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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박인경
ㆍ작성일	2010-06-04 (금)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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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타령

발타령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박인경

하얗고 길쭉했다. 게다가 살이 붙지 않아 조금만 걸어도 바닥이 아팠다. 가벼운 산책을 하고 돌아와도 손으로 주물러 주어야 했다. 저녁식사 준비를 하느라 주방에 서려면 우선 푹신한 슬리퍼부터 찾아 신었다. 이러니 험한 등산은 엄두도 못냈다.

우리 형제는 모두 다섯이다. 가끔 가족들이 모이게 되는데 어느 날 우연히 전부 맨발이었다. 길고도 좁은 평발들. 김동인의 소설 ‘발가락이 닮았다’는 제목처럼 다들 비슷비슷한 모양이었다. 두툼하고 넓적했던 할아버지의 건강한 발을 닮지 않고 약하고 얄팍한 할머니의 발을 닮았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나는 말라깽이였다. 새침하게 혼자 있기를 좋아 했고, 음식도 잘 먹지 않아 몸이 약했다. 병원약이 항상 서랍 속에서 뒹굴었고, 한약도 자주 먹었다. 그저 그만한 집에서 태어났으니 망정이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더라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게다. 유전적 요인도 있는데다 먹는 것을 즐기지 않으니, 몸이 가냘픈 것은 물론이고 발마저도 바짝 말라깽이였다. 예전에는 품질이 나빠서 더 그랬던지 아침에 신고 나갔던 양말이 집에 돌아와 보면 한 바퀴 돌아가 있을 정도였다.

학교생활 중에서 제일 싫었던 것은 체육시간과 운동회날이었다. 어느 운동회든지 달리기 시합이 있게 마련이다. 나는 학교를 다니는 내내 달리기 경주에서 한 번도 등수 안에 들어 본 일이 없다. 꼴찌를 면하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보통 남들이 한 번씩 다 받아 보는 공책 한 권을 상으로 타 본적도 없다. 빈약한 ‘칼발’로는 도저히 잘 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모두들 기다리는 운동회 날을 나만은 싫어했다. 체육시간도 마찬가지여서 구기종목 운동을 하는 날이면 공을 피해 도망을 다니기 바빴다.

성인(成人)이 되어서도 별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여자들은 여름이면 ‘샌들’이라 불리는 여름용 구두를 신게 된다. 가죽끈으로 엮어진 끈달이 구두여서 맨발로 신으면 아주 시원하다. 샌들을 사러 제화점에 가면 일단 내 희귀한 발이 화제가 된다. 이 구두, 저 구두를 신어 보아도 끈의 둘레가 내 발의 둘레보다 더 커서 맞는 구두를 찾기가 힘들다. 그러면 점포 안에 있던 판매원들이 내 주위로 다가와 이런 발은 처음 본다며 웃었다. 고르다 못해 한 칫수가 적은 신발을 골라 사서 신곤 했다.

여름용 구두만이 아니라 다른 계절의 신발도 마찬가지였다. 발에 살이 적은 탓에 새 구두를 신으면 몹시 발이 아프다. 오죽하면 누가 가져다 한참 신어 부드러워지면 도로 가져다 신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러다 보니 내 구두는 오래된 것이 많아 십 년째 신고 있는 것도 있다. 그 만큼의 세월이 지나면 훨씬 편해지기 때문이다.

사람의 발은 생긴 형태에 따라 정상족, 평족, 평편족, 요족으로 나뉜다. 그 중 내발은 평족에 속한다. 평족은 발바닥 전체가 평면에 접하는 부분이 많은 발을 말한다. 다행히 나는 그리 심한 편은 아니지만 발바닥 가운데의 오목한 부분이 주저앉으면 주상골이 내려와 발꿈치가 바깥으로 회전하기도 한다. 선천적이거나 뼈 자체의 정렬 이상, 인대의 과도한 유연성, 근육의 불균형 등이 원인이다. 이러한 발은 관절에 과도하고 비정상적인 운동을 유발하여 조금만 걸어도 쉬 피곤하다. 장기적으로는 관절염이나 뒤꿈치 통증, 지간 신경증 및 발의 기형을 일으킬 수도 있다. 치료법으로는 ‘오소틱’이라는 특수 깔창을 착용하거나 심할 경우에는 수술을 하기도 한다. 나는 운동화를 신을 때만 이 깔창을 사용한다.

이상하게 생긴 발로 인해 나는 제대로 된 산행을 해 본 적이 없다. 남편의 소망은 둘이서 지리산을 종주(縱走)하는 것이다. 발이 시원치 못한데다가 기관지천식 증세까지 있어 나는 감히 생각도 못하고 있다. 그래서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산이 가까운 곳까지는 같이 가서 등산로 입구에서 잠시 이별을 한다. 돗자리와 물병, 간단한 준비물을 그늘진 풀밭에 펴놓고 나는 그를 기다린다. 남편이 두세 시간가량 등반하는 동안 나는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다. 그러다 지루하면 근처를 가볍게 산책을 하기도 한다. 함께 하지 못해 늘 미안하다.

우리 민요 중에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라는 대목이 있다. 살다 보면 서로 잘 못한 일도 있었고 미운 일도 많았다. 어떤 때는 달아나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못난 내 발로는 십리는 고사하고 오리(五里)도 못 가서 발병 날 것이 뻔해 그냥 살고 있는가 보다.

(2010.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