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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이수홍
ㆍ작성일	2010-04-04 (일)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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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화
봉선화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이수홍

꽃은 누구나 다 좋아한다. 그런데 유난히 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꽃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측정할 수 있는 청진기 모양의 계량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청진기를 대듯 계량기를 내 몸에 대고 측정해 본다. 40점 낙제를 면치 못한다. 왜 이토록 인색한 점수를 줄까? 꽃의 종류, 전설, 꽃말 등을 딱 부러지게 아는 것이 별로 없으니 당연하리라. 꽃에 대한 글을 써보지도 못했다. 내 고향 후배는 꽃을 소재로 한 시집(詩集)을 냈고, 지금도 꽃을 소재로 한 시를 쓰고 그 시를 나에게 보내 준다. 부럽고 존경스럽다. 그 꽃에 대한 족보도 모르면서 향기만 즐길 줄 아는 나는 얌체가 분명하다. 벌과 나비는 향과 꿀을 딴 대가로 열매를 맺도록 중매를 하지 않던가?

그래도 나는 꽃을 좋아한다. 특히 봉선화를 좋아한다.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집 장독대 뒤에는 봉선화가 있었다. ‘건들지 마세요!’ 라는 꽃말처럼 횡대로 선 모양은 열병하는 육군사관학교 생도들 같았다. 누님은 꽃과 잎을 따서 백번과 소금을 넣고 찧어 손톱에 붉은 물을 들였다. 내 손톱에도 물을 들여 주려고 천으로 쌓아 실로 감아 주었지만 자고나면 내 잠버릇 때문에 손톱대신 이부자리를 물들였던 추억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때 봉선화란 노래를 열심히 불렀다. 우리 선생님은 일제 강점기에 박해가 심하여 은밀히 그 노래를 부르다가 해방이 되어 더 열심히 가르치셨다. 나는 지금도 봉선화란 노래를 잘 부른다. 이제 막 돌이 지난 손녀 은수를 데리고도 가끔 부른다. 얼토당토않다고 할지 모르지만 자장가로 부른다.

울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 필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어언 간에 여름가고 가을바람 솔솔 불어/ 아름다운 꽃송이를 모질게도 침노하니/ 낙화로다 늙어졌다 네 모양이 처량하다/

2절까지 부르고 나면 손녀 은수는 살며시 잠이 든다.

봉선화는 바이올리니스트 홍난파가 1920년에 작곡하고 5년 뒤 김형준이 선율에 맞게 시를 지은 노래다. 우리나라 최초 예술가곡으로 최명숙이 처음 불렀다. 내가 이렇게 유명한 곡이라는 것을 알고 즐겨 부르는 것은 아니다. 애절한 가사와 선율이 가슴을 울리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슬픈 노래를 부르면 슬퍼해야할 생활이 이어진다고 한다. 배호가 <누가 울어><마지막 잎새><0시의 이별> 등 애절한 노래만을 불러 요절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말을 부정한다. 인생은 어차피 희로애락의 연속이니 어떤 노래를 부르던 듣기 좋게 잘 부르면 된다. 살아온 내 삶의 흔적이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템포가 빠른 탱고나 신나는 노래보다는 애절한 감동을 주는 트로트 곡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느려빠진 블루스 곡은 춤을 추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예 좋아하지 않는다.

아내가 혼수로 가지고 온 <정선 세계 150가곡집> 상하권이 지금도 책꽂이에 꽂혀있다. 그중에는 한국곡이 20곡 들어있다. 제일 첫 곡이 <봉숭아>다. 그래서 우리는 신혼 때 그 책을 펴놓고 아내는 하모니카로 나는 육성으로 합창을 했다. 그리고 아내는 자기 손톱과 나의 엄지발가락에도 물을 들여 주었다. 문득 국민가수 현철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행님 예! 제가 부른 <봉선화 연정>도 한 번 불러 주이소!”
지금 우리 내외는 인생을 사계절로 치면 봉선화가 시들어 가는 가을이다. 하지만 봄을 맞이한 손녀와 함께 봉선화를 부르면서 그 꽃이 한창 피어나는 한 여름처럼 젊게 살리라. 봉선화는 불로초이니 말이다.
[2010.4.1.목.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