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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최윤
ㆍ작성일	2010-05-30 (일) 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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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추억
향기로운 추억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최윤

얼마 전부터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라는 노래 '과수원길'이 자꾸만 생각났다. 아카시아 꽃이 필 때여서 그랬나 보다. 별로 자연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은 남편도 얼마 전부터 아카시아 필 때가 되었는데 소식이 없다며 궁금해 하더니 아카시아 향기가 나자 기뻐했다. 남편은 유일하게 좋아하는 꽃향기가 아카시아라고 했다. 의외였다. 만난 지 5년 만에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남편은 향기가 진한 남성용 화장품이나 향수를 쓰지 않고, 향수를 뿌린 아름다운 아가씨가 지나가도 감탄하기보다는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고 투덜거린다. 그런 그가 냄새에 둔한 편인 나도 진하다고 느끼는 아카시아 향기를 좋아했다니…….

7층인 우리 집에선 학산(鶴山)이 잘 보인다. 이사할 때, 이 산을 보고 이사를 결심했다. 푸른 산을 바라보면 기분과 건강도 좋아질 것 같았다. 요즘도 거실에 앉아서 밖을 바라보곤 하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황량하게 메말랐던 나무에 잎이 돋고, 푸른 잎들로 풍성해지기 시작했다. 헐벗고 눈이 쌓인 나무를 본 것이 엊그제 같은데, 쑥쑥 자라는 아이처럼 아침마다 그 모습이 변해 놀라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분명 난, 학산의 나무들이 그냥 잎만 푸른 평범한 나무일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남편과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디에선가 아카시아 향기가 날 때만해도 완산 칠봉에서 날아온 냄새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날, 커튼을 걷고 밖을 바라보던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순간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은 밤새 요술쟁이가 다녀갔다는 것이었다. 나도 모르는 새 그 푸른 나무들에게서 하얀 아카시아 꽃이 만발한 것이다. 매시간 마다 꽃잎수가 늘어가는 것 같았다. 이사 온 지 1년이 다 되는데 이제야 학산의 나무가 아카시아라는 것을 알다니, 나의 무심함에 나도 혀를 찼다. 별로 놀라는 법이 없는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아카시아가 산에 만발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남편은 아카시아 향기가 좋긴 좋은지 퇴근하고 돌아오면 창을 활짝 열어 놓는다. 오후가 되면 은은한 향기가 베란다로 더 많이 달려온다. 그러나 남편이 올 무렵이면 저녁식사 시간이라 갈치 굽는 냄새로 진동한다. 마치 남편의 아카시아 감상을 방해라도 하듯이 며칠간 이웃집에선 갈치를 구웠다.

사실 난 아카시아 향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향기가 너무 진해 아카시아 껌도, 향수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별로 좋지 않은 기억 속에 아카시아 향기가 진하게 남아있다. 무슨 일인지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막막한 마음과 그 속에 존재했던 아카시아 향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아카시아 향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이 무렵 남편과의 추억 때문이다. 결혼 전, 친구들과 우리 커플이 밤에 만나서 저녁 식사를 하고 우리 동네로 왔다. 그들은 내 초등학교 동창들이었기에 집이 모두 전주 서학동이었다. 우릴 소개시켜준 친구도 있었는데 그 아이는 다른 친구를 집까지 데려다 주고 오겠다며 우리 둘은 잠시 기다리라고 해서 앉을 곳을 찾다가 평상이 보여 그곳에 앉았다. 피곤하기도 했고, 밤이 늦었었다. 주변 공기는 멈춘 듯 고요했다. 우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 순간 잔잔한 바람과 함께 아카시아 향기가 났다. 아마 학산에서 전해오는 향기였을 것이다. 그 당시만 해도 우리가 결혼하여 그 근처에 집을 얻고 함께 살며, 함께 아카시아 향기를 맡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그때 기억으론 우린 말없이 친구가 올 때까지 10여분 동안 각자의 생각에 빠져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남편은 아카시아 향기에 취해 있었나 보다. 그때 이후론 아카시아 향기를 맡으면 그때 기억이 난다. 그래서 아카시아 향기는 아주 다른 꽃보다 더 향기로운 추억으로 내 맘속에 자리 잡고 있다. 곧 비가 오면 아카시아는 학산의 주연 자리에서 물러나고 다음해를 기약할 것이다. 다음 해, 아카시아 향기가 날 무렵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부디 오늘처럼 평화롭게 향기에 취해서 글을 쓰고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201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