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에서 돌아온 김 병장
월남에서 돌아온 김 병장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장춘배
월남(베트남)전쟁은 1963년부터 1973년까지 북쪽의 월맹과 민족해방전선(베트콩)이 남쪽의 월남정부 사이에 있었던 내전성격의 전쟁이다. 우리 한국군은 미국의 요청에 의해서 1964년부터 1973년까지 8년간 월남정부군을 지원하기 위해 참전했었다.
나는 이 전쟁의 교체요원으로 명령을 받고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오음리 87-8 버뎅이골에서 동굴체험 유격훈련 등 강도 높은 훈련을 받고 월남으로 가기 위해 군용 트럭에 올랐다. 간단한 환송의식을 끝내고 천막을 씌운 트럭은 뿌연 먼지를 날리며 빼치고개를 넘어 춘천역으로 달렸다. 긴 대열을 이룬 차량은 연도에 나온 춘천시민과 학생들이 손에 태극기를 들고 열열이 환영하는 가운데 춘천역에 도착했다.
자유 통일 위해서 조국을 지키시다 조국의 이름으로 님들은 뽑혔으니…….
육군 군악대의 맹호부대가를 시작으로 환송식이 있었고 언제 연락을 했는지 플랫폼에는 가족과 친지, 연인들이 나와 이름을 부르며 서로 부둥켜안고 삽시간에 눈물바다가 되었다. 마치 죽음 직전의 이별인 양 처절하기까지 했다. 열차도 이들의 슬픔을 아는 듯 끼익 끼이익 서러운 듯 정신없이 달렸다.
장남인 나는 전쟁터에 가는 것을 반대하는 부모님과 가족들 때문에 연락을 하지 못하고 환송 나온 여학생한테 미리 써온 편지를 우체통에 넣어 주기를 부탁했다. 가족들이 이 편지를 받아 볼 때쯤에 나는 이미 부산항을 떠나 망망대해 배안에 있으리라. 늦게 이 편지를 보시고 부모님이 많이 놀라시겠지만 절대복종의 군 명령이니 어쩔 수 없지 않는가? 낯선 나라의 전쟁터에 가서 살아올지 잡다한 생각에 잠긴 사이 열차는 어둠이 드리우는 청량리역에 도착했다.
청량리역에도 연락이 된 가족과 연인들이 인산인해를 이뤘고, 마지막 면회가 허락 되었는지 가족과 연인들이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는 듯 얼굴을 비비며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며 나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연인처럼 보이는 여인과 전우가 열차내의 화장실 문이 열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랑곳 하지 않고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채 껴안고 격렬하게 키스를 하고 있었다. 또다시 열차는 어둠속에 모든 것을 묻어 버린 채 도망치듯 청량리역을 떠났다. 다소 진정이 된 전우들이 지친 듯 의자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얼마를 달렸을까? 웅성웅성하는 소리에 깨어 보니 열차는 비릿한 냄새가 풍기는 부산 제3부두에 들어서고 있었다. 열차에서 내린 우리는 승선번호를 부여 받고 순서대로 정박한 배에 올랐다. 이 배는 10,000톤급 수송선으로 1,700명의 병력과 장비, 화물을 싣고 퀴논항으로 간단다. 이 수송선의 이름은 업서호였다. 처음 타 보는 수송선이 어찌나 큰지 그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수송선 안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오전 10시에 또 환송식이 있다고 해서 기다렸다가 시간이 되어 갑판 위로 올라갔다. 만국기 물결 속에서 환송식이 시작되었고 환송 나온 학생들과 시민들은 필승과 무사히 귀국할 것을 빌어 주었다. 마지막 무명가수의 “아-아 -잘 있거라 부산 항구야. 미스 김도 잘 있어요, 미스 리도 안녕히…….” 애절한 노래를 끝으로 환송식은 모두 끝났다.
뚜-우-뚜우우 수송선은 힘찬 뱃고동을 울리며 제3부두를 뒤로하고 바다로 미끄러져 나갔다. 오륙도를 지나 점점 멀어지는 고국의 산하 오륙도가 하나의 점으로 보이다가 수평선 뒤로 사라졌다. 그때 그렇게 강해지자 다짐했지만 나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나도 모르게 닭똥 같은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내렸다. 끝없이 펼쳐지는 수평선만 바라보며 사흘 만에 말로만 듣던 필리핀해협을 지날 때는 산더미 같은 성난 파도가 그 큰 수송선을 집어 삼킬 듯 요동을 쳤다. 큰 파도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갑판을 할퀴고 지나가면 수송선도 속수무책 기우뚱 흔들려서 마치 오리 흉내를 내듯이 여기저기에서 꽥꽥 소리를 지르며 심한 멀미를 했다. 5일간의 긴 항해로 지칠 대로 지친 병사들이 침실과 갑판 위 여기저기에 쓰러져 있을 때 전우 한 사람의 “퀴논항이다!”하는 소리에 생기를 되찾고 모두 갑판 위로 나왔다.
갑판 위에서 바라본 퀴논항은 전쟁터가 아닌 듯 평화로워 보였다. 여기에서도 예외 없이 간단한 환영식이 있은 후 각 부대 특명지를 받아들고 수송선에서 내려 준비된 군용 트럭을 타고 야자수 우거진 아름다운 해변을 지나 퀴논시가지를 달렸다. 오토바이와 자전거의 긴 행렬, 미니버스 람부레타 아오자이를 입은 아가씨 등 색 다른 이국정취에 젖을 틈도 없이, 차는 시가지를 벗어났다. 이런 생각도 잠시 길게 펼쳐진 사탕수수밭 넓은 평원과 선인장 군락 3모작까지 할 수 있다는 넓은 들녘, 전쟁이 아니면 발전 가능성이 많은 살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길가에 버려진 찌그러진 탱크와 군용트럭, 제멋대로 나뒹구는 구멍 난 철모가 전쟁터임을 알려 주는 것 같아 긴장이 되었다. 우리가 지나는 도로변에는 먼저 온 맹호 부대 용사들이 장갑차를 대동하고 우리들의 안전한 이동을 위해서 철통같이 경계를 서고 교량 요소요소에는 월남 민병대가 교량 경계를 서고 있었다.
사단사령부에 도착한 나는 명령 받은 부대로 인솔자를 따라 이동 후 13개월 동안 크고 작은 작전참여와 30도가 넘는 고열 말라리아 그리고 적인 베트콩과 싸우며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기도 했지만 인명은 재천이라 했던가, 무사히 귀국선에 올라 부산항에 도착했다.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 병장 이제서 돌아왔네.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 병장 너무도 기다렸네. 굳게 닫힌 그 입술 무거운 그 철모 웃으며 돌아왔네. 어린 동생 반기며 그 품에 안겼네. 모두 다 안겼네.
그 시절 유행했던 이 노래는 멜로디는 경쾌하지만 파병 8년 동안 33만여 명의 파월 용사들 중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 5천여 명의 넋을 기리는 애절함이 배어 있다.
서로 총칼을 겨누며 적대시했던 게 미국과 베트남 그리고 한국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지금 세 나라는 국교가 이루어지고 있다. 세상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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