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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송병운
ㆍ작성일	2010-06-17 (목)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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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날의 고백
어린 날의 고백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목요야간반 송 병 운

나는 남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차라리 혼자 있는 걸 편하게 생각하였으며, 운동장에서 뛰노는 동적인 활동보다 사색에 빠지는 분위기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많이 변하였지만 여전히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성격이다. 한때 낚시에 빠졌던 것도 이러한 성격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내 성격이 싫다. 활달하게 남들과 어울리면서 호탕하게 생활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가끔 왜 이런 성격이 되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였다. 아마도 태어날 때부터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도 있겠지만 어린 시절의 주변 환경이나 가정생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태어난 곳은 아주 조그만 농촌 마을이었다. 전체가 20호도 되지 않았으며 초등학교에 가려면 40여 분을 걸어가야 할 정도로 작은 동네였다. 하루 내내 볼 수 있었던 것은 계절 따라 변하는 논밭의 모습과 하늘뿐이었다. 다행스럽게 하늘에 뭉게구름이 여러 가지 형상을 만들어 가거나 무지개가 앞산에 환상의 다리를 만들 때는 가슴 설레며 좋아했었다. 하늘 높이 솟구치며 노래하는 종달새의 모습도 내가 볼 수 있는 가장 멋진 모습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이러한 주변 환경과는 달리 집안 분위기는 매우 엄격한 편이었다. 어른들이 요구하는 예의범절은 어린 아이에게도 예외일 수 없었다. 엄격한 할아버지의 가르침은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는 몰라도 절대적이었다. 하얀 두루마기에 갓을 쓰고 근엄한 표정으로 집안일을 챙기시던 모습이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밥상이 들어오면 어른부터 수저를 들어야 했으며, 식사가 끝난 뒤에도 어른이 수저를 놓기 전에는 먼저 수저를 놓고 일어날 수 없었다. 식사를 시작할 때는 먼저 국물부터 떠서 먹은 뒤 밥을 떠야 했다. 음식 씹는 소리가 크면 안 되고, 특히 입에서 음식이 튀어나오면 당연히 호통이 따랐다. 어쩌다 어른들과 한 밥상에 앉게 되는 날이면 어떻게 식사를 했는지 모를 정도로 긴장이 되었다.

항상 조심해야 되는 행동거지가 요구되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그 조그만 마을에서는 우리 집의 생활이 반드시 모범이 되어야 했다. 가난한 농촌 마을에서 대학을 나온 식구, 아니 학생이 있는 집은 우리 집밖에 없었기에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께서도 할아버지의 가르침 때문인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 기억으로 아버지가 우리 자식들을 안아주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우리를 미워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자식을 겉으로 귀여워해주는 모습을 할아버지께서 싫어하셨다고 훗날 들었기 때문이다. 어른들과 함께 있으면 조심스러워 숨이 막혔다.

이런 집안에서 가장 편안한 안식처는 어머니였다. 큰며느리가 아니었음에도 집안 살림을 도맡으면서 모든 식구들을 자상하게 배려하셨다. 시부모님과 여섯 명의 시동생, 우리 5남매, 그리고 머슴까지 있었다. 방학 때는 서울에 사는 사촌 4남매가 내려와서 지내니 정말 북새통이었다. 요즘 같으면 상상할 수도 없는 대가족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항상 따뜻함과 정성을 다하셨다. 한 번도 큰소리를 내며 화를 내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자식들에 대해서도 자상함과 사랑으로 감싸주시니 엄격한 가정에서 유일한 안식처가 되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식탁은 부엌의 부뚜막이었다. 김치 하나 놓고 물을 말아 대충 드셨던 것 같다. 나도 할 수만 있으면 그런 어머니 곁에서 함께 먹고 싶었지만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내자식이 부엌에 드나들면 뭣이 떨어진다며 꾸중을 하였다.

그러나 어머니에게는 커다란 아픔이 있었다. 친정의 몰락이었다. 상당한 재력과 학벌을 갖춘 집안이었지만 6 ․ 25 전쟁으로 몰락하였다고 들었다. 외삼촌들이 다녀갈 때면 할아버지나 아버지 몰래 어머니만 만나고 가셨고 한 쪽에서 눈물을 흘리던 모습을 가끔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어린 날의 생활이 나의 성격에 영향을 준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런 성격을 자식들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엄격함보다는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려 노력하였다. 다행스럽게 두 아이 모두 활달한 편이다. 가끔 둘째딸이 지나치게 활발하여 마음 아픈 경우도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여 줄 것으로 믿으면서도 섭섭하여 마음 아팠던 것도 나의 가냘픈 성격 탓이리라.

오늘따라 고향이 그립고 멀리 떠나신 부모님이 보고 싶다. 아빠의 마음을 몰라주는 딸 때문일까. 새하얀 찔레꽃 향기가 가슴속에 진하게 파고드는 계절 탓일까.

(2010. 6.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