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사건이 연일 매스컴을 오르내렸다. 어제는 온 국민의 놀람과 슬픔을 뒤로 하고 눈물 속에 닷새 동안의 장례가 시작되었다. 하늘마저도 슬픈 듯 봄답지 않게 추적추적 비를 뿌렸다. 그날 늦은 저녁, 텔레비전에서 영화 한 편이 방송되었다. 제목은 '챈스 일병의 귀환(Taking Chance)'이었다. 군대영화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2010년 골든 글로브상과 2009년 미국 배우조합상에서 케빈 베이컨이 남우주연상을, 로스 카츠감독이 감독상을 거머쥔 작품이라는 설명이 있었고, 지금의 시국과 맥을 함께 한 내용이어서 시청하게 되었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었다. 2004년 9월 이라크의 아르마디에서 전사한 미국 해병대의 챈스 펠프스 일병의 유해를 운구하는 마이클 스트로블 해병 중령이 쓴 글이 토대가 되었다. 유해 운구의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작성하여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신문에 기고한 에세이를 미국 HBO사가 2009년 TV용 영화로 제작했다.
전쟁에 대한 찬반의 논란 속에 전우들은 격전지에서 희생하고 있는데 비해, 마이클 중령은 본국 펜타곤의 전투발전지휘본부에서 편안하게 근무하며 지내는 것에 일말의 가책과 자괴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취급하던 자료에서 챈스 일병의 기록을 보게 된다. 19살의 나이에 먼 이국땅에서 조국을 위해 숨졌으며 자신과 고향이 같은 것을 이유로 와이오밍주의 뒤보이스까지 유해 운구를 자원하게 된다. 미국을 위해 싸우다 숨진 전사자들은 얼음에 채워져 도버기지 안치소로 운송된다. 그곳에서 훼손된 시신을 깨끗하게 정리하여 가족들에게 보내지게 된다. 총탄을 맞은 흔적은 재생시키고 상처로 인한 핏자국이나 손톱 밑까지도 말끔히 닦는다. 심지어는 목에 걸었던 군번 목걸이나 개인 소지품도 모두 소독하여 준비한다.
영화는 미국이 세계 최대 강대국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첫 장면부터 보여준다. 사체를 이동할 때마다 모든 관계자들이 정중한 거수경례를 붙이며 최대한의 예우를 갖추는 모습들은 감동을 느낄 정도이다. 전사자는 한 계급 승진을 시키며 그에 맞는 복장과 훈장을 달아 성장(盛裝)을 시킨다. 클로즈업한 사체의 군복 바지는 마치 칼날처럼 줄이 서 있었다. 중령이 사체를 관에 담아 항공기로 이동하는 장면도 이색적이었다. 관이 수화물 칸에 실어지는 과정 중에도 거수경례로 예우하고 항공사의 직원들도 경건한 경례를 올린다. 비행기에 오르기 전 검색을 할 때에도 군복을 결단코 벗지 않고 손으로 검색하기를 요구한다. 비행기를 갈아타는 과정에서도 시간이 맞지 않자 유해와 함께 체류장에서 노숙을 하기도 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와이오밍주에 도착하여 자동차로 유족이 있는 뒤보이스로 향해 이동할 때였다. 장의차에 전사자 유해를 싣고 그 뒤를 따라 정복을 입은 중령이 운전을 하고 가자 주위를 지나던 모든 차량들이 전조등을 켜고 같은 속도로 함께 길을 달리며 조의를 표하는 모습은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전사자의 고향마을에 도착하여 유족과 마을에 살고 있는 전쟁 참석자들이 모여 챈스 일병에 대한 영웅담을 나누며 엄중하게 장례식을 거행한다. 냉정해 보이던 중령은 마지막으로 눈물 한 방울을 떨구며 거수경례를 올린다. 그리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회고(懷古)의 글을 쓴다.
이 영화를 보며 미국이란 나라가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우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수십 년이 지나도 미군들의 시체를 찾고, 전사자에게 절대적인 예우를 하는 미국의 저력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이것이 미국이고 최강의 미군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가 되는 것 같았다.
우리 천안함의 장병들이 뇌리에 떠올랐다. 깊고 차가운 서해의 바닷속에서 죽음을 맞았을 젊은 그들. 과연 우리나라도 나라를 위해 숨진 전사자들을 그렇게 대접해 주었을까. 귀대 명령을 어기고 돌아 오지 않는 천안함 해병들에게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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