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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김양수
ㆍ작성일	2010-06-01 (화)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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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
가마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김양수

흙이 불을 만나 도자기가 된다.

도자기는 불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사람이 아닌 불이 뜻하는 대로 도자기는 만들어진다. 불을 만나기 이전의 기물들은 도공의 마음에 따라 수정되고 버려지고 선택된다. 하지만 기물이 가마에 쌓여 불이 지펴지면 도공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불을 계속 때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가마 속의 기물을 터뜨리고 익히고 색을 내며 완성하는 것은 오로지 불의 몫이다. 그래서 도자기는 불의 우연성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고도 말한다. 도공의 역할보다는 불의 뜻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이렇듯 도자기를 구워낼 때 불의 역할은 거의 절대적인데, 그 도자기를 굽는 구조물을 가마라 한다.

주인을 잘못 만난 가마가 있었다.

작업을 중단했던 주인이 가마를 마당에 방치한 채 돌보지 않았다. 낡고 깨진 슬레이트를 지붕삼아 덮어 놓았으나 비에 젖고 햇볕에 그을린 채 버려져있었다. 군데군데 녹이 슬고 벽에 금이 가 만신창이가 된 놈은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렇게 낡고 버려진 가마가 여러 해 전에 새로운 인연을 만나 이사를 했다. 가마는 도자기를 굽기 위해서 존재한다. 그 소중한 존재의미를 잃은 채 버려졌던 놈이 슬픔을 털어내고 설레는 가슴으로 이사를 했다. 희망찬 기대로 한껏 들떠 있었고, 새 인연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도자기를 구워낼 것이라 다짐했다. 놈의 새로운 삶은 이렇게 시작됐다.

가마는 새 보금자리에 둥지를 틀었다. 조촐한 간이 지붕이 씌워져 비와 햇볕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었다. 억수로 쏟아지는 빗속을 거닐다 나지막한 처마를 만난 나그네처럼 놈에게도 안도의 미소가 보이는 듯했다. 기꺼운 마음으로 어린아이 달래듯 타이르고 어우르며 놈은 초보 도공에게 자신의 오랜 경험을 가르쳤다. 시행착오와 우여곡절도 많았다. 그러면서 수레의 양 바퀴처럼 놈과 도공은 한 몸이 된 채 서로를 의지하며 도자기를 굽기 시작했다. 어제보다 오늘이 더 나았고 내일 더 좋은 도자기를 구울 수 있으리라 꿈꾸며 동고동락했다. 하지만 놈이 행복을 말하기에는 때가 이른 듯했다.

가마는 도공을 따라 이사를 세 번이나 더 했다. 놈의 무거운 몸뚱이는 이사를 할 때마다 더욱 뒤틀리고 갈라져서 벽에 심한 금이 하나씩 더해졌다. 이사는 놈에게 치명적이어서 좋은 도자기를 굽는 것이 점차 힘들어졌다. 그렇다고 도공은 놈과의 인연을 버릴 수도 없었다. 도공은 거의 절규하는 마음으로 놈을 부둥켜 안고 부축하며 도자기를 구워냈다. 이렇게 도공은 늙고 병든 놈에게 전적으로 의지하였다.

마지막 이사를 통해 가마는 이제 제대로 된 안식처를 갖게 되었다. 튼튼한 건물 속 아늑한 방에 들어앉아 비와 햇볕 걱정 없이 도자기 굽는 일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도공의 알뜰한 보살핌을 받아가며 늙은 몸으로 사력을 다해 도자기를 구워냈다. 놈은 몸이 망가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도자기를 구워내며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다. 하지만 노구에 과로가 쌓여 만신창이가 된 놈은 피할 수 없는 문제들을 낳기 시작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깨지거나 이전의 빛깔과 다른 도자기들이 구워져 나오기 시작했다. 심각한 문제였고 원인이 무엇인지 확인해서 대처해야 했다. 벽에 난 많은 금으로 놈의 몸은 상처투성이가 되었고, 군데군데 그 금 사이로 갈라진 큰 틈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면 바깥의 공기가 갈라진 틈을 통해 놈의 몸속으로 새어 들어왔다. 그 바람이 도자기를 구울 때 뜨겁게 달궈진 놈의 몸속으로 스며들어와 기물에 부딪히며 도자기를 깨뜨린 것이다. 놈에게 응급치료가 필요했다. 서둘러서 갈라진 틈을 메우고 수리하여 간신히 놈을 회복시켰다. 그러나 놈은 전과 달리 몹시 힘겨워하였다. 더 이상 예전의 고운 빛깔 도자기를 구워내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안타깝지만 놈을 놓아주어야할 때가 된 것 같았다. 온전치 못한 몸으로 짧지 않은 시간동안 도자기를 구워내려 혼신의 힘을 다했던 놈을 쉬게 해주어야할 때가 된 것 같았다. 끝까지 함께 하리라 했던 약속은 지키지 못할 메아리가 되었다. 쓸모에 따라 맺고 버리는 인연이 비정하게 느껴진다. 오랜 시간 자신의 고혈을 짜며 헌신한 놈을 쓸모가 없어지니 버리려 한다. 새 가마를 들이려 분주히 움직이는 사이로 도공은 놈과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회자정리라 했고 생자필멸이라 했다. 만나는 것은 반드시 이별하고 태어나는 것은 반드시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니 안타까울 것도 없다. 머리를 흔들어 부정하고 소리 내어 울부짖어도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다. 함께 하고 싶지만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서글픔에 흐르는 눈물이 가슴을 적신다. 참 좋은 인연이었다. 힘들었을 때 곁을 지켜주며 묵묵히 도자기를 구워주던 믿음직한 놈이었다. 가마 다루는 법을 가르쳐 주며 도공이 완성해가는 모습을 흐뭇한 미소로 지켜봐 주었던 고마운 놈이다. 자신의 상처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도공을 응원했던 소중한 놈이다. 이제 아쉬움을 내려놓고 그 인연을 정리하려 한다. 도공이 죽어 흙으로 돌아가듯 놈도 완전히 분해되어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리라. 이별이란 늘 아쉽고 서러운 것이다. 하지만 거부할 수도 없는 숙명이다. 떠나는 놈 쓸쓸하지 않도록 걸음마다 향을 사르며 마지막 이별의 만가를 불러주리라. 놈은 흩어진 채 되돌아가지만 남기고 간 소중한 기억은 가슴 속에 고이 묻어두리라.

(201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