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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김병규
ㆍ작성일	2010-05-06 (목)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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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걸음마
노년의 걸음마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김병규

부푼 꿈을 안고 맞았던 경인년(庚寅年)은 연초부터 우리에게 시련과 고통을 불러왔다. 천안함 침몰사태로 5천만 국민의 가슴을 갈기갈기 후볐고, 나 개인적으로는 세 번씩이나 허리뼈 골절시술(施術)로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을 겪었다. 예고 없이 오는 게 비극이라지만 있어서는 안 될 참담한 비극이었다. 철을 잊어버린 듯 몰아치던 대설한파와 국민적 아픔에서도 세월의 특별열차는 쉬지 않고 달렸다. 어느새 4월의 끝자락이 국민적 시련과 고통을 싸들고 멀리 떠나버렸다. 연이어 커다란 상처를 치료하고 새 희망을 열어갈 5월이 왔다.

5월은 어린이날이 들어있어 나라의 희망인 어린이를 사랑으로 안아주는 고귀한 달이다. 어버이날이 있어 부모의 은혜에 감사하고,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뜨거운 마음으로 부모를 공경하는 달이다. 스승의 날이 있어 은혜에 감사하며 존경해야할 달이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아름답고 푸짐한 초여름의 신록은 미래의 찬란한 꿈을 열고 있다. 5월은 우리의 가슴에 정을 기르고 사랑을 실천해야할 풍요의 계절이다.

나의 지난날은 연초부터 악몽 같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지난해 7월에 교통사고를 당한 뒤 건강이 회복되는가 싶었다. 그런데 2월에는 재 시술, 3월에 3차 시술을 받으며 생사의 갈림길에서 삶의 의욕마저 가물가물했었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수 없이 했었다. 식욕이 전혀 없으니 이대로 한 30여일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입을 다물면 편안히 숨을 멈출 수 있으리란 극단적인 생각도 수 없이 했다. 그러나 모진 것이 목숨이었다. 몽롱한 의식 속에서도 살아야겠다는 의욕이 앞섰다.
연초부터 4월말까지 120여일, 육신의 아픔과 정신적 고통은 이 과정이 지옥생활이라 느끼기도 했지만 참고 버텼다. 마음대로 돌아누울 수가 없었고 화장실도 아내의 부축으로만 갈 수 있었다. 누어만 있으니 소화기능이 약해졌고, 기력이 떨어져 정신까지 혼미한 상태였다. 심한 감기까지 파고들었다. 기침이 나올 때마다 허리에 전달되어 짜릿짜릿 전기고문을 당하는 것 같았다. 나 자신이 보아도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다.

고난은 재기의 디딤돌이었다. 잔인했던 그 사연들을 꽃바람에 싸들고 4월이 내 곁에서 훌쩍 떠났다. 5월이 오면서 궂은 날씨가 사라지고 황금빛 찬란한 아침 해가 연일 솟아오른다. 벌떡 일어나 저 푸른 초원을 마음껏 달리고 싶다. 얼마나 애타게 희구하던 일인가? 허나 나는 돌 이전의 손자처럼 발발 떨고 일어서서 한 발 한 발 걸음마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른바 노년의 걸음마다.

어린 손자가 한 발 두 발 걷다가 넘어지고 또 일어나 걸을 때는 그렇게 귀엽고 예쁠 수가 없었다. 어린이가 혼자 걸을 수 있기까지는 무려 2천 번의 실패를 경험해야 한다고 했던가? 나는 지금 어린 손자처럼 걸음마를 연습하고 있다. 남 보기에 어쭙잖고 가소로울지 몰라도 고난의 길을 거처 온 나는 대견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5월에 들어서 나는 물리치료치료를 받으러 집에서 500m 거리에 있는 병원까지 걸음마로 다닌다. 일어서면 옆으로 터질 듯 고통이 오고, 상체가 하체를 눌러 주저앉을 듯 짓누르지만 나는 걸음마에 희열을 느낀다. 멀찍이서 뒤따라오던 사람들이 내 꼴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뭉그적거리며 발을 옮기는 내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뜨리리라. 노년의 걸음마가 얼마나 웃기겠는가? 뒤따라오던 사람이 나를 휙 앞질러 씩씩하게 걸을 때는 부럽기도 하고 나도 뛰어가고 싶지만 생각과 몸은 하늘과 땅 차이다.

얼마나 바라고 원했던 걸음인가? 투병생활의 고통, 육신의 아픔과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길고도 험하다. 그러나 나는 희열을 느낀다. 처음 시도할 때 500m 거리는 노년의 걸음마로 50분이 소요되었다. 그러나 6일 만에 30분으로 단축시켰다. 나의 질병회복이 손에 잡힐 듯 보인다. 남 보기에 우스꽝스러울지 몰라도 노년의 걸음마가 나에겐 하늘이 내려준 희망의 밧줄이고 구원의 구세주다. 5월 들어 내 가슴에도 뜨거운 희망이 솟아오르고 있다.

(2010. 5. 6.)
수술(手術): 손상된 뼈나 몸의 일부를 도려내거나 교체하는 치료
시술(施術): 손상된 뼈나 몸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봉합하는 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