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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이애란
ㆍ작성일	2010-11-15 (월)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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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천사들
내가 만난 천사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이 애 란

요즘 나는 매일 천사를 만난다. 오늘도 천사들을 만났다.
아버지가 아프셔서 요양병원에 계신다. 식구들이 돌보기엔 무리이니 개인 간병인을 들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주변 사람들이 권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시간을 내가 돌봐드리고 싶어서 매일 병원에서 지낸다. 아버지를 처음 요양병원으로 모신 날, 내 가슴 한 구석이 무너져 내렸다. 당신이 원해서였지만 너무 일찍 요양병원으로 모신 게 아닐까하는 자책감이 들었다.
처음에 본 병원모습은 절망 그 자체였다. 머리가 새하얀 꼬부장한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들의 모습에서 이제는 허락된 시간을 다 써버려서 남은 게 없는 쇠락함만 보였다. 아무 생각도 없는 듯 초점 없는 눈빛들만 가득하여 희망이 없는 곳 같았다. 인간으로서 이미 유효기간이 다 끝났는데 생명줄을 놓지 못해 붙들고 있는 가엾음만이 보였다. 다들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들이 있고, 사랑스러웠던 청춘이 있었을 텐데 그 모습들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저 노쇠한 생명들이 구물거리고 있는 것 같은 절망감뿐이었다.
그런데 며칠 째 병원에 머물다보니 날마다 아름다운 모습들이 눈에 띄었다. 오늘은 할머니를 휠체어로 모시고 가는 물리치료사를 만났다.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게 된 물리치료사는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생긋 웃으며 한마디 했다. 집에 두 살짜리 아기를 키우고 있는데 이 할머니는 영락없이 자기 딸과 정신나이가 똑같단다. 마치 자기 딸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 애정 어린 눈길을 할머니에게 보내며 말을 건넸다.
“아기 할머니, 빨리 나으시게 운동하러 가요. 다 나아서 놀러 가야죠. 꽃구경도하고 산책도하시게요.”
아기 할머니라 부르며 다정한 말을 할머니께 건네는 그 눈빛에서 나는 천사를 보았다. 직업의식을 가지고 하는 일상적 행동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따뜻한 눈길이었다.
“응. 빨리 가자.”
물리 치료사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눈 속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두 살짜리 아기가 엄마를 바라보는 듯 천진난만한 눈빛이었다. 아기가 엄마에게 의지하듯 물리치료사에게 자신을 내맡기고 있었다. 아기천사의 눈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처음 보았던 절망은 겉모습이었다. 이 요양원은 사랑이 가득한 곳이었다. 내가 보기엔 다들 똑같이 연로하고 몸이 불편해 보였다. 그런데도 그 중 조금 나은 분들은 더 힘든 분들을 옆에서 돕는다. 침대에서 잘 일어나지 못하는 분을 위해서 걷는데 불편함이 없는 분들은 식사를 가져다 드리고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돌본다. 남은 시간에는 젊은 시절 이야기나 손자손녀이야기를 서로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학교에서 요구하는 자원봉사 점수를 위해 병원에 온 학생들을 만났다. 재잘거리며 청소도 하고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는 밝은 모습에서 또 한 번 천사들의 모습을 보았다. 예전엔 대학 가는데 필요한 점수를 위해서 억지로 하는 봉사가 무슨 의미가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그런데 어렸을 때 해본 봉사경험은 함께 나누는 마음을 아는 성인으로 자라게 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 싶다.
노인전문요양병원이란 이름부터 절망스러웠던 처음의 마음과 달리 세상의 다른 사회와 똑같은 모습을 보았다. 서로 배려하고 의지하며 살아야 하는 건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인 듯했다. 병원에서 나는 많은 사랑을 배운다. 다른 사람을 돌보는 것을 보람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이웃을 위해 나누며 살아야하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랑은 전파능력이 있나보다. 사랑을 베풀며 사는 사람들을 보며 내 가슴도 사랑으로 따뜻해진다.
오늘 만난 천사들의 밝은 눈빛과 활기찬 웃음소리들을 가슴에 담고 병원 문을 나선다. 내 아버지를 천사들이 잘 보살펴 주리라 믿으며.
(2010. 11.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