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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박경숙
ㆍ작성일	2010-05-11 (화)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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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금파리
사금파리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 야간반 박경숙

거리에서 아이들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아름답게 느껴진다. 흔히 자녀를 키우는 부모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흙 작업에 흥미를 보이는 아이와는 달리 내 앞에서 아무 목적도 없이 멍하게 앉아 있는 아이들을 바라 볼 때는 가끔 세상의 이중성을 같이 본다.

청소년상담지원센터에서 도자기를 가르친지도 꽤 오래 되었다. 처음엔 그저 내가 가진 소양을 부족한 아이들에게 나누어 줄 기회라 생각했던 허울 좋은 봉사활동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현실의 이중 잣대에서 기꺼이 해방되고 싶은 나의 허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청소년상담센터 전문인이 말하는 아이들에 대한 평가는 사회적응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청소년이라고들 말한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사회부적격자들이다. 더 전문적인 용어로는 촉법소년소녀들이고, 인생낙오자들이며, 눈치꾸러기집단의 문제아들이다. 그런데 전문가도 아닌 내 부족한 시선으로는 글쎄다. 그러니까 너무 일찍 사회로부터 버림받아서인지 사회적응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아이들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다.

"선생님의 자녀는 지금 행복합니까?" 아이의 눈빛에 순간 움찔했다. 정말 궁금해서 물어 본 것 같지 않아서 "그랬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고 대답해 주었다. 웃음이 참 따스한 중학교 2학년 여자 아이였던 걸로 기억한다. 아이들에게 줄 아이스케끼를 들고 찾아간 전주시 ○동 청소년상담지원센터의 첫 수업 시간에 보았던 반짝이는 아이들의 눈망울을 지금도 지울 수가 없다. 이미 학교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크고 작은 말썽과 사고를 치고 잡혀온 중뿔난 망아지들 아닌가. 그러나 입에 맞는 아이스크림을 고르려고 바쁘게 손을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은 우리 아이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교화를 목적으로 붙잡힌 질풍노도들이겠지만 선입견과는 달리 순수한 녀석들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나 역시도 결혼하고나니 금쪽같은 두 아이가 생겼다. 조기 교육 운운하는 열성 엄마 노릇엔 발맞추기가 어려워 장난감 놀이와 그림 선생님 집에 놀러 보내는 일로 대신했지만 아이들은 고맙게 별 탈 없이 잘 자라주었다. 큰 아이가 5학년이 되면서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경치 좋은 산이 보이는 조용한 새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단지에 초등학교가 들어서면서 자모회 참석도 나름대로 재미가 났다. 아이의 심성은 건강했지만 공부의 우열로 친구를 사귀는데 종종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시나브로 어머니들 사이에서도 공부가 부족한 아이는 은근히 왕따를 시켰다. 평소 사교육을 그리 마땅찮게 여겼던 내가 선생님을 찾아 과외공부를 시켰다. 그러나 아이의 성적은 더 이상 오르지 않았고, 딸아이가 비싼 과외를 빼먹고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선생님도 딸아이가 수업에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다른 아이들에게 방해가 된다는 이유에서다. 섭섭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지만 선생님을 포장하여 나도 따라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아이는 말없이 수긍했다. 어린 게 그동안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했을까. 별 수 없는 속물에 허영덩이인 내 대신 딸아이가 돌멩이를 맞은 기분이 들었다. 내 아이를 다른 아이와 비교하며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나는 그때 처음으로 부모로서가 아니라 어른으로서 아이에게 큰 빚을 진 기분이 들었다.

흙을 빚어 도자기를 만드는 작업은 지극히 단순해 보인다. 그러나 그 과정은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예로부터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하지 않았던가. 내 맘에 흡족한 기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점토를 수없이 치대어 흙 속에 든 공기와 잡석을 골라내야 한다. 그 작업이 도자기를 만드는 첫 시작이다. 이 작업이 끝나면 서서히 형태를 잡아가며 모형을 만들고 볕이 들지 않은 그늘에 건조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도자기에 금이 가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 건조 정도에 따라서 화장토를 곱게 입히거나 원하는 문향을 그려 넣고 그늘에서 다시 말린다. 이 같은 과정을 모두 마친 기물을 섭씨 C800도 고온에서 초벌하고 재차 유약 단계를 거친 뒤 또다시 C1200도라는 높은 온도에서 살아남은 것만이 비로소 한 점의 도자기로 완성되는 것이다.

