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례 운조루(雲鳥樓) 공식 홈페이지 ▒

ㆍ작성자	전성권
ㆍ작성일	2010-09-27 (월) 20:07

ㆍ추천: 0 ㆍ조회: 2273

할머니와 어머니
할머니와 어머니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전성권

사무실 건물 5층에 KBS군산문화센터가 개소했다. KBS로서는 처음있는 사업인지라 접수에 약간의 혼선이 있어 우리 사무실에서 오프라인접수를 잠시 도와 드렸다. 개소식이 끝나고 어르신 두 분이 사무실로 들어오셨다. 접수해 준 덕택에 첫 강좌를 잘 받았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오신 분들이었다. 참으로 곱고 세련되게 차려 입으신 멋쟁이 어르신 두 분이었다. 자연스레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한 분께서 오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몸이 편찮으셔서 병원에 가서 접수하고 대기석에 앉아 계셨다 한다. 이윽고 간호사가 “할머니, 들어오세요.”라고 하더란다. 그러자 째려보며 '할머니가 뭐여? 어머니나 아주머니라고 하면 어디가 덧나나?'라고 혼잣말을 하셨단다. “이제 나이 70이 넘었으니 할머니는 할머니인데 그 말이 왜 그렇게 듣기 싫은 지 몰라.“라며 크게 웃으셨다. 그 말을 듣던 큰누나도 대화에 끼어들며 거들었다. 그 말씀을 듣고 엄마가 얼마 전에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다.

지금은 다리가 불편하셔서 산에 잘 가시지 않지만 작년 이맘 때까지만 해도 혼자서 등산을 자주 하셨단다. 어느날 산에 오르고 있는데 부자父子가 뒤따라 오고 있었단다.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들이 힘들어서 못 가겠다고 하니 그 학생의 아버지가 ”앞에 가는 할머니도 저리 잘 가시는데 넌 왜 못간다고 그러냐?“며 그 학생을 나무라는 소리가 들렸단다. 엄마는 그 소리에 거의 무의식적으로 돌아서서 ”내가 뭘로 봐서 할머니처럼 보여요?“라며 크게 혼내시고는 보란듯이 정신없이 정상까지 거의 달려갔다가 오셨다 한다. 엄마께서는 "내 손주 손녀들이 할머니라고 부르며 달려오면 그리 예쁘고 귀여운데 왜 남들이 할머니라고 부르면 짜증이 나고 부인하고 싶은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는 내가 나이들었다는 생각을 거의 해 본 적이 없다. 물론 산술적인 나이야 어쩔 수 없지만 내 마음의 나이는 항시 청춘이다. 주위의 시선이 있을 때나 가족들 앞에서는 제법 나이든 체한다. 하지만 혼자 있게 되면 청춘시절로 돌아간다. 주위 친구들이 나이를 먹고 앞머리가 하나둘 빠지고 귀 주위로 흰머리가 나더라도 나의 흰머리는 언제나 세치지 흰머리가 아니다. 행복한 착각이다. 내 주위는 세월에 장사없다고 긍정하면서도 내 자신은 강하게 부정한다. ‘너도 이젠 늙는구나’라는 말이 왜 이리 듣기 싫은지 모르겠다.

하물며 어르신들은 어떻겠는가. 가뜩이나 건강도 예전같지 않고 노인양반하면 사회에서 홀대하는 것 같아 애써 젊어 보이고 젊게 사시려고 부단히 노력하시는데 할머니할아버지라고 부르며 대우한다면 어떠실까. 가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하려고 하면 유독 마다하거나 오히려 불쾌감을 드러내는 노인들도 있다. 체력적으로도 젊은이를 이길 것 같고 마음은 항시 청춘이라 생각하시니 당연하다. 사회가 젊음과 외모만 중요시하는 사회가 되다 보니 더욱 그러리라.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초고속으로 2000년에 이미 고령화사회(1)로 접어들었고 2019년에는 고령사회로, 2026년에는 초고령화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측된다. 하지만 사회풍조는 어떠한가. 일단 영향력이 제일 큰 방송매체의 프로그램을 보자. 황금시간대에 방송하는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젊은이들 위주다. 그야말로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며 성형했다는 것을 무슨 자랑삼아 웃고 떠들며 사회적인 분위기를 몰아가는 것이 젊은이들이다 보니 나이 40만 넘으면 할매네 할배네하면 놀려대면서 낄낄거린다. 이러다 보니 연세 드신 어르신들을 아주 우습게 보는 젊음과 외모를 나날이 중시하는 이율배반적인 사회가 되어 버렸다. 이 와중에 노인들은 더욱 소외되고 냉대받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지 않은가.

나이가 들고 노인이 되는 것은 극히 자연적인 현상이다. 젊게 보이고 젊게 살려고 노력하는 어르신들을 뵈면 기분이 너무 좋고 고맙기까지 하다. 그 분들이 젊음을 포기하면 이 사회 또한 활력을 잃기 때문이다. 나이에 상관없이 제빵이나 요리사 자격증 등을 따려 하고 서예를 배우고 스포츠 댄스 등을 배우는 어르신들이야말로 더 이상 아름다울 수가 없다. 어르신들이 자격증을 따서 취업을 하거나 금전적으로 이익을 보려고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자격증을 꼭 획득하고 싶었던 원풀이를 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아니 행복한 착각속에서 영원히 젊게 살기 위한 방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분들께서 영원히 젊게 사시도록 말로라도 힘이 되어 드리자. ‘아버님, 어머님, 어르신, 선생님’ 참으로 좋은 말들이 많다. 젊게 살려고 노력하는 어르신들게 찬물을 끼얹어서는 아니 된다. 그 분들이 계셨기에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어르신들께서 항시 건강한 삶을 영위하시도록 우리 젊은이들이 각별히 신경써야하지 않을까.

(2010.9.27.)

註(1) 국제연합(UN)이 정한 바에 따라 정확히 말하자면,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이 전체 인구의 7% 이상을 차지하는 사회를 고령화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화사회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