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로 보낼 수필집을 20권 씩 묶은 책꾸러미 6개를 차에 싣고 우체통으로 갔다. 언뜻 쓰레기통으로 가는 기분이 들었다. 나에게서 떠난 것이니 미래의 쓰레기가 될 것이 분명한 사실이기에.
지금은 책의 홍수시대다.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읽을 거리들이 넘쳐난다. 사상과 철학도 많아서 길도 잃는 시대며 물자가 너무 풍부해서 공해가 되는 것은 책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도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은 많고, 자기 책을 한 권쯤 가져보는 것을 꿈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단순히 타이틀이 필요해서나, 내세울 수 있는 명함 때문에, 혹은 자신의 선전수단으로 등단을 한다면 길게 가지 못한다고 했다.
은퇴하고도 할 일을 못 찾아 절망감을 이기지 못하여 자살충동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는데, 뚜렷한 의식과 생각을 갖고 글을 쓰면서 자기 이름으로 된 책을 출판하는 일은 의미 있는 일 중의 하나다. 그렇다고 작가정신마저 프로작가들만 못하란 법은 없다. 나름대로 내 의식을 가지고 문학을 하지만 언제나 모자라고 아쉬운 점이 많다. 그 많은 책의 공해에 나까지 합세하여 공해의 일부분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등단 초기에 다짐하였지만, 언제나 두려움을 면치 못하고 있다.
나의 책을 받은 도서관장으로부터 감사장을 받고 보람을 느꼈다. 얼굴도 모르는 독자들이 책을 잘 받았다는 소식을 보내줄 때, 꼼꼼히 읽고 평을 해주는 독자들, 자필 편지까지 마음을 모아 보내준 선배 문인들. 늘 좋은 수필을 읽게 해주어 고맙다면서 같이 공부할 수 있는 후배와 동료들의 격려 덕분에 다시 용기를 얻을 수 있다.
책이 되어 나오기까지의 과정도 무척 힘든 일이지만, 책을 배포하는 일은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이다. 발송비도 무시 못한다. 백 권이 넘으면 우편요금을 반절 절약할 수 있다기에 이번에는 출판사에서 바로 발송작업을 했다. 주소 라벨을 만들어 붙인 봉투에 책을 하나 하나 넣고 테프로 봉한 뒤, 우편번호를 같은 것끼리 선별하여 20여 권씩 묶는 작업은 중노동이었다. 자기가 생산한 농산물을 포장하여 시장에 내는 농부의 기분과 같을 것이다. 그런데 정성을 다하여 넣고 포장하고 분류하는 것이 꼭 쓰레기를 분류하는 일과 같다. 쓰레기를 버리는 일도 정성이 필요하다. 봉투를 돈으로 사야하고 재활용품과 큰 것은 버리는 비용이 더 많다. 상대방이 보내달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일방적으로 쓰레기를 보내는 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는 물어보고 꼭 원하는 사람에게만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책도 누군가의 장롱의 굄돌로 쓰여질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음식을 먹으면서 늘 생각하는 일이다. 흙과 물, 햇살과 바람의 힘으로 태어나는 삼라만상들이다. 사람, 동물, 곡식과 식물들은 모두 태어나는 이유가 있고 때가 있으리라. 그들은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서 자란 뒤 채집되고 배달되는 과정에서 운명을 바꾸기를 몇 번이나 거듭해야 한다. 여행을 하는 동안 머무르고 떠나는 과정에서 순일하고 맑은 손길과 만남이 이루어지면 얼마나 다행이랴. 불행하게도 자신의 이익만을 호시탐탐 노리는 사람의 손길 때문에 순수했던 생명체에 많은 상처를 만들고 병들게도 하고 전쟁까지도 일어나는 것이 세상살이다.
내게로 온 음식은 생명의 신비한 작용에 의하여 영양이 되어 나의 피와 살이 된다. 그리고 찌꺼기는 배설되어 그야말로 쓰레기가 되어 나간다. 그 쓰레기조차 정말 어딘가로 버려지는 것인가. 그것도 사대(四大)인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돌아가서 언젠가는 무엇의 일부분이 되어 환생할 수도 있다. 나라는 개체 덩어리도 그렇게 돌아갈 것이다. 먹이사슬의 어느 위치에 있든 생명은 그 자체의 운명대로 쓰여지고 돌아간다. 만물이 다 그렇다.
얼마 전에 EBS에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았다. 그 제목이 '쓰레기의 꿈'이었다. 쓰레기를 수입한 지방의 쓰레기더미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 쓰레기들이 그들 가족의 꿈이었다. 쓰레기들을 분류하여 다시 팔고, 분류한 쓰레기들을 재활용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수입으로 그들 가족들이 먹고살고 있다. 아직 어린 나이에 쓰레기더미에서 장래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 선진국에서 누군가의 아름다운 상상의 세계를 주었던 전자제품들이 '쓰레기 기부'라는 형태로 개발도상국까지 여행을 가서 그 지방의 빈곤자들의 꿈과 병을 동시에 주고 있다. 아프리카 가나에서는 전자폐기물기부에 반대하는 NGO 활동이 있다. 그 폐기물 속에는 우리의 삼성전자제품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가나의 아보블로시의 아이작이란 아이는 병들어가면서도 당장의 끼니를 위하여 전자제품 태우는 일을 그만 둘 수가 없었다. 아마도 그 속에는 쓰레기가 된 모든 물자들의 개체의 꿈도 섞여 있었으리라.
여름날 쓰레기장에 못 가는 날은 음식 쓰레기도 잘 담아서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버린다. 냉장고나 우체통이나 다를 것이 없다. 미국은 땅이 넓기 때문에 드넓은 대지에 대형 쓰레기 매립장을 만들고 그곳에 골프장을 만든다. 우리나라도 쓰레기 매립지에 공원을 만든 예는 있다. 그러나 그 많은 쓰레기들이 땅속으로 깊이 들어가서 다른 원소로 될 때까지 땅이 잘 견뎌주기만 하면 좋으련만……. 모든 경제생산은 공해를 수반한다. 자연이 스스로 정화할 수 있는 정도를 넘지 않게 하려면 우리 의식은 더욱 투철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람은 몸과 영혼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영육 간에 영양을 고루 먹어야 한다. 영혼이나 정신의 영양이 반드시 책이 주는 것은 아니다. 단지 많은 부분이 매개체 역할을 하기 때문에 동서고금을 통하여 책은 모든 예술과 학문의 기본 이 되고 결과물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문학의 힘은 어떤 형태로든 사람이 있는 곳에서 영원히 사람의 운명과 같이 할 것이다. 그러니 나의 책도 누군가에게 쓰여진 뒤 재활용되어 쓰레기다운 꿈을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쓰레기 더미에서 장미를 피워내고, 진흙에서 연꽃을 피우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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