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쾌한 아침이다. 오늘도 여느 때나 다름없이 전주 아중천변으로 자전거산책에 나섰다. 자전거를 타는 것은 이제 나의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산책길은 오르막길도, 내리막길도, 평탄한 길도 있게 마련이다. 스릴[thrill] 만점이다. 한마디로 인생여정이라고나 할까.
자전거를 처음 만져 본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30여 가구가 살던 우리 사옥(舍玉)마을에는 자전거 한 대가 있었다. 그것은 둘째외숙이 진안중학교에 다닐 때 타던 자전거였다. 바깥구경 한 번 못하고 자라온 나에게는 자전거가 신기하기만 했었다. 나를 끔찍이 예뻐해 주셨던 외숙이었지만 자전거 타는 것만은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님은 아침 일찍 장에 나가시고, 외숙은 무슨 일로 집을 비우셨다. 철부지 우리들은 앞뒤를 가리지도 못한 채 2km나 되는 은천분교까지 자전거를 끌고 갔다. 처박히고, 거꾸러지고, 피를 흘리면서도 자전거를 배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린아이가 거름마를 배울 때처럼 말이다. 해가 질 무렵에야 외숙의 호된 꾸지람을 생각해야 했던 그때의 추억이 새롭기만 하다.
내 고향 진안 사옥마을은 많이도 변했다. 옛날에는 전주에서 진안까지 직행버스를 타고 가서 다시 마령방면 완행버스로 다시 갈아타야 했다. 중간지점인 원가림마을 입구에 내려서 2km쯤 비포장 길을 따라 올라가면 부모님이 기다리시는 고향마을이다. 여름철, 수박 한 덩이라도 사들고 갈라치면 얼마나 비지땀을 흘려야 했던지……. 장날이면 소달구지나 경운기가 농촌사람들의 손발이 되었고, 짐받이자전거가 한몫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자전거를 만들지 못하고 일본에서 부품을 들여와 조립생산을 해야 됐기에 자전거 값도 꽤나 비쌌다.
우리 마을에서 논 한 마지기에 쌀 10가마를 주어야 했는데 자전거 한 대 값이 3가마였으니, 웬만한 집에서는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그러던 농촌이 이제 와서는 도시사람들 부럽지 않다. 마을 공터에는 트랙터와 콤바인이, 집집마다 자가용차가 얼굴을 내밀고 있다. 멀게만 느껴졌던 산간오지 고향마을도 승용차에 오르기만 하면 금세 다다를 수가 있으니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요즈음 들어 우리 주변에서는 자전거타기 붐[boom]이 일고 있다. 정부에서는 녹색성장전략의 일환으로 전국을 하나의 자전거생활권으로 만든다고 한다. 자전거도로네트워크를 구축해서 카드 하나만으로 전국 어디서나 자전거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강원도에서는 자전거관광과 연계하여 청량하고 싱그러운 산소를 국민에게 선사하고, 제주도에서는 자전거하이킹을 통하여 천혜의 자연경관을 한 눈에 살펴보게 한다는 것이다. 대전시에서는 친환경자전거도시꾸미기 프로젝트를, 순천시에서는 연안습지 순천만관광을 자전거를 이용해 탐방하도록 하고, 광주시에서도 광주천과 영산강을 잇는 자전거전용도로를 개설한다는 소식이다. 서울지하철 1호선에 자전거전용열차가 처음 등장했고, 삼성화재는 국민은행과 공동 개발하여 개인용자전거상품인 녹색자전거보험까지 내 놓고 있다. 이쯤 되면 자전거에 관심 없던 이들도 군침을 흘리지 않을까 싶다.
내가 자전거타기에 열정을 쏟았던 곳은 남원(南原)이었다. 1975년 8월 1일자로 전매청남원지청에 첫 발령을 받고는 1983년까지 남원에 머물렀으니 무려 8년을 남원에서 지낸 셈이다. 1981년도에 남원읍이 남원시로 승격되기 전까지는 남원에 시내버스가 한 대도 없을 때여서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자전거 없이는 살 수 없다.”
는 말이 나올 정도로 춘향고을 남원에는 자전거물결로 출렁이었다.
남원시내는 높낮이가 거의 없는 평지인데다 시내생활권이 반경 2km안에 들어 있어서 20～30여분만 자전거를 타면 관공서‧ 학교‧ 은행․ 시장 등 못가는 데가 없다. 아침저녁 출퇴근길에서는 베트남이나 중국을 연상(聯想)케 한다. 남원이야말로 대한민국에서 제일가는 바이커[Biker]들의 천국이 아닐는지.
자전거를 가까이하다 보니 별스런 일이 다 있었다. 어느 날, 직장동료가 집들이를 하겠다며 몇몇 동료들을 초대했다. 평소 술 욕심이 많던 나였기에 자전거를 집에 모셔놓고 가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날따라 술맛도 나고 기분도 좋아서 집들이 턱을 잘 받았다. 술자리가 끝날 즈음이었다.
“술은 돈 주고 사먹어야 제 맛이지 공짜 술은 좀 그렇더라.”
슬그머니 2차를 부추기는 동료가 있었다. 어느 누가 싫다고 하겠는가. 모두 OK였다. 그날은 3차까지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다보니 내 자신이 술 취한 것을 잊어버리고, 시내 변두리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친구가 걱정되었다. 자전거가 없으면 택시를 잡아타겠지 싶어, 내가 자전거를 끌고 오기로 했던 것이 불찰이었다. 술 취한 놈이 남의 사정 봐주다가 큰 사고를 당한 것이다. 그 이튿날에야 알았지만, 자전거를 타고 오다가 전봇대를 받아버린 것이다. 얼마나 세게 받았던지 얼굴은 말할 것도 없고 눈텡이가 밤텡이가 되어 며칠간 누워있어야 했던 일이 추억으로 남는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내 딴에는 자전거솜씨를 뽐내려고 남원시내에서 2km쯤 떨어진 담배원료공장까지 핸들을 잡지 않고 몸으로만 조절하며 페달을 밟은 적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동료들과 내기경주를 많이 했었기에 손 놓고 자전거 타기는 누워서 떡먹기였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자리에 앉으려는데 뒤따라 들어온 Y계장님이 나를 부르셨다. 영문도 모르는 채 가까이 다가서자
“당신, 자전거를 멋으로 타는 거야?”
호통을 치는 게 아닌가. 출근길, 시내버스에 탔던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저 사람 죽으려고 환장했나?”
하며 손가락질까지 하더란 것이다. Y계장은 얼굴이 뜨거워 몸 둘 바를 몰랐다고 했다. 자초지종(自初至終)을 들은 뒤에야 내 잘못을 뉘우쳤다. 그 때 그분의 꾸중이 없었더라면 나의 자만심이 얼마나 큰 화(禍)를 불렀을지 모른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어째 세상살이가 각박해진다. 인생을 살다보면 수많은 장애물이 나타나고, 험난한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럴수록 소중한 게 마음을 울리는 따뜻한 배려다. 진심으로 다가오는 배려의 마음에서 삶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서로가 상생하고 소통하려면 대화가 필요하듯이 두 바퀴가 함께 굴러가면 인생의 고갯길이 열린다. 어려움에 빠지거나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 때면 나는 페달을 밟고서 들과 천변으로 내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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