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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이애란
ㆍ작성일	2011-05-02 (월)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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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저주는 부모
아이에게 저주는 부모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이애란

신기한 일이었다. 공부하기를 싫어하던 아들이 대학에 들어간 것도 고마운 일인데 기숙사 영어반에 들어가기 위한 시험에 합격했다고 한다. 나는 지방 출신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특혜 없이 시험으로 선발되어 영어특성화반에서 생활하게 되었다고 했다. 대견하면서도 의아한 마음이 들었는데 며칠 뒤 아들의 방에서 작은 비밀을 발견하였다.
어린 자녀를 키우는 대부분의 엄마들이 그러듯 나의 자식에 대한 기대와 소망은 특별하다. 나는 내 아이가 어떤 일도 쉽게 잊는 법이 없고 상황 판단이 빨라 유별나게 영특하다고 생각했다. 오죽하면 빨리 학교에 가봤으면 좋겠다 싶어 학교 갈 날을 기다렸을까. 그런데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날부터 나와 아이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아들은 학교 공부에 관심을 갖지 못했다. 게다가 행동이 느린 아들은 매번 지각하기 일쑤였고, 선생님이 내 주신 숙제는 번번이 잊어버렸다. 꾸중을 많이 들었을 테지만 아들은 개의치 않았다.
그 대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는 깊이 빠지곤 했었다. 한 때 컴퓨터 게임에 빠진 적이 있었다. 나는 어떻게든 게임을 못하게 말렸고 아들은 게임 외에는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어 보였다. 컴퓨터를 거실에 두었기 때문에 마음대로 게임을 할 수 없었던 아들은 내가 잠든 뒤에 몰래 나와서 꼬박 밤을 새워가며 게임을 했다. 가끔 인기척에 놀라 거실에 나와 보면 아들은 어느새 컴퓨터를 끄고 방에 들어가, 자는 체하곤 했다. 그럴 때 컴퓨터를 만져보면 막 꺼진 컴퓨터의 따뜻한 열기가 느껴졌다. 밤잠을 설친 아들은 당연히 다음날 학교에 가서 수업시간에 잠을 잤을 터였다. 어느 날인가, 그날도 컴퓨터 게임에 열중하는 아들에게 그만하라고 다그쳤다. 그때 나를 바라보는 아들의 눈빛에 흠칫 놀랐다. 다른 일에 관심이 많아 공부에 소홀한 아들이지만 나에게 반항하거나 심한 말을 한 적이 없는 순한 아이였다. 그런 아들이 내게 미움과 분노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더 이상 게임을 못하게 막아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나의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아이와 미워하고 화를 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옳지 않게 느껴졌다. 나는 아이가 게임에 조차 몰두할 수 없다면 자기가 해야 할 일에 몰두할 능력도 없을 거라 나를 위로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아들에게 게임을 마음껏 하게 했다. 그 대신 더 열심히 해서 그것으로 성공하라고 했다. 성공한 프로 게이머 이야기를 들려주며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갖는 기쁨을 가지라고 했다.
공부가 아니어도 행복한 인생이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하지만 여느 엄마들처럼 나의 마음속에는 가능하다면 공부를 해서 얻을 수 있는 안정적인 일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 마음을 내려놓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렇게 아이를 놔 주었다.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할 때 더 하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일까. 더 이상 내 눈치를 보지 않고 실컷 게임을 해 본 아들은 시간이 지나자 시들해졌고 이제 그만하겠다고 했다. 게임으로 성공하기는 너무 어려울 것 같고 젊은 시간이 지난 뒤에도 프로 게이머로 살 자신이 없다고 했다. 사실 그 때 나는 아들이 공부를 하겠다고 하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아들은 그 뒤로도 오랫동안 공부가 아닌 다른 일에 관심을 쏟았다.
아들이 대학에 다니기 위해 서울로 간 뒤, 아들 생각을 하며 아이의 책상에 앉아 보았다. 더 이상 쓰지 않게 된 책들을 정리하다 낯선 책을 발견했다. 고등학생용 참고서라기엔 너무 두꺼운 책이었다. 영어로 된 게임을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진 책이었다. 게임요령이 번역되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던 아들은 원본 게임CD를 샀다. 그리고 게임을 하기 위한 참고서를 샀나보다. 그 책과 나란히 책장에 꽂힌 노트를 보았다. 영어 단어들이 빼곡히 써 있었다. 아들은 필기를 하기 싫어해서 학교 다니는 내내 제대로 된 노트가 없었다. 수학문제도 손으로 쓰며 풀기를 싫어해서 머릿속으로만 하다 결국은 틀린 답을 무성의하게 적어내곤 했었다. 그런 아들이 정성들여 또박또박 써놓은 노트의 단어들은 생명력이 있어 보였다. 아들의 열정이 느껴졌다. 노트를 보면서 나는 어이없긴 했지만 아들이 영어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자기의 필요를 느끼지 못한 채 수업시간에 따라가는 공부는 하지 않았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게임을 위해 아이는 영어 공부를 했던 것이다. 나는 아이의 고집을 꺾지 못해서 게임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리고 아이가 공부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만 속상해 했다. 그런데 아이는 자기에게 필요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때로는 아이에게 저주는 부모가 좋은 부모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도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나쁜 길로 가는 것만 아니라면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도와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란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부모는 아이들의 앞날을 걱정하고 부모가 알고 있는 것이 아이들의 장래에 도움이 될 거라 믿는다. 그래서 아이들이 부모를 따르기를 바라게 된다. 하지만 온갖 매체들이 발달한 시대인 요즈음의 아이들은 부모세대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얻으며 자란다. 아이들은 부모보다 젊고, 더 유능하기도 하다. 그것을 믿어주고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 준다면 좀더 창조적이고 주도적인 사회인으로 잘 성장하리라 믿는다.
자신의 삶의 지도를 잘 그리기 위해서 지금도 노력하고 있을 아들에게 격려의 문자 메시지라도 보내야겠다.
(201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