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하늘은 맑고 푸르다. 맑은 햇살을 받으며 대우빌딩 앞에 도착하니 사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내가 위 수술을 하고 힘들 때 만난 동료들이라 그런지 봄나들이 갈 때는 더욱 정겹다. 일할 때 일하고 놀 때 즐길 줄 아는 멋쟁이 봄처녀들이다.
차창 밖 먼 산을 보노라니 잎사귀보다 꽃을 먼저 세상에 내밀던 진달래, 개나리, 목련꽃은 빨간 철쭉에게 자리를 양보했는지 보이지 않는다. 꽃들도 서로 배려할 줄 아는 신비스런 자연의 너그러움에 흠뻑 젖어 있노라니 푸른 바다가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고창 청보리밭이 보였다. 모두 소녀처럼 함성을 질렀다. 자연과 봄바람을 느낄 수 있는 청보리의 매력에 푹 빠져…….
보리밭 사잇길을 걸으며 윤용하 작곡 박화목 작사 보리밭이란 노래를 합창할 때 30만 평의 광활한 청보리들도 함께 노래를 불러주는 것 같았다. 푸르른 풀잎사이로 향기가 자욱하였다. 청보리와 친구가 되어 사진을 찍으면서 모두 행복해 했다. 보리는 11월초에 파종하며 잔디 모양까지 자라다가 겨울에는 성장이 멈추고 추위를 이겨 낸다. 눈 속에서 묵묵히 봄을 기다리던 보리는 새봄과 더불어 무럭무럭 자라 아름다운 청보리가 되었다.
문우 김행모 선생님의 모습이 머리에서 맴돌았다. 너무 배가 고파 보리가 익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어린 보리를 베다 허기진 배를 달랬던 시절이 보릿고개라 하셨다. 이젠 그 보리가 햇보리, 보리차, 미숫가루 등 웰빙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들, 훈훈한 청보리 바람을 뒤로 한 채 전남 영광으로 향했다.
꽃향기를 흠뻑 마시며 이마의 땀방울을 훔쳤다. 계단이 꽃으로 장식된 숲쟁이 꽃동산에 올라서니 큰 불상이 바위산처럼 서 있었다. 알고 보니 전남 영광군 법성면 진내리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였다.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는 백제 침류왕 원년(서기 384년) 인도 간다라에서 태어난 석마라난타 존자 승려가 불경 등을 가지고 중국 동진에서 건너와 백제 땅에 첫 발을 디딘 곳이다. 이곳에서 찬란한 불교문화의 초석을 놓았으며, 부처님의 진리를 전파하여 백제불교의 시조라고 불렸단다.
1600여 년 전 마라난타의 숭고한 행적을 기리기 위해 백제불교 초전기념 성지를 조성하였다. 18m 높이의 마라난타 스님상 건립과 만다리 광장 108계단, 만불전, 탑원, 간다라 유물 전시관이 있었다. 특히 부용루의 1층 석벽에는 간다라 양식의 불전도 있고, 23면에 걸쳐 부처님의 전생 인연과 일대기가 생동감 있게 조각된 부조모습을 보니 감탄사가 나왔다. 나는 천주교 신자여서 그런지 석가모니 출생에서 고향까지를 처음 보았다. 인도 간다라 양식의 문화를 되새기면서 소중한 햇빛, 공기, 바람 그리고 절경을 뒤로한 채 귀로의 버스에 올랐다. 전주에서는 볼 수 없던 갈매기들이 소리를 지르며 환송해 주었다.
여행은 기쁨을 샘솟게 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강호동의 1박 2일을 촬영했다는 담양, 40년 된 메타세콰이어 푸른 터널을 거닐며 우리는 탤런트나 된 듯 활짝 웃으며 포즈를 취했다. 초록빛 봄옷으로 갈아입은 산과 들을 보면서 우리는 마냥 자연에 취해 즐거웠다. 몸과 마음을 깨끗이 씻겨준 상쾌한 봄나들이다. 서서히 어둠에 묻히고 아쉬움이 짙어갈 때 들꽃회관에서 이 사장님의 배려로 떡갈비만찬이 이루어졌다. 등불이 켜지니 즐거움은 더 뜨거웠다. 서로 주고받은 술잔에는 정이 넘치고 석양 노을은 짙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2010.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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