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삶에 지치고 우울할 때면 새벽에 남부시장을 찾는다. 그곳에 가면 펄펄 뛰는 듯한 생동감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곳에 가려고 나섰다. 밤에 비가 왔는지 땅이 촉촉했다. 오목대 앞에 이르니 비에 젖은 가로등 불빛 아래서 개나리는 추운 듯 몸을 옴츠리고 있었다. 전주천을 따라 매곡교에 도착하니 천변 앞 노상에는 흥정하는 소리로 사람냄새가 물씬 풍겼다.
남부시장은 조선시대(1473년)부터 있었다. 1936년 시장이 대폭 개축되면서부터 남부시장이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전북의 상업, 금융, 교통의 중심 기능을 계속하여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가 전성기였다고 한다. 그 당시는 호남 최대의 물류집산 시장으로 전국의 쌀 시세가 남부시장에서 결정될 정도였고, 부산과 마산 등지에서 이곳을 통해 쌀을 사갔다고 한다. 그러던 게 1980년대 들어서면서 도심 외곽에 대형상가 및 대형할인점이 자리잡아 전주의 돈이 서울로 빠져나가면서 서서히 상권이 잠식당해 쇠퇴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시장 안에 들어서니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들의 눈빛이 맑고 생기가 넘쳤다. 새벽 정적을 깨우며 많은 상인들이 바삐 움직이며 물건들이 펼쳐진다. 한곳에 자리 잡은 어떤 할머니가 직접 농사를 지어 캐왔다며 불미나리, 부추, 달래, 머위, 고들빼기 등을 보따리보따리 풀어놓기 바쁘게 장사꾼들이 다 가져갔다.
시장에서 제일 먼저 나온다는 S씨를 만났다. 양파, 당근, 팽이버섯 등 종류도 다양했다. 나는 그분에게 궁금한 몇 가지를 물어보았다. 그분은 새벽 2시쯤 나온단다. 물건은 광주에서 사오는데 그곳엔 경매시장이 새벽4~5시와 낮12시로 하루에 두 번씩 열린다고 한다. 그래서 낮 시장을 보고 전주로 와서 새벽 2시부터 도매로 팔며 남은 물건은 일반 소비자 몫인데 새벽 5~6시쯤 손님이 가장 많다고 했다.
이분은 서울에서 유흥업소를 운영하다 실패하고 빈손으로 내려와 처음엔 하루에 2시간씩 잠을 자며 열심히 살았단다. 그 덕에 2년 만에 집을 사고 아들은 대학을 졸업시키고 취직도 시켰다고 한다. 8년이 지난 지금은 기반이 잡혔다며 열심히 노력하면 살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때는 물건을 많이 팔다 보니 미움을 사서 상인들로부터 왕따를 당하여 서러웠다며 생존경쟁이 가장 치열한 곳이 바로 이 시장이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삶의 강한 의지와 그동안의 고달픔을 읽을 수 있었다.
생선을 파는 D가게로 가 보았다. 이분은 1997년 정읍에서 운영하던 가게가 IMF를 만나 도산하고 1999년 전주로 나와 초창기엔 고생이 많았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사는데 남부러울 게 없다며 강원도 주문진에서 고등어와 오징어, 삼치 등을 성수기인 10월에서 1월 중순에 직접 사다 대형냉장고에 얼려놓고 1년 내내 판단다. 장사한 지가 15년이 되었다며 부인과 장성한 두 아들이 함께하는데 취직하기 어려운 요즈음 세상에 이도 다행이라는 그의 말을 들으니 나도 힘이 솟았다.
고사리를 파는 H가게에 들렀다. 마른 고사리를 사다 직접 삶아서 팔며 가격은 1관에 12,000원~상품16,000원에 팔고 있었다. 몇 시까지 파는지 궁금해했더니 아침 9시~10시쯤 수금이 되면 들어간다고 했다. 시장 식구도 젊은 사람들이 뒤를 이어주지 않으니까 그 수가 차차 줄어든다며 염려를 했다.
6시가 조금 지나서 나는 시장 안 식당골목으로 들어섰다. 이곳에는 주로 콩나물국밥과 순댓국밥을 파는 식당이 모여 있었다. 24시간 영업하는 집이 많다. 나는 순댓국밥 집에 들렀다. 고기를 손질하는 할머니, 육수를 끓이는 이모, 돈을 받는 막내, 온 가족이 함께 운영하니 마치 친척집에 온 것처럼 포근하다. 따끈하게 한 그릇 먹고 나니 온몸의 추위가 확 풀린다. 오늘은 날씨가 안 좋아서인지 찾는 손님이 별로 없다.
8시가 가까워지니 손님이 뜸해진다. 날씨가 쌀쌀한 탓인지 거리의 상인들은 양철통에 불을 피워 추위를 녹이며 컵라면 등으로 끼니를 때우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리어카에서 커피를 팔기도 한다. 이곳 새벽시장은 겨울엔 3시반~4시반, 요즘에는 2시~3시에 열리는데 부안, 김제, 정읍 등 각 지역에서도 찾아와서 물건을 떼간다고 한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새벽부터 나와 일하는 분이 있기에 이렇게라도 새벽시장이 살아 숨 쉬지 않을까 싶다. 나는 도라지와 피망, 양파 등을 사가지고 돌아왔다.
남부시장에는 번영회가 있어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시설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경영현대화를 위해 전자상거래, 홈페이지 운영 등 갖가지 사업을 벌이며 시장에 없어서는 안 될 지원군으로 애를 쓰고 있다. 그들의 노력이 빨리 풍성한 결실을 맺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제 우리 모두가 주인의식을 가지고 지역이 살아야 내가 살고, 내가 살아야 후손이 산다는 생각으로 다소 불편하더라도 서민의 향수가 배어있는 재래시장을 이용하는 습관을 지녔으면 좋겠다. 손님은 상인을 믿고, 상인은 손님을 의지하며 혼연일체가 되어 새벽잠을 설치며 안간힘을 쓰는 우리 부모님과 형제자매들에게 힘과 용기를 실어주어 함께 잘 사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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