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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전성권
ㆍ작성일	2010-11-08 (월)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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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
만추晩秋

전북대학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전성권

일상에 지친 심신을 달래보고자 아침부터 목적지 없이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갈망渴望이 컸기 때문일까. 채 어둠이 가시기 전에 눈을 떴다. 일단 대충 세수만 하고 카메라와 노트 한 권만 챙겨들고 집을 나섰다. 도시탈출이고 일상탈출이다.

벚꽃나무 가로수 길에 접어들자 완전 겨울풍경을 자아낸다. 들녘은 아직 녹색풍경을 간직하고 있는데 벚꽃나무는 단풍은커녕 잎사귀 하나도 달고 있지 않았다. 초봄부터 나를 들뜨게 하더니만 또 내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유달리 성질이 급한 녀석 같다. 가을이다 싶었는데 어느새 만추인가 보다. 들녘이며 작은 시골마을 담장사이로 보이는 감나무는 잎은 다 어디론가 보내고 붉어진 감들만 대롱대롱 매달고 있다. 노랗던 들녘이 한 순간에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마치 내가 농사꾼인 양 마음이 풍요로워지고 여유롭다 느꼈는데, 1,2주 사이에 군데군데 원형으로 곤포된 볏짚 더미만 어느 축사로 시집갈 날만 기다리며 휑한 논바닥을 지키고 있다.

빠르게 도심을 벗어나 시골마을에 접어드니 다랑이 논이 보였다. 요즘은 시골논들도 대개 경지정리가 되어 있는데 산 허리춤에 있어서인지 경사도가 심하고 몇 다랑이가 되지 않아서인지 내가 어렸을 때 보던 그런 논이다. 순간 나는 산비탈을 내려가 논두렁 중간쯤에 서 있다. 제일 밑의 다랑이 논 논두렁 끝전에 자그마한 노적가리 몇 개가 보였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온 기분으로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드디어 만나고 싶었던 녀석을 만나는구나 하는 기쁨에 달려가 보니 탈곡을 하고난 곡초穀草더미였다. 노적가리에서 벼 이삭 몇 개 뽑아서 쌀을 빼어 씹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벼를 베어낸 것을 보니 낫으로 벤 것 같은데 어떻게 탈곡을 했는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콤바인(탈곡기)이 들어올 수도 없고, 그 만한 양도 되지 않으니 아마도 홀태 아니면 발로 구르는 탈곡기로 하였을 것 같다. 논바닥엔 벼이삭이 여기저기서 뒹굴고 있다. 한 움큼을 주워 볏짚으로 묶어 가방에 담았다. 예전 같으면 벼를 베고 나면 나이 불문하고 걸어 다닐 수만 있어도 한 톨의 나락이라도 더 건지기 위해 두어 번 접은 비료포대 주둥이를 움켜잡고 정신없이 벼이삭을 주웠을 텐데, 1년 내내 고생하여 결실을 맺은 나락들이 저리 나뒹구는 이유에 대한 해답이 명확히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땅덩어리가 얼마 되지도 않고 식량자급률이 채 30%도 되지 않는 우리나라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비록 채산성이 많지 않은 다랑이 논이지만 방치하지 않고 농사를 지은 경작자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멀리 촌가(村家)가 내려다 보였다. 누가 살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에 가 보고 싶었다. 거의 사람의 왕래가 없었던지 길을 쉽게 분간하기 어려웠으나 거의 일직선으로 길을 개척하다시피 우여곡절 끝에 도착하였다. 약간 기대하였지만 역시나 빈 집이 된지 오래였던 거 같았다. 양지 바른 좁다란 앞마당은 잡초가 우거져 있었고, 마루엔 커다란 괘종시계와 몇 그루의 감나무에 매달린 자그마한 넓적감만이 나를 맞을 뿐이었다. 누가 볼 이도 없는 터라 마당 한쪽에서 비닐봉투를 주워 들고 감나무에 올라가 손에 잡히는 감을 땄다.

이곳까지 내려올 때는 많은 생각을 하며 쉽게 내려 왔는데 올라가려니 까마득했다. 농촌현실에 짓눌려서일까. 올라오는 길에 몇 번이고 그 집을 내려다 보았다. 그 집의 외로움을 알기 전에는 오색단풍 속에 묻힌 아름다운 집이라 생각했는데 올라오면서 보는 그 집은 너무도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

(201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