를 부리고 아픈 척도 하다가 몇 번 따라나섰다. 그이의 구령에 따라 안전띠를 매고, 시동을 걸고, 출발준비, 액셀레터를 서서히 밟으면서 전진, 앞 신호등에서 좌회전․우회전, 급정거 브레이크 밟고, 항상 발은 브레이크에 놓으라는 등 머리가 지끈지끈 아플 정도로 훈수를 해 댔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절호의 기회였는데……. 핸들을 잡기만하면 이유도 없이 차가 무서웠다. 운전은 정말 하기 싫었다. 이럴 거면 왜 돈들이고 고생해가며 운전면허증을 땄는지, 어느 날인가는 쌓아놓은 벽돌더미에다 차를 처박고 말았다. 바로 그때 조수석에 앉았던 그이의 입에서
“내 명대로 못살 것 같구먼!”
하는 탄식의 소리가 뛰쳐나왔다. 내 운전연습은 여기서 막을 내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지갑 속에는 녹색운전면허증이 버젓이 자리하고 있다. 신분증이 필요한 곳에서 운전면허증을 보이면 군말 없이 어디서든 무사통과다. 어쩌면 하늘나라까지도 통과되지 않을까 싶다. 신분증을 대신해주는 운전면허증처럼, 누가 나를 대신해줄 수는 없을까. 돈· 건강· 자식· 친구 아니면 또 어떤 믿음이?
‘운전맹'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국악원이나 백화점 아니면 수선 집으로 버스를 타거나 걸어서 다닌다. 그러다 보니 시내버스 노선이며 시가지가 내 손금을 보듯 훤하다. 어쩌다 승용차로 외출을 하다보면 자연히 조수석에 앉은 내가 훈수를 하게 된다. 바둑판처럼 그려진 시가지가 내 손바닥 안에 있으니 말이다. 시내 지리를 몰라 쩔쩔매는 그이에게 이리 가라, 저리 가라, 천천히 달려라, 차선을 지켜라, 신호등을 보라는 등 온갖 잔소리를 한다. 18년 전에 들었던 그 훈수를 운전맹인 내가 그이에게 해대다니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온다. 한편으로는 앙갚음을 하는 것 같아 재미도 있다. 주객이 전도되었다고나 할까.
장거리 여행을 할 기회가 왔다. 화창한 날씨만큼이나 달보드레한 라일락향이 신바람을 부추겼다. 느긋하게 조수석에 앉아 클래식을 들으면서 오월의 차창 밖 풍경에 젖어 센티멘털한 문학소녀가 되고 싶었다. 가사님마저 백마를 탄 백작 같이 보였다.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드디어 등판번호 45부 1293을 단 우리 집 은빛 애마는 마치 제21회 밴쿠버동계올림픽에 출전하던 쇼트트랙 선수처럼, 각기 다른 등판번호를 단 다른 차들과 함께 톨게이트를 빠져나갔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차선을 바꿔가며 초반전부터 치열한 경쟁이 시작되었다. 등판번호 만큼이나 다양하게 빨강· 하양· 검정· 은빛의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은 누구의 훈수를 받으며 달리는지 스릴 넘치게 달리고 있었다. 마치 젊은 날, 인생의 오르막길을 앞만 보고 달렸듯이 말이다.
몇 분쯤이나 달렸을까. 나더러 이정표를 보고 코치를 잘하란다. 실은 창원을 몇 차례 다녀왔지만 매번 고속버스나 아들차로만 다녔지 오늘처럼 우리 내외만 승용자로 가기는 처음이다. 물론 혈기왕성했던 시절에야 윗녘 강원도 평화의 댐을 거쳐 아랫녘으로 내려가 삼천포를 거쳐 뱃속으로 차를 몰고 들어가 통영으로 건너보기도 했지만……. 고속도로에서의 운전은 잠시도 긴장을 풀 수가 없었다. 어찌나 과속으로 달리며 끼어들기를 하던지 아찔아찔한 순간들이 심장을 들었다 놓았다하며 간을 콩알만 하게 만들었다.
운전은 권력과 같은 것일까. 왜 핸들을 잡기만 하면 앞만 보고 달릴까. 이정표를 보고 나더러 코치를 잘 해달라더니 깡그리 잊고 내 훈수를 듣지 않는다. 이는 선거철이면 나를 당선만 시켜주시면 여러분의 뜻을 받들어 정치를 잘하겠다는 말과 무엇이 다를까.
드디어 일등도 꼴지도 없는 무승부의 경기실황을 운전맹의 실감나는 중계방송으로 우리는 다른 차들과 함께 결승점 가까이에 이르렀다. 그런데, 골인지점인 동마산 톨게이트 앞에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큰소리로 외쳤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하필이면 하이패스노선으로 진입할 게 뭐람! 순간 나도 모르게“내 명대로 못살 것 같구먼!”이란 말이 절로 나왔다. 다행이도 뒤에 차가 없어서 후진할 수 있었다. 두고두고 입줄에 오르내릴 해프닝이다.
운전사는 승객을 위한 운전사다. 내가 비록‘운전맹'이지만 나는 승객이다. 내가 하는 말은 곳 국민의 소리가 아니겠는가. 나는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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