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례 운조루(雲鳥樓) 공식 홈페이지 ▒

ㆍ작성자	김금례
ㆍ작성일	2010-09-27 (월) 19:01

ㆍ추천: 0 ㆍ조회: 3087

꿈의 날개를 달고
꿈의 날개를 달고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김금례

사람들은 세상에 태어나면 희· 로· 애· 락의 삶속에서 살아간다. 행복이란 무엇이며 행복의 기준은 어디에 있을까? 혼자서 자문자답해 본다. 유년기에는 부모님 슬하에서 부모님 뜻대로 살아가고, 소녀시절에는 공부를 하며 자기의 인생길을 개척한다.
나는 소녀시절 글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했다. 책을 읽으면 먼동이 트고 책을 읽다보면 그 주인공에 빠져 나도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꿈은 꿈으로 간직하며 ‘촌닭이 화려한 공작이 되리라’ 가슴 설레며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할 때는 모두 선남선녀다. 모두가 자기 팔자대로 산다지만 남자는 여자를 잘 만나야 행복한 삶을 영위할 것이다. 여자도 남자를 잘 만나야 하지만……. 하나를 더하여, 여자는 낯선 집에서 낯선 사람들과 지내다 보면 자신을 망각하면서 자식을 낳아 기른다. 남편의 존재 가치에 따라 여자의 운명이 결정되기도 한다.
결혼 2년에 접어들자 남편은 공무원이 싫다며 갑자기 사표를 내고 3년을 무직으로 보냈다. 나는 전셋집을 줄여 빈촌으로 이사를 했지만 어느 날 쌀이 떨어져 친정 부모님에게 돈을 빌리러 갔다가 어머니의 얼굴을 보는 순간, 어머니가 걱정하실까 봐 그냥 되돌아 왔었다. 집에 돌아와 뒤주에 붙어있는 쌀을 닥닥 긁어 씻어 놓고 찬장 문을 열었을 때 소고기와 반찬이 있었다. 3일만 고기를 먹지 않으면 누워있던 딸을 생각하여 어머니가 가져다 놓으신 것이었다. ‘어머니! 이젠 고기는 없어도 돼요. 쌀이 없는데요?’ 하면서 난생처음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시집을 보내고도 잊지 못하시는 어머니의 깊은 마음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지금도 그때가 떠오르면 가슴이 미어지고 아프다. 초년고생은 꾸어서라도 한다며, 고난은 인생을 정화시켜 주고 굳게 해준다고 했다. 그 뒤 서울, 광주, 부산, 성남으로 남편의 직장을 따라다니면서 지칠 줄 모르고 4남매 모두 대학을 졸업시키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삶의 소용돌이 속에서 세월에 쫓겨 살아오던 어느 날, 거울 앞에서 나는 깜짝 놀랐다. 흰머리를 새치라고 변명하고 싶지만 그건 분명 흰머리였다. 얼마 뒤 자녀들은 하나씩 부모의 둥지를 떠나고 나는 할머니가 되었다. 할머니 소리는 듣기 거북했지만 지금은 여유롭게 받아들인다.
자식들은 아파트로 이사를 하자고 하지만 ‘25년을 함께한 정들었던 집에서 살고 싶다’고 하자 추석에 낡은 대문을 새로운 대문으로 바꿔 주었다. 조상님도 좋았을 것이다. 이젠 나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도 없고 학비 걱정도 없다. 오히려 자녀들에게서 용돈을 받는다.
누가 인생은 60부터라고 했는가? 인생의 수갑을 푸는 때가 60이 되는가 보다. 68년 동안 부려온 육신은 자꾸 소리를 내지만 가끔 기름칠을 하면서 금요일이면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309호실에 들어선다. 나이를 잊은 채 김학 교수님 강의에 귀를 기울이며 메모를 할 때는 꿈 많던 문학소녀로 돌아간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학생이다.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 어린 학생처럼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
독서를 하면 지금도 나는 50년 전 학창시절로 돌아가 깊은 감명에 빠져 눈물을 흘리곤 한다. 글쓰기는 잊혔던 스승님과 학우들을 다시 만난 듯 즐거움이 샘솟는다. 책을 들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고픔을 잊는다. 친정할아버지는 부채로 더위를 달래며 글을 쓰셨고, 어머니는 우물 안에 담가둔 과일을 꺼내 드셨지만 나는 날씨가 더우면 에어컨 아래서 냉장고 안에 든 과일을 먹으면서 글을 쓴다.
학창시절에는 원고지에 글을 썼지만 지금은 컴퓨터에서 자판기만 두드리면 글씨가 되어 나타난다. 한없이 행복하다. 이젠 내가 가진 것이 너무 많아 하나씩 비우면서 살아야겠다. 지난날 살아오면서 가지려고 애를 섰던 마음을 멈추고 아름다운 글, 누가 읽어도 감동을 주는 진솔한 글을 쓰고 싶다. 다시 찾은 꿈을 향하여 머릿속의 녹슨 때를 글 수건으로 열심히 닦고 닦아 꿈의 날개를 펴련다.
(2010 9.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