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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고지연
ㆍ작성일	2010-06-05 (토)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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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후회
그녀의 후회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고 지연

그녀는 열여덟 꽃다운 나이에 세 살 연하의 남편에게 시집을 왔다. 먼발치에서 본 어린 신랑감이 듬직해 보여 그렇게 꽃가마를 타고 시집을 온 것이다. 어린 신랑은 도시로 공부하러 나가고 본가에 홀로 남은 신부는 매운 시집살이를 온몸으로 버텨나갔다. 그녀는 대종가의 맏며느리로서 그 큰살림과 꼭 아들을 낳아야 하는 숙명을 안은 채 공부하러 떠난 남편이 하루빨리 돌아오기만 기다리며 살았다. 그러기를 몇 년, 그녀는 마침내 큰아들을 낳았다. 시어머니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그녀 역시 온 세상을 얻은 것만 같았다.
이듬해 그녀의 위치를 더 굳건히 해줄 둘째아들도 얻었다. 하지만 시어머니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세상의 모든 아들을 다 가져야 직성이 풀리기라도 할 듯 또다시 아들을 재촉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뒤 딸만 내리 넷을 낳았다. 그러는 사이 그녀는 큰아이를 사고로 잃고 말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보다 그녀를 기다리는 고된 시집살이가 더 견디기 어려웠다. 남편은 직장생활을 시작했지만 본가에 남겨진 그녀는 남편을 따라가겠다는 말을 못하고 그렇게 집안을 지켰다. 아들 하나만으로는 집안을 지탱할 수 없다던 시어머니의 성화로 그녀는 또다시 아들 하나와 딸 하나를 더 낳았다.

시어머니는 병석에 누워 몇 년이나 대소변 심부름까지 시킨 뒤에야 비로소 그녀를 놓아주었다. 30년 세월을 보상이라도 해주듯 그녀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고 그녀의 남편 또한 그녀를 끔찍이 아껴주었다. 넘치진 않았지만 부족함도 없는 살림과 종가집의 안주인 역할을 충실히 해가며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오십을 조금 넘긴 그녀는 힘없이 쓰러졌다. 그동안의 모든 책임을 놓아버리기라도 할 듯 뇌출혈로 쓰러져 버린 것이다. 겨우 큰아들과 큰 딸만을 출가시키고 학업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5남매를 두고서……. 그녀는 다시 힘을 냈다. 남편의 지극한 보살핌과 자기 몸보다 더 아끼는 나머지 5남매 때문이었다. 하지만 병과의 기나긴 싸움은 그때부터였다. 퇴원과 입원을 반복하며 그렇게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녀의 나머지 5남매도 학업을 마치고 자리를 잡아나갔다. 남들은 그녀에게 복에 겨워 아프다고 했다. 매일 들일을 나가는 앞집 여자는 그녀를 시기했고, 그녀 역시 매일 팔팔하게 일을 나가는 앞집 여자를 더없이 부러워했다. 그녀는 막내아들과 막내딸 결혼식을 보고 죽는 게 소원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녀의 어린 딸은 그녀의 말에 가슴을 쓸어내리곤 했다.

그녀의 남편은 30년이 넘게 그녀의 병수발을 했다. 그녀가 긴 여행을 할 수 없는 탓에 혼자가기 미안하여 변변한 해외여행 한 번 가질 못했다. 그녀는 가지고 싶은 것도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많았다. 여러 번 의 뇌출혈 탓에 점점 어린애가 되어가는 그녀를 그녀의 남편은 알뜰히도 거두었다. 그녀의 병세는 항상 고만고만했다.

기나긴 병 수발과 장남으로서의 무거운 짐을 고스란히 져야했던 그녀의 큰아들은 어느 날 그 짐을 힘없이 내려놓고 하늘로 훠이훠이 날아가 버렸다. 그녀가 느낀 고통의 크기는 알 수 없다. 그녀는 어린아이가 떼를 쓰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 해맑게 웃었다. 그녀의 뇌는 선택적으로 작동했다. 괴롭거나 비난받을 일에는 모른 체했고, 하고 싶은 일은 또렷이 기억해 냈다. 그녀의 남편은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눈물을 뚝뚝 훔치며 꺼어꺼이 울었다.

그녀의 나이 여든넷, 사랑하는 남편을 큰아들 곁으로 보낸 지 두 해가 되었다. 나도 데리고 가라며 남편의 무덤 앞에서 울부짖던 그녀는 극심한 공황상태를 겪어야 했다. 그녀에겐 세 명의 자식이 있었다. 그녀는 팔남매를 낳았지만 딸을 자식처럼 생각지 않은 탓에 어린나이에 하늘로 보낸 아들을 빼고는 언제나 자식은 둘 뿐이었다. 두 아들과 남편을 먼 곳으로 먼저 보낸 지금 그녀의 자식은 하나다. 유일한 자식. 하지만 그녀는 딸들에게 매일 전화를 한다. 지난 가을 외출 중에 넘어져 하체를 못 쓰게 된 그녀는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다. 여생을 병원에서 지내야 할 것 같다는 딸의 말을 듣지 않고 빨리 퇴원시켜 달라며 하루가 멀다고 떼를 쓴다. 60이 다 되는 그녀의 큰딸은 그녀를 붙잡고 수백 번 말을 했지만 그녀는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몸이 좋지 못한 그녀의 큰딸은 쓰러지지 않는 한 이틀에 한 번 병원에 들른다. 그녀의 마지막 남은 아들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하루도 빠짐없이 그녀를 찾는다. 그녀의 셋째 딸은 온갖 일을 도맡아 하며 쌓인 스트레스를 그녀의 막내딸에게 쏟는다. 그녀의 막내딸은 가족들에게 말한다. 이제 그녀도 먼 길을 갈 수 있게 가족들이 놓아 주어야 한다고. 온갖 투정을 받아주기보다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보낼 준비를 하자고 한다. 나는 그녀가 서른아홉에 낳은 그녀의 막내딸이다.

엄마는 40년 가까이 병마와 싸웠다. 엄마는 젊은 시절 누구보다 가정에 충실했다. 완벽한 성격과 결벽증 때문에 철저히 혼자가 되었던 것이다. 술 한 잔 못하고 동네여자들의 수다가 싫어 늘 혼자만의 시간에 스스로를 가두었던 엄마는 철저히 남편과 자식에게만 의존한 채 점점 혼자서는 아무 것도 못하는 어린아이가 되고 만 것이다.
가끔 정신이 들 때면 엄마는 후회를 했다. 좀 더 세상 밖으로 나가 그들과 부대끼며 살 것을……. 그때는 종가집 맏며느리로 공직생활을 하는 남편의 아내로서 누구보다 모범이 되어야 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렴풋이 엄마의 회한을 알게 되었다. 완벽주의와 결벽증을 고스란히 빼닮은 나는 늘 나를 내 속에 가두었다. 평생 병마와 싸웠던 엄마는 어쩌면 스스로를 어둠 속에 꽁꽁 가두어 숨 막히게 절제하며 살았던 게 아니었을까.

(2010.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