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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김양수
ㆍ작성일	2010-05-20 (목)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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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전쟁
둥지전쟁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김양수

어제부터 한 쌍의 새가 절박하게 울어대는 통에 뒷마당이 꽤나 소란스러웠다. ‘꽉꽉꽉 짹, 꽉꽉꽉 짹’ 이른 아침, 귀청을 울리는 따가운 소리에 잠을 깼다. ‘또로롱, 또로롱’ 작은 새들의 지저귐은 엄마의 자장가처럼 감미로운데 놈들의 울음소리는 제법 우렁차고 시끄러웠다. 놈들의 큰 덩치만큼이나 요란한 울음소리였다. 참다못한 나는 씩씩대고 일어나 열려진 창을 닫고 다시 잠을 청했다. 하지만 놈들은 그칠 줄을 모르고 이번에는 닫은 창가로 날아와 울었다. 부스럭 소리도 내고 벽에 부딪히는 소리도 냈다. 급기야 아내가 이불을 걷어차고 달려가 창을 열고 “훠이, 훠이” 하고 쫓아버렸다. 깜짝 놀란 놈들은 하늘 높이 날아 뒷산 숲속으로 달아나버렸다. 아침잠도 없는지 놈들은 새벽부터 날아와 우리의 달콤한 잠을 망쳐버렸다. 그 뒤로도 놈들은 다시 창가로 날아와 몇 번인가 울어대다 사라졌다.

‘꽉꽉꽉 짹, 꽉꽉꽉 짹’ 오늘도 어제의 불청객이 아침부터 소란을 피웠다. 붉은 부리에 검은 머리 그리고 비둘기만한 크기로 검푸른 깃털이 눈부신 이름 모를 새였다. 오늘은 작심을 한 듯, 한 놈은 전봇대 위에 진을 치고 다른 놈은 전깃줄 위에 앉아 울었다. 무엇인가 갈구하는 듯 우리 집을 향한 시선이 비장했다. 한 놈이 솟구쳐 날아오르면 다른 놈은 창가로 날아와 벽을 붙들고 바스락 거리며 울었다. 그리고는 교대를 했다. 창가에 앉았던 놈은 감나무 위로 날아가 흔들리는 가지 위에 위태롭게 매달리고 다른 놈이 다시 창가로 날아와 울었다. 집요한 울음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들리는 소리가 달랐다. ‘스그럭, 스그럭’ 얇은 쇠붙이를 긁는 소리였다. 그때서야 놈들의 필사적인 울음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놈들이 번식을 위해 둥지를 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집은 북쪽으로 주방과 연결된 작은 창이 하나 있다. 그 창 옆으로 가스레인지 위 송풍기와 연결된 지름 10센티미터의 스테인리스 배기관이 벽을 뚫고 밖으로 나있다. 봄이 되면 이따금 작은 새들이 찾아와 그 배기관 속에 둥지를 틀려고 부스럭 거리다가 우리에게 들켜 쫓겨났다. 그때는 참새만한 아주 작은 새들이었는데 이번에는 그 배기관에 꽉 들어찰 만큼 큰 새들이었다. 놈들이 그 속에 둥지를 틀면 큰일이었다. 요리할 때 음식 냄새를 배출하는 배기관이 막히기 때문이다. 놈들의 속셈을 알아차린 이상 나는 내 둥지를 필사적으로 지켜야했다. 놈들이 다가와 시끄럽게 울어대면 “훠이 훠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 배기관 속으로 들어가면 벽을 손바닥으로 ‘탕탕’ 두드리고 창문을 ‘쾅쾅’ 닫았다 열었다 했다. 갑작스런 반격에 놈들은 기겁을 하며 날아갔다. 하지만 놈들도 그들의 둥지로 점 찍어둔 그 배기관을 쉽게 포기할 수 없었는지 다시 날아와 울어대고 벽을 붙들고 부스럭거렸다. 그 때마다 나는 나의 둥지를 지키기 위해 놈들을 위협하여 쫓아버렸다. 놈들과 나의 둥지를 사이에 둔 신경전이 벌어진 것이다.

