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눈물을 감추기에 충분한 어둠이었다. 비가 온다. 천정이 닫혀 있는데도 비는 내린다, 마음속을 헤집고 후벼대는 연민의 눈물은 흐르는 비라고 말해도 좋을 듯싶었다. 바이러스인가. 앞뒤에서도 소리 없는 눈물을 조용히 훔쳐내고 있었다.
사람에겐 자기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과 선택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가게의 물건들이다. 대학교, 친구, 애인 등도 대부분 내 의지에 의해서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전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은 국가와 부모 형제, 시대, 나의 탄생 등이다. 대부분 의 사람들은 비록 만족스럽지 못한 조건 속에 있더라도 운명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지혜가 있다면 세상은 살만할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운명이란 게 있을까? 맞닥뜨리지 말아야 했을 그 시각 그 순간이…….
선후배의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을 대하고 즐거운 식사를 하였다. 문화생활을 해 보자며 영화를 보았다. 여자 죄수가 아이를 출산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하모니라는 영화다. 교도소를 주제로 한 영화는 항상 긴장이 넘치고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폭력이 난무한다. 하모니는 여자교도소를 배경으로 한 영화인 탓인지 부드러웠다.
여죄수에겐 대동유아란 제도가 있단다. 산모 또는 임산부 여죄수들이 입소하면 아이가 생후 18개월 될 때까지 교도소에서 함께 생활할 수 있다고 한다. 18개월 후엔 친인척이나 시청, 군청 등 사회복지과에 입양을 의뢰해야만 한다. 영화의 주인공 정혜는 고아출신이기 때문에 아이가 자라면 입양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아이의 돌잔치를 감방에서 몰래 벌이다가 교도관에게 발각되어 사진을 찢기기도 한다. 어느 날 정혜는 교도소 위문 공연을 온 합창단에 흠뻑 빠져버린다. 그리고는 교도소장에게 합창단을 결성하여 멋진 공연을 하면 아이와 1박 휴가를 해달라는 어이없는 제안을 한다, 인정 많은 교도소장의 허락을 받고 막상 합창단을 조직해 보려 하지만 지도자도 반주자도 없는 상태다.
천태만상의 죄수들. 뱃속의 아이를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남편을 살해한 정혜, 의붓아버지의 상습적인 성폭행에 반항하다 의부를 우발적으로 살해한 유미, 믿고 의지했던 후배와 남편의 불륜을 감당하지 못하고 교통사고로 숨지게 한 살인자 문옥, 다행히 그녀가 음대교수였다. 결국 합창단을 조직하지만 여죄수들은 범죄만큼이나 음색도 가지가지였다. “음악은 마음의 문을 열어야한다.”는 문옥의 지도방법은 정말 얼음을 녹인 하늬바람이었다. 동변상련이랄까? 한심스러웠던 노래 수준은 6개월 후 교도소 내의 모든 사람을 감동시킬 정도로 성장했다. 드디어 두 사람의 특박은 이루어지지만 그날이 민우가 18개월이 된 날이었다. 곧바로 입양이라는 영원한 결별이 숙명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어린 자식을 영원히 떼어 보내야 하는 어미의 찢어지는 심정은 관람객 모두의 마음으로 전이 되었다.
4년 후 전국여성합창 발표회에 청주여자교도소의 함창단도 초대를 받게 된다. 발표회 날 반지 분실 사건으로 의심받은 여죄수들은 옷을 벗기는 수모와 공연취소라는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교도소장의 믿음으로 공연은 시작되었다.
공연 마지막에 다섯 살이 된 정혜의 아들 민우가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아이들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 아이들은 여죄수의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는데 민우가 정혜의 손을 잡고 노래를 한다. 엄마인 줄 꿈에도 모른 채. 아들과 만나게 해준 양부모의 인간애도 눈물겨웠다. 정혜에게 준 크리스마스 선물. 아들의 유치원 작품과 성장과정을 담은 사진. 정혜는 그 앨범을 가슴에 안고 처절히 몸부림친다. 여죄수들도 가족들과 눈물의 상봉을 하고 그동안 서로를 미워했던 마음도 푼다. 아빠를 죽인 엄마, 그래서 살인자의 자식으로 고아처럼 슬프게 자란 딸이 엄마의 지휘하는 모습을 보고 꼭꼭 닫혔던 마음의 빗장을 열고 엄마를 용서한다. 그러나 너무 늦은 화해였다. 딸과 행복하게 하룻밤을 보내고 온 음악 교수 문옥에게 사형집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걸 체념하고 사형장을 향해 떠나는 그녀를 보내며 모두 부모형제보다 더 끈끈한 정으로 뭉친다, 그녀들은 엄마 같은 문옥을 보내며 찔레꽃이란 노래를 불러준다, 그 옛날 민우를 재우면서 불러줬던 문옥의 노래를…….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도 있다. 영화 속의 죄인들은 로맨틱하게 그려지기도 한다, 그러나 죄라는 것은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행위이고 법을 어긴 것이기 때문에 법의 심판은 합당한 것이라고 본다. 악질적인 살인범이나 파렴치한 성 범죄자들. 특히 아동성범죄자는 결코 용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칡넝쿨처럼 줄기를 뻗어 모든 나무를 휘감아 황폐화시키는 그런 나무는 뿌리 채 뽑아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들은 본인은 물론 가족들까지도 평생 크나큰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한다. 사형수들을 감싸 안아주고 교화시켜 사람을 만들어주는 사람들은 정말 성인 같은 사람들이다. 그들을 감싸 안아줘야 한다는 것은 이상이고 피하기부터 하는 보편적인 인간의 행동은 감성이다. 밉고 무섭고 두려워 피하고 싶은 것이다. 그들을 교화시킬 능력이 없는 나 역시 피하고 싶다. 요즘 성폭행 살인자 김길태의 발뺌진술은 뻔뻔스럽기 극에 달한다. 저런 사람에게도 반성과 속죄의 날이 있을까? 섬광이 번쩍이듯 치뜨는 저 눈빛이 얼마나 지나야 부드러운 눈빛으로 변할 수 있을까?
하모니는 조금은 어설프고 덜 익은 것 같은 구성도 있었지만 감동적인 영화였다. 과격한 폭력이 난무하는 요즘 영화 속에서 이렇게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감성영화를 만들어준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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