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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전성권
ㆍ작성일	2011-05-01 (일) 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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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산
4월 산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전성권

봄이 되니 세상에 활력이 넘친다. 새순 바람이 잠자던 대지를 깨운다. 기다리던 봄비에 대지가 물을 한껏 머금자 앞마당 잔디도 파란 깃을 바짝 세우고 있다. 작은 웅덩이에 물이 고이기만 기다리던 개구리는 알을 낳고, 새들도 이 나무 저 나무로 옮겨 다니며 가슴살을 찌우기에 바쁘다. 산비탈 텃밭에서는 엄마와 꼬마가 서툰 호미질로 연방 구슬땀을 흘리며 봄을 캐고 있다. 속살 다 드러내며 황량하기만 하던 세상이 한결 부드럽고 포근하다.

봄비가 잠든 영혼을 뒤흔들었는지 예서제서 봄빛이 완연하다. 마음이 괜스레 설레고 연녹색 산에 포근히 안기고 싶은 계절이다. 벚꽃이 봄꽃 중에서 최고라며 으스대지만, 시야를 조금 돌리니 복숭아꽃, 개나리꽃, 진달래꽃, 싸리꽃 등이 함께 피어 있다.

나는 이제껏 산의 초목들이 새순을 살포시 내밀기 시작할 때 매실나무며 벚나무 등이 때 이른 꽃을 만개하며 뽐내는 모습 때문에 봄 산야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우리 사회가 그러하듯이 아장거리는 봄 산을 타고서 점점이 우쭐대는 모습에 괜한 심통이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가득 꽃 잔칫상을 받고 봄 마음을 달랜 뒤 사월의 산을 보노라니 그윽한 멋에 취해 어느새 다가가 하나가 되고 만다. 굳게 닫혔던 비뚤어진 마음의 빗장이 스르르 풀리고야 만다.

펼쳐진 걸작에 취해 산에 안기기도 하고 나무 위를 깡충깡충 뛰어다니다가 잠시 두 눈을 감고 마음속에 산을 넣자 어느덧 나는 화가가 된다. 미술과는 아예 담을 쌓고 살아온 나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이제 막 졸졸졸 흐르기 시작한 맑은 계곡물을 떠서 자연을 물감 삼아 생애 최고의 풍경화를 그리고 있다.

초겨울 산이 속살 드러내며 여백을 잘 살린 정적인 동양화요, 가을 산이 형형색색 빼곡히 덧칠한 유화라면, 4월의 산은 한 폭의 수채화다. 어느 것 하나 돌출되지 않게 조화롭고 여유가 넘친다. 새순 바람과 꽃바람은 능숙한 솜씨로 연녹색으로 밑칠을 한 다음 차분하게 하나둘 그림을 그려 나간다. 골바람에 밀리고 땀 바람에 쫓겨 하루가 다르게 완성미가 더해진다. 진하고 옅음이 자연스러워 어느 하나에 눈을 두지 못하게 한다. 단색 일색인 여름이나 겨울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은은하고 포근한 멋이다. 데구루루 굴러도 아플 것 같지 않은 안락함이 있다.

4월의 산은 모든 생명을 잉태하고 아픔마저도 감싸 안고 있는 어머니다. 모든 자식을 잘 키우고자 하는 넓고 깊은 마음이 배어 있다. 할 말이 있어도 속으로만 참고 견디는 절제와 인내를 몸소 실천한다. 뽀얗고 보드라운 아가를 따스하게 안아주고 누구라도 품에 안겨 편안히 잠들게 한다. 언제라도 달려가면 등을 두드려주며 먼 길 나설 수 있는 힘을 북돋아 주는 어머니다.

4월의 산은 때로는 안아주고 싶은 애잔함도 있다. 아직 품속에 있어야 하는데 너무 강하게 키우지 않나 싶기도 하다. 암탉 품속에서 간신히 기어 나오는 미처 제 색을 갖추지도 못한 햇병아리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조금 세찬 골바람이라도 불 때면 애써 나온 새순을 닫아버리고 품속으로 들어가 버릴 것만 같다.

나는 봄에 취해 고개를 들어 봄 산을 볼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에 집착할 뿐 잔잔히 어우러진 주변의 존재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4월의 산속에 들어가 보고 난 뒤에야 우리의 삶보다 더 큰 세상의 질서를 알게 되었다. 흐드러지게 핀 꽃을 뽐내는 나무가 있는가 하면, 여린 새순을 살짝 내밀고 있는 나무가 있고, 아직 움이 트지도 않은 채 의연히 때를 기다리는 나무도 있다. 이제 갓 시작인 출발선에서 분주한 모습이 마치 우리 삶의 시작을 보는 듯하다. 짧아서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