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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김병규
ㆍ작성일	2010-11-30 (화)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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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부부 이야기
늙은 부부 이야기
행촌수필문학회 김병규

연극 관람권 두 매를 받았다. 연극의 제목이 마음에 끌려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덥석 받았다. 수필창작 금요반에서 나이가 가장 젊은 노점례 선생의 선물이었다. 내가 아내와 함께 관람했으면 좋겠다고 생각되어 구입했다는 노 선생의 말에 고마움이 절로 느껴졌다. 그 말 속에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시달리는 나를 위로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나의 처지를 위로하는 뜻으로 한 매에 3만 원씩이나 하는 관람권을 두 매나 구입해 준 노 선생에게서 동기간 같이 따뜻한 정을 느꼈다.

정이 담긴 관람권을 받았으나 어떻게 할까 고민에 쌓였다. 교통사고를 당한 뒤 아내는 나에게 밤 외출을 못하도록 철저히 감시를 한다. 넘어지면 시술한 허리뼈에 치명상이 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의사의 지시가, 나를 주택연금선고를 받은 죄수처럼 묶어 놓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밤 외출은 삼가고 있는 터였다. 그래서 밤 6시부터 정해진 관람권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게 되었다. 나는 생각다 못해 아내를 설득하기로 했다. 나로 인해 온 집안에 먹장구름이 낀 현상을 보면 세대주의 권위가 박탈된 것이나 다름 없지만, 아내는 나를 무시하지 않고 더 우대하는 편이다. 아내도 내 뜻에 따라 택시를 타기로 했다. 소리문화의 전당 연지홀에는 700여 석인데 빈자리가 없었다. 문화의 도시 전주가 실감되었다. 연극의 제목을 보면 우리 내외 또래의 관람객이 많을 성싶었는데, 새파랗게 젊은 쌍쌍들이 대부분이었다. ‘늙은 부부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젊은이들을 보니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우리가 젊었던 시절에는 당면한 문제를 감당하느라 미래를 준비할 겨를도 없었는데, 미래를 내다보며 여유롭게 사는 지금의 젊은이들을 바라보니 든든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밤 6시 정각 막이 올랐다. 연출자는 65살인 박동만 역에 정종준과 67살 이점순 역에 사미자였다. 이 시대 최고의 배우들인 사미자와 정종준이 어떻게 ‘늙은 부부의 이야기’를 풀어갈까 호기심을 안고 지켜보고 있었다. 박동만은 부인과 사별한지 20년이 지난 홀아비였고, 이점순은 남편과 사별한지 30년이 지난 과부였다. 어느 날 문득 자식들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박동만이 마음에 두고 있던 이점순을 집으로 찾아갔다. 국밥집을 하던 이점순은 남편이 없다고 무시당할까봐 일부러 욕쟁이 할머니가 되었지만, 박동만을 만난 뒤 부드러운 여인의 모습을 되찾는다.

"어, 이 여사!"
큰 소리로 대문을 두드리며 찾아온 박동만 영감과 이점순 할머니는 티격태격 언쟁을 일삼았다. 그러면서도 끈질기게 찾아온 박동만은 이점순의 집에 방을 세로 얻어 한 집에 살면서 자연스럽게 친하게 되었다. 비가 내리고 정전이 된 날 촛불을 켜고 술을 마시던 그들이 하룻밤을 함께 하더니 드디어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다.
“나 동두천 신사 박동만은 허연 머리가 검정 머리가 될 때까지 평생을 업어주고 안아주고 아껴줄 것을 선서합니다."
이렇게 두 노인은 부부의 연을 맺어 청춘보다 아름다운 이야기를 나누며 살고 있었다. 인생의 황혼 무렵 그들에게 찾아온 사랑은 첫사랑보다 더 풋풋하고 살갑게 보였다. 외로움의 꼭대기에서 새로운 노년의 인생을 발견한 두 노인, 의지할 것이 없던 두 노인은 자연스럽게 마음을 열고 서로를 받아들였다. 그들이 노년에 이룬 아기자기한 사랑이야기가 아름답게 보였다.
“나없이 혼자 남았을 때 가슴 아파하지 말아요. 성내지도 화내지도 말아요.”

인생을 마감하며 남긴 이점순 할머니의 감동어린 말에 잔잔한 황혼의 사랑이 젖어있었다.

‘늙은 부부의 이야기’에는 비록 인생의 황혼 길에 접어들었을지라도 당면한 고난에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서로 아끼고 존중하고 사랑하며 살라는 뜻이 담겨있었다. 노점례 선생이 준 사랑의 메시지도 담겨 있었다. '늙은 부부의 이야기', 그 연극은 우리 부부도 그 의미를 오래토록 간직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2010. 11.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