‘꽉꽉꽉 짹, 꽉꽉꽉 짹’

‘까아악 깍, 까악 깍’

한참 후에 앞마당이 별안간 소란스러웠다. 나에게 쫓겨난 놈들이 새로운 둥지를 위해 까치와 운명을 건 싸움을 하고 있었다. 서로 솟구쳐 오르다 상대를 부리로 쪼고 또 몸을 비틀어 날카로운 발톱으로 상대의 가슴팍을 후려쳤다. 빠진 깃털이 바람에 낙엽처럼 흩날리고, 처절한 울음소리가 마당을 가득 채웠다. 둥지를 차지하기 위한 이종(異種) 간의 치열한 다툼이었다.

해마다 1년에 몇 번씩 우리 앞마당 소나무 밭에는 십여 마리의 까치들이 모여든다. 주변에 둥지를 튼 놈들일 것이다. 그들이 아침부터 집단 난투극을 벌인다. 대부분은 이 가지 저 가지에 걸터앉아 시끄러운 소리만 ‘까악 깍’ 질러대는 구경꾼이지만, 대여섯 마리는 치열하게 싸움을 한다. 그들의 영역과 둥지를 두고 벌이는 집단 패싸움이다. 서로 쪼고 할퀴며 공중전을 벌이다 두 놈이 서로 뒤엉킨 채 땅위로 떨어져 나뒹군다. 날개를 엉거주춤 펼쳐들고 목주위의 깃털을 곧추세운 채 부리로 서로를 사납게 쪼아댄다. 부리에는 하얀 거품에 빠진 털이 덕지덕지 달라붙고, 털이 빠진 몸통에서는 검붉은 피가 흘러내린다. 아비규환이다. 이렇게 혈투를 벌이다 승부가 갈리면서 패자가 도망을 친다. 그러나 승자는 결코 아량을 베풀지 않는다. 도망가는 놈을 쫓아 마지막 치명타를 날리며 완전한 승리를 확인한다. 후환을 없애는 것이다. 다음에라도 패한 놈이 다시는 자신과 자신의 둥지를 넘보지 못하게 확실하게 승리를 확인하는 것이다. 아침부터 시작한 처절한 싸움이 해가 지는 저녁이 되어서야 끝이 난다. 그렇게 승리를 쟁취한 놈이 우리 앞마당 소나무 밭 위의 높다란 둥지를 차지하고 주변을 호령한다. 어느 누구의 접근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 처절한 전투를 거친 백전노장 까치와 나에게 쫓겨난 혈기왕성한 한 쌍의 새가 영역과 둥지를 걸고 앞마당에서 또 한바탕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기란 쉽지 않은 것 같았다.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퍼덕거리는 날개 짓으로 보아 싸움은 대단한 듯 했으나 쉽사리 승부가 갈렸다. 놈들은 천적까지도 물리친 까치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자신의 둥지를 사수한 까치의 득의양양한 울음소리는 앞마당을 가득 채우고 왕성한 혈기로 도전장을 내밀었던 놈들은 아쉬운 울음소리만 남기고 사라졌다. 치열했던 둥지전쟁은 끝나고 까치둥지에도 다시 평화가 깃들었다. 앞마당에서도 뒷마당에서도 팽팽했던 긴장은 사라지고 한동안 평화가 공존할 것이다.

싸움이 끝난 뒤로도 사라진 놈들이 두어 번 다시 나타났다. 전처럼 요란하지는 않았지만 울음소리에 아쉬움이 묻어나는 듯 들렸다. 둥지전쟁에서 패한 것이 놈들에게는 커다란 좌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련을 떨친다는 게 어찌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놈들은 지붕위로 날아올라 두어 바퀴를 돌다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쓸쓸히 떠났다. 그러나 좌절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놈들은 어디선가 자신들의 둥지를 위해 새로운 도전을 되풀이할 것이다. 그렇게 마련한 둥지에서 알을 낳고 부화해 자신들을 빼닮은 귀여운 새끼들을 기를 것이다. 둥지를 위해 싸워야만했던 치열함을 내려놓고 부모로써 애틋한 정을 아낌없이 쏟아 부을 것이다. 자신의 둥지에서 사랑스러운 새끼들과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둥지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