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채널을 여기저기 돌려보다가 EBS에 맞췄다. 우주에서 본 지구가 빙그르르 자전하는 그림이 나오고 있었다. 화면 가득 채워진 큰 그림의 지구가 천천히 돌아가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하늘과 바다의 푸른 빛깔, 그 위로 조화롭게 수놓은 듯한 흰구름, 그리고 초록빛 산맥과 갈색사막 등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지구 그림은 마치 커다란 보석 같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이 저토록 아름다운 곳이구나 생각하면서 내 얄팍한 우주과학 상식을 동원하여 지구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았다. 곰곰 생각해 보면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이 땅에서 살고 있다는 것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크기를 헤아릴 수 없도록 광대한 우주와 그 안에 있는 수많은 별들.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은 별들 중에서도 갖가지 아름다운 생명체가 넘실거리는 것은 오직 지구 하나뿐이지 않은가?
지구의 나이 46억 년이라는데 그동안 얼마나 많은 생명체들이 나타났다 사라졌을까? 수십억 년 그 긴 세월동안 수많은 변화에 변화를 거듭했을 지구에 그때마다 생물계를 대표할만한 어떤 고등생물들이 살다가 사라졌을까. 한 때는 거대한 공룡들이 지구를 주름잡고 살다가 사라져 버린 것처럼, 어쩌면 인류도 한동안 나타났다 멸종된 다른 생물들처럼 똑 같은 전철을 밟게 되는 것은 아닐까. 지구 입장에서 보면 제일 늦둥이로 등장한 하나의 고등생물인 인류가 너무 욕심을 부리며 살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인간들의 편리한 생활을 위하여 나무는 사정없이 베어지고, 공기는 갈수록 혼탁해진다. 지구 안에서 숨쉬는 생명체들은 그 종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모든 생명체를 품고 기르는 지구의 입장은 얼마나 괴롭고 인간들이 괘씸할까?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쓴 소설 ‘파피용’을 얼마 전에 읽었다. 지구인들의 부패와 폭력과 이기주의에 염증을 느낀, 몽상적인 우주과학자와 막대한 자본가 등 몇몇 사람들은, 더 이상 가망이 없는 지구에서의 마지막 희망은 지구를 탈출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이들은 다른 행성으로 떠날 프로젝트를 추진하여, 길이가 32km나 되는 거대한 나비 모양의 우주범선 파피용호를 만든다, 이들은 결국 각계에서 선발한 14만 4천명의 사람들을 태우고 천년 이상을 날아야 도착할 수 있는 이름 모를 행성을 찾아 떠난다. 14만 4천명이 1200년이 넘게 우주를 날아가는 동안, 지구를 출발했던 처음사람들은 물론이고 우주선 안에서 태어난 사람들까지 거의 다 죽고, 새로운 행성 제2의 지구에 도착한 사람은 한 쌍의 남녀뿐이다. 이 소설은 구약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천지창조 이야기와, 최초의 인류로 소개되는 아담과 이브 이야기를 참고해서 쓴 것이라 짐작되는 공상과학 소설이었다. 하지만 해박한 과학지식과 깊은 사고력을 가진 천재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이런 이야기를 쓰게 된 것은 그만큼 지구에 대한 위기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할 수 있었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터지는 대형 천재지변이 심상치 않다. 지구촌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지진, 해일, 화산폭발 등은 뿔난 지구가 질러대는 비명처럼 느껴진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북극 빙하가 녹아내려 해수면이 높아지고, 때문에 북극지방 생태계의 질서가 무너져가고 있어 ‘북극의 눈물’ 이라는 다큐멘터리가 방송됐었다. 그뒤 얼마 안 되어 아마존강 유역의 생태계가 울고 있다는 ‘아마존의 눈물’을 TV로 또 보았다. 아마존의 밀림이 사정없이 베어져 나가기 때문이라 했다. 좀 더 편리하게, 좀 더 풍족하게 살고자하는 몇몇 문명국들의 이기심 때문에 생겨나는 현상일 것이다.
우리나라도 4대강 사업 논란이 언론매체의 단골뉴스가 되었다. 바다를 막아 국토를 늘리는 일이나, 강을 개발해서 어떻게든 국가 수입을 늘려보자는 취지야 나쁠 게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연환경을 훼손하는 개발은 좀 더 신중하게 해야 옳지 않을까. 왜냐하면 한 번 망가진 자연환경은 원래 모습대로 되돌리기 어려울뿐더러, 갖가지 생명체를 품고 있는 지구가 언제까지나 인간들의 이기적인 횡포를 눈감아주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화가 난 지구가 인간들에게 복수하기로 한다면 인류는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TV화면에서 본 지구사진엔 몇 가지 안 되는 색상의 그림으로 나타났었다. 하지만 그 단순해 보이는 그림 속에는 육지와 바다를 수놓고 있는 수많은 동식물의 생명의 숨소리가 들어 있고, 피땀 흘려 쌓아올린 수 천 년 인류역사가 스며있다. 혹여라도 만물의 영장이라 자처하는 영리한 인류가 너무 욕심 부리다가 그 소중한 것들의 멸망을 재촉하게 되지는 않을까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젠가는 지구도 수명을 다하는 날이 오겠지만, 그래도 지구에 세들어 사는 인류가 부주의해서 ‘우주에 하나밖에 없는 생명의 별’ 지구의 수명을 단축시킬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어느 여름날 아침, 일찍 일어난 새들이 재잘거리며 늦잠을 자는 나를 깨워주었다. 거실로 환하게 비쳐드는 눈부신 아침햇살이랑, 창 밖에서 살랑거리는 진초록빛 느티나무 이파리가 더 없이 평화로웠다. 창조주께서 만드신 수많은 별 중에서 가장 보석 같은 지구에서 이토록 빛나는 아침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 생각할수록 감사한 일이었다. 셋돈도 안내고 살면서 주인행세를 하는 인류가 이제부터라도 최대의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더 이상 지구를 괴롭히지 않고 다른 피조물들과 조화롭게 어울려 사는 방법을 찾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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