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교과서에는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이란 동화가 있다. 이 동화의 줄거리를 소개하면 이렇다.
“수탉은 태어날 때부터 튼튼하여 달리기, 높이뛰기, 싸움에서도 진 적이 없어요. 그래서 그 동네에서 제일 힘센 수탉, 아니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이 되었어요. 어느 날 이 수탉보다 더 힘센 수탉이 나타나 싸움에 진 이 수탉은 세상에서 제일 술을 잘 마신 수탉이 되었어요. 이 수탉은 술을 마시면 자기가 과거에 얼마나 힘이 셌고 싸움을 잘했는지 자랑만 하는 동안 세월이 흘렀어요. 수탉의 아내는 조용히 수탉에게 다가와 '여보 힘내세요. 저기 좀 보세요. 당신의 아들딸, 손자손녀들이 힘도 세고 알도 잘 낳고 친구들과 아주 씩씩하게 잘 크고 있잖아요?'하면서 가족들이 사는 모습을 보여 주었어요. 회갑을 맞은 수탉은 다시 한 번 꼬리 깃털을 활짝 폈어요. 그리고 다시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이 되었다."는 이호백 작가의 동화다.
아들이 초등학교 때 즐겨 보아 알게 된 이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맛이 나는 매력이 있다. 우리 농촌에서 볼 수 있는 친근한 닭을 아이들에게 우화적인 글과 그림으로 재미와 감동을 준다. 동화 속 수탉은 양 날개로 허리를 잡고 두발로 위풍당당하게 서서 꼬리 깃털을 활짝 세우는 모습이 늠름하고 아주 당당해 보였다. 살아있는 수탉들은 정말 이런 모습을 하고 있을까 호기심이 생겼다. 동화속의 수탉은 나폴레옹 황제가 대승을 거두고 활기찬 모습으로 행진곡에 맞춰 대열하는 모습이 떠오를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 뒤로 동물농장에 들러 닭을 구경하느라 정신을 빠뜨린 적이 있었다. 동화속의 수탉은 마음이 움츠러들 때마다 “어이~ 친구, 어깨 펴!” 하며 따뜻하고 당당한 그런 존재가 되었다.
천년 백제의 부활은 다시 비상하는 백제문화축제에서 생긴 일이다. 백제의 신비와 백제인의 미소가 펼쳐지는 국립부여박물관에서 백제금동대향로를 보게 되었다. 백제금동대향로는 1993년 백제 나성과 부여 능산리 고분군 사이 절터에서 발굴된 백제문화의 걸작이며 국보 제287로 지정되었다. 백제의 위덕왕이 부왕인 성왕을 기리기 위해 백제왕실에서 사용되었기 때문에 불교의식과 도교사상이 어우러진 신성한 제사의식과 국가의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사용된 것이다. 백제인의 소망을 담는 향로의 정교함과 웅장함의 예술혼을 보니 마음이 숙연해졌다.
향로의 크기는 높이 64cm, 무게11.8kg이나 되는 대작으로 탐스러운 꽃봉오리를 용이 입에 물어 올리는데 그 꼭대기에서 봉황이 날갯짓을 하며 우뚝 서 있었다. 즉, 용이 입에 문 연꽃위에 솟아난 봉래산 꼭대기에서 봉황 한 마리가 날개를 활짝 편 모습이다. 맨 아래 받침대는 물속의 왕인, 용이 떠받치고 활짝 핀 연꽃을 연상시키는 몸체는 3단의 연꽃잎으로 장식되었다. 뚜껑에는 신선 세계를 나타내는 불사조 ‧ 물고기 ‧ 사슴‧ 학 등 동물들과 4~5겹으로 둘러싸여 첩첩산중을 이루는 심산유곡의 풍경이 새겨졌다. 꼭대기에는 봉황이 목과 부리로 여의주를 품은 채 날개를 펴고 힘차게 서서 커다란 꼬리를 부드럽게 위로 치켜들고 있어 천하가 태평할 때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 유물의 화려함이나 세련된 기법만 본다면 향로의 진정한 가치를 이해하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백제인의 국가관과 문화정신에 깃든 참 의미를 보는 안목이 필요하지만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전시실 가운데 우뚝 서 있는 백제금동대향로 앞에서 한동안 멈춰 섰다. 멀리 있는 어딘가에 꼭 두고 온 자신의 일부분을 찾는 느낌이 들었다. 백제금동대향로는 한 곳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사방으로 빙빙 돌면서 관찰하는 것이 좋다고 박물관 해설사는 말했다. 그의 웃는 모습은 백제인의 소박하고 온화한 모습이었다. 향로 감상은 우아함과 위대함이 어우러져 신선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뒤로 물러나서 볼수록 향로의 봉황은 동화속의 수탉과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탉은 천 년 세월을 넘어 꼬리 깃털을 활짝 펴고 부리부리한 눈을 뜨고 있는 봉황과 만나는 순간이었다. 숨을 자꾸 내쉬었다. 작은 떨림의 긴장감이 돌았다.
“수탉과 봉황, 봉황과 수탉, 닮음의 미학인가? 아니면 실체란 말인가.”
가슴이 두근거렸다. 향로봉황의 크기는 손안에 들어 올 만큼 작다. 작지만 위엄과 의젓한 기품을 지녔다. 백제 사람들의 나라를 보호하려는 굳은 의지가 보였다. 봉황은 힘 있고 범접할 수 없는 당당함이 있었다. 수탉과 봉황의 운명적 만남이다.
수탉과 봉황이 내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는 당당함이다. 두 발로 서서 날개를 활짝 펴고 꼬리 깃털을 위로 치켜 올려 하늘로 비상하는 그 당당함 말이다. 수탉이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당신은 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던 사랑하는 수탉의 아내는 어질고 부드러운 백제인의 소중한 가족애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수탉은 당당하게 다시 깃털을 세우는 새로운 시작을 했다. 향로의 몸체는 그 속을 비우고 구멍을 뚫었다. 향 연기가 자연스럽게 피어오를 수 있어야만 신성한 제사의식을 치르고 모든 삼라만상은 백제 사람들에게 복을 내리는 국가의 새로운 약속이요, 시작이라고 믿었던 백제인의 당당함이 봉황이다.
가끔 사는 일이 어려울 때가 있다. 잘난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다. 윗사람의 눈에는 아랫사람이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착하게 살자고 다짐하면 무차별적으로 당하거나 소외되며 바보가 되는 일도 있다. 그러나 착한 사람들이 가정에서 사랑을 나누는 따뜻한 세상이 더 많다. 가정이나 국가가 사물을 분별할 수 있고 시비를 가릴 수 있으면 사람으로 하여금 머뭇거리지 않고 일을 결정한다. 플라톤의 <국가론>은,
“국가는 어느 한 사람을 위해 세운 것이 아니다. 모두가 잘살고 행복하게 하자는 것이지, 우리는 특정 계층만이 아니라 전 국민이 행복하도록 국가를 이끌어야 한다.”
라고 정의한다. 좋은 사람이 될 것과 좋은 일을 할 것을 장려하고, 악한 사람과 악한 일을 한 사람을 징벌해야 한다. 가정이나 국가가 행복할 수 있는 국민정신이 바로 당당함이다.
가슴 뛰는 삶에 용기와 위안이 필요하거든 부여에 다녀오라 권하고 싶다. 천년의 세월이 다시 부활하는 그곳에 가고 싶다면 그대들과 동행하여 비상하고 싶다.
(201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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