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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최윤
ㆍ작성일	2010-11-29 (월)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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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
우리 엄마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최윤

나는 신경질적이다. 그것은 우리 친가 쪽 유전이라 한다. ‘최 씨 고집에다가 신경질까지 더해진 못된 성격.’ 가끔 견디다 못해 엄마가 내게 하는 말이다. 남들과는 잘 부딪치지 않으려고 하는 편인데 가까운 사람, 속된 말로 ‘만만한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나보다.
결혼 전에는 학교에서나 직장에서 화가 나는 일이 있으면 엄마에게 화풀이를 하곤 했다. 아마도 잠자코 받아주는 엄마가 없었더라면 스트레스성 우울증에 걸렸을지도 모른다. 그 기고만장하던 마음은 결혼 때까지도 계속되었다. 난 이제 부모님의 그늘을 떠나 내가 만든 새로운 가족을 따라 내 맘대로 살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결혼을 했다. 하지만 결혼을 하니까 엄마에게 잘못했던 일이 많이 떠올랐다. 내가 엄마 때문에 얼마나 마음 편히 잘 살았나 하는 마음도 들었다.

며칠 전, 친정에 갔다가 엄마랑 다투었다. 엄마가 신발을 산다기에 같이 사러 나가기로 한 것이 발단이었다. 그날 왠지 내 기분은 저기압 상태였다. 약속 장소에서 엄마를 기다리는데 저 멀리서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사람은 가까이서 볼 때와 멀리서 볼 때 차이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멀리서 보면 가까이서 보이지 않던 부분들이 더 많이 보인다. 특히 나이테가 보인다. 엄마는 1,2년 새 많이 늙은 것 같았다. 그 전에는 동안(童顔)이라고 생각했었고 멀리서 걸어오는 엄마를 보면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왜 갑작스레 그렇게 나이가 들어 버린 것일까? 난 엄마의 나이를 예순이 넘는 순간부터 세질 않았다. 그냥 생각하기 싫은 것은 덮어버리는 성격의 나는 엄마의 나이가 든다는 것이 싫어서 외면했었다. 올해 엄마의 나이는 예순 셋이다. 예전이면 할머니라고 불렸을 나이이고, 우리 엄마는 손자, 손녀가 있는 사실상 할머니다.
얼마 전부터 엄마는 편찮으셨다. 수술을 하기도 했고, 다리가 아프다고 잘 걷지도 못할 때도 있었다. 그날 신발을 사는 이유도 다리가 아파서 편한 신발을 사기로 하였다. 신발가게에 들어가 신발을 고르는데 엄마는 조금만 굽이 있어도 불편해서 못 신는다고 하셨다. 이제 멋이 아닌 편한 신발을 고르는 엄마를 보며 이유 모를 짜증이 일었다. 그리고 가격이 조금만 비싸도 싫다며 거절했다. 몇 백 만 원도 아닌데 엄마가 이런 신발을 못 신을 만큼 자격이 없었나하는 생각이 점점 부풀어 가면서 짜증의 파도는 내 머리 위까지 덮어 버렸다. 나는 그냥 가자면서 나와 버렸다. 후회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순간은 아니었다. 친정으로 돌아와 바로 군산으로 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엄마는 반찬을 해 줄 테니 기다리라며 부랴부랴 반찬을 만들었고, 난 반찬만 받고는 군산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후회를 했다. 동생이 보낸 문자 메시지에는 ‘엄마가 많이 속상해 한다.’고 했다. 예전의 엄마는 내가 아무리 심한 말을 해도 그냥 아무렇지 않은 듯 넘겼다. 그런데 이번엔 예전에 비해 내가 덜 화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속상해했다. 그것도 나이 들었다는 증거 같아 슬프기도 하고 또 화가 났다.
엄마는 어린 시절의 그 엄마여야 했다. 자다가 엄마가 옆에 없으면 억지로 우는 소리를 내면 집안일을 하다가도 1초도 안 되어 달려오던 엄마, 다 큰 나를 아프다고 포대기에 엎고 병원에 가던 엄마. 너무 큰 아이가 등에 업혀 나가던 것이 오히려 내가 창피해서 엄마 등에 얼굴을 묻어버렸을 때 느껴지던 엄마의 감촉과 냄새는 내 기억에 생생하다. 지금도 내게 엄마는 그런 엄마여야 했다. 엄마가 지금 많이 편찮은 것도 다섯 아이를 낳으면서 몸조리를 잘못해서다. 먼 곳에서 시집와서 산후 조리도 잘하지 못했고, 늘 남편 먼저, 딸들 먼저 하면서 자신의 건강을 등한시 한 탓이다. 엄마의 폭신하던 등은 이젠 야위어 버렸다.

이제 엄마에게 아기처럼 의지해선 안 된다. 이제 내가 챙겨드리고 화가 나도 참아야 한다. 하지만 난 아직도 철부지 딸인가 보다. 엄마의 나이 든 모습이 싫고, 언제나 젊고 고운 엄마를 보고 싶은 것은 나의 욕심일까?
미안한 마음에 엄마에게 전화를 했더니 신발은 싸지도 않고 좋은 것으로 샀다며 걱정마라고 하셨다. 그리고 지금 고추장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나는 또
“사다 먹어도 식구가 없어서 다 못 먹는데 고추장을 만들다가 몸살이 나면 어쩌려고?”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그만두었다. 그냥 엄마의 고추장을 맛있게 먹어야겠다.

조금 뒤, 점심시간에 엄마가 해 준 국과 반찬으로 밥을 먹어야겠다. 챙겨먹는 것이 귀찮아 인스턴트로 때우는 내게, 엄마의 음식은 내 몸의 유일한 좋은 영양분이다. 오늘 따라 내가 어려서 좋아했던 음식이 많다. 오징어채랑 동그란 소시지 부침까지 만들어 주었다.
엄마도 문득 내 어린 시절이 떠오른 것일까? 이 음식들은 유치원 입학 원서에 좋아하는 음식을 쓰라고 했을 때 썼던 반찬들이다. 나는 엄마의 음식을 먹으며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 탯줄에서 받던 영양분을 받아먹었을 때처럼 따뜻해진 마음으로 먹을 것이다. 이 영양소가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가서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엄마를 향한 따뜻한 마음도 자라났으면 좋겠다. 이런 반성의 마음이 전주에 계신 엄마의 마음까지 전달되었으면 하면서 난 음식을 먹을 것이다.

(2008.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