가마터에 가보면 바닥에 버려진 것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사금파리들이다. 사금파리는 산산이 부서진 도자기 조각을 말한다. 어딘지 모자란 것들이다. 제멋대로 일그러져 휘인 것들부터 금이 생겨 성에 차지 않은 것들을 과감히 폐기 처분하는 것은 도예가들에게는 흔히 있는 일이다. 어차피 온전한 도자기로서 제 몫을 하지 못 할 것들이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도자기는 비슷한 점이 참 많다. 처음엔 어머니의 젖으로만 충분했던 간난아이가 점점 주위의 사랑과 관심을 먹고 어른으로 성장해 간다. 어떤 아이는 매끄럽게 잘 빚은 도자기처럼 부모에게 이미 많은 기쁨을 주었을 것이다. 또 어떤 아이는 마음이 쓰이고 손이 많이 가는 아이로 자랄 지도 모른다. 따지고 보면 수십, 수 백 번씩 손이 가야하고 눈길 한 번 잘못 준 도자기가 내게 준 실망감은 또 어떠한가. 온 정성을 쏟아 만든 도자기가 강한 열꽃을 견뎌내어 내 손에 다시 돌아 올 때까지 그 모습 그대로 내가 원했던 것과는 거리가 먼 때가 다반사였다. 어떨 때는 아주 다른 모양을 하고 나올 때도 있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흙과 지샌 수많은 시간과 공력이 아깝고 억울하여 실망이 더 컸을 지도 모른다. 공부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아이에게 조바심을 내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어느 부모라도 아이에게 실망하고 포기하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비록 비틀리고 틈이 간 컵 하나를 버리질 못하고 집안 구석구석에 쌓아 두는 내 마음처럼.

도자기 만드는 작업에 꽤 소질을 보이는 아이도 있었다. 조막만한 손을 놀려 꽃병이나 컵도 곧잘 만들었다. 내 어깨도 주무르며 어리광을 피우는 아이들을 보면서 문제아이들에겐 문제부모가 있다는 청소년학과 교수님 말씀이 떠올라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남이 하는 일에는 두부 썰 듯이 반듯하기를 요구하지만 내가 하는 일을 평가해 보면 그렇게 반듯하게 잘라지는 게 아닌 걸 깨닫게 된다. 모두들 그저 실패의 경험을 반성하며 앞날을 위한 거름으로 삼아야 한다지만 그러는 게 참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낀다. 간혹 남에게 모범적으로 보이는 내 모습이 모두 내가 아닐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사금파리 바닥에 구멍을 뚫어 꽃을 심었다. 일부러 조각을 낸 것처럼 개성이 독특하고 아름다웠다. 이가 빠진 주전자도 그 멋대로 훌륭한 화분으로 변했다. 처음엔 주발이었던 것이 소박한 야생화를 품은 채 식탁 위에 놓여 따가운 오후의 햇볕을 받고서 부족함 없이 반들반들 윤이 났다. 한때 실수로 상처 난 아이들이지만 다시 한 번 멋진 화분으로 탈바꿈할 관심과 칭찬에 목마른 녀석들이다. 아무리 볼품없고 하찮은 물건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애정을 가지고 정성을 들인 만큼 꼭 보답이 오지 않던가. 욕심은 필요치 않았다. 비록 내가 원하던 것이 아니면 어떠리. 그만해도 고맙지. 이거라도 감사할 일이지.

우리 주변을 잘 살펴보면 청소년상담센터가 가까이에 있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센터에서는 아이들을 위하여 임시 숙소를 제공하고 교양과 문화에 많은 관심을 쏟으며 각종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가르친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게 오늘의 현실이다. 다시 되돌아 갈 곳이 없어져 버린 그들의 잘못보다는 가정의 파괴와 의식 없는 어른들의 쉬운 선택이 이 아이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이들에게는 언제나 희망을 버리지 말고 살아가기를 바라면서도 그들 앞에 놓인 불확실한 미래를 생각하면 늘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딸의 나이보다 훨씬 어린 소녀를 대할 때는 내 자신이 부끄러워 답답하고 묵지근한 게 진이 빠져 나가는 것 같았다. 남자아이들보다 여자아이들의 문제가 더 심각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같은 사회 문제는 한 순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관계기관이나 청소년에 관한 일을 하는 모든 선생님과 기성세대가 힘을 모아서 앞으로 우리의 미래가 될 청소년들이 고통 받지 않는 밝은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우리는 늘 우리 안에서 자녀들의 모습을 비춰 볼 거울로 살아가길 바란다. 그리고 누구나 본받을 만한 부모로서 어른으로 비춰지길 원한다. 부디 좋은 그릇이 되어서 꽃을 피우면 더 바랄 게 없겠지.

(2010. ㅇ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