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 전 3남매의 교육을 위해 정든 고향, 농촌 생활을 청산하고 수도권으로 이사하였다. 앞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환갑쯤 되면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려고 했어다. 부모님의 유산과 그동안 사 두었던 논과 산을 가꾸며 공기 맑고 인심 좋은 고향에서 선친의 유지를 따라 봉사하며 살다가 흙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작년 3월 말 정년퇴직 후 언제쯤 귀농할까 하던 차 평소 직장에 잘 다니던 둘째 아들이 도회지 생활에 염증을 느꼈는지 갑자기 부모님 고향에 충분한 농토가 있으니 농사를 지으면 어떨지 상의를 하였다. 농촌에 젊은이가 없어 농촌을 지킬 사람이 없다는데 앞으로는 농촌도 도시보다 더 높은 소득으로 윤택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 농사를 짓되 짐승만 기르지 않으면 3월부터 11월까지 9개월 동안 일하고 12월부터 2월까지 3개월은 쉴 수 있있다면서 기쁜 마음으로 허락했다.
아들이 도시생활만 했기에 농촌 CEO(최고 경영인)를 목표로 작년에 국립 농수산대학에 입학하였다. 금년에는 1년 예정으로 미국의 교민이 경영하는 50만평의 대(大) 농장에서 복합영농실습을 하는 중이다.
내년 봄 귀국하여 1년간 학교에서 더 농사 공부를 한 뒤 졸업하고 바로 농사를 지어야 하므로 나 만이라도 먼저 귀농하여 2년간의 준비를 해 주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금년 3월초 새만금이 있는 고향 부안으로 돌아와 같은 마을에 사는 여동생의 도움으로 우선 400평의 텃밭에 참깨, 들깨, 땅콩, 고구마, 옥수수, 방울 토마토, 가지 농사를 짓고 있다. 또 선영이 있는 약 2만평의 야산, 그중 7,500평에 3년 전 심어 놓은 감, 밤나무를 유기농으로 짓기 위해 이들 나무 성장을 방해하는 풀(잡초)을 여러번 깍고 빈 터에는 호박 모종을 30-40 구덩이 심어 호박순은 번창하였으나 이상 기온으로 열매가 거의 없어 실패하였다. 여동생은 늦 호박이 열릴 것이라 하니 기대해 보는 수밖에 없다.
시골집은 옛날 집이어서 헐고 텃밭으로 쓰고 있기 때문에 친지의 집을 무상으로 임대한 옛날 한옥(귀농하는 분에게 정부에서 500만원 범위의 무상 수리비를 지원)을 수리하여 사용하고 있다. 뒷산에는 소나무가 많고, 뜰안에는 대나무 밭이 있어서 참새와 여러 종류의 새들이 밤낮없이 지져귄다. 그러니 마치 별장에 사는 기분이다. 평소 걷기를 좋아하여 라디오를 벗삼아 포장된 시골길을 걷고 옛날의 향수를 달래며 때로는 고향을 소재로 한 시나 수필을 구상하기도 한다.
아들이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게 된다면 부안읍에 아파트를 구해주고 우리 내외는 새터에 한옥을 지어 살 계획이다. 현재는 집 사람이 손녀를 봐주고 있어서 같이 못 오고 혼자 외로운 농사짓기를 하니 절반은 시골, 절반은 애인 만나러 서울로 가는 반월(半月) 농부이고, 농한기인 11월부터 2,3월까지는 서울 생활을 해야 하는 반쪽 귀농이다. 서울에서 부안읍까지는 고속버스로 3시간 정도, 읍내에서 집까지 시내버스로 약 30분이 걸린다. 나는 고향에서 친척과 친지, 마을 어르신과 동네 후배들을 만나 옛날 얘기도 하며 즐겁게 살고 있다. 지난 3월부터 시골에서 생활하면서 느낀 점은 우선 향긋한 시골 냄새, 시원한 공기, 자영 영농이다 보니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내 건강에 맞는 만큼의 일을 하므로 밥맛이 좋아 식사를 잘하고 피곤하여 충분한 잠을 자니 건강에 아주 좋다.
퇴직한 뒤 직업이 없으니 서울에서는 아침 일찍 일어나 책을 읽거나 탤레비전 뉴스와 아침마당 (매일 애청, 인생의 축소판이라 생각)을 보고 나면 할 일이 별로 없었다. 실업자의 유일한 친구는 텔레비전 시청이고 때로 집에서 5분 거리인 낙성대공원이나 관악산 등산, 책 읽기가 평소의 일과였다. 가을에는 인근 산에 가서 산밤 줍기, 가로수에서 떨어진 은행 줍기가 유일한 운동법이었다. 이 생활이 오래되면 무력증이 되어 건강을 해칠 염려가 있었다. 주1회 취미 생활로 관악문화원 문학반에서 공부하면서 수강하시는 분들과 교제하고 매달 한두 번 친구를 만나 세상 살아가는 얘기를 나누고, 주일날이면 교회에 가는 일이 전부였다.
30년 전 고향에서는 드넓은 평야에서 논농사가 주 수입원이었는데 인력으로 영농을 했기에 힘든 작업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경지정리가 잘 되어 기계화영농을 하고 있다. 최소의 인원으로 최대의 수확을 올릴 수는 있으나 쌀값이 낮기 때문에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아 농민들의 고통이 크다. 밭농사는 오디(뽕나무 열매), 고추, 양파, 마늘, 담배 등이 고 소득원이지만 노동력이 부족하고 인건비가 비싸며 밭이 소규모여서 대량으로 생산할 수 없는 게 흠이다. 과일농사는 장기간 기다려야 수확과 소득이 이뤄지며 일손이 많이 필요하고 인건비 때문에 수지타산 맞추기가 어렵다. 소나, 돼지, 닭 등 가축사육은 무서운 유행성 전염병 때문에 위험부담이 크다.
농촌에서는 주 부식이 자체 생산되고 내가 먹는 것은 되도록이면 농약을 아주 적게 뿌리니 신선하고 생활비 역시 도시보다 훨씬 절약 된다.
우리 고향 마을은 벼 못자리나 밭농사 모종을 옮겨 심을 때는 온 마을 사람들이 공동 작업을 하면서 동네 소식을 듣고 웃기는 얘기를 잘하는 사람이 농담을 하면 서로 웃으며 즐겁게 농사를 짓는다. 여름에는 *모정(矛亭,또는 정자)에서 정오부터 2,3시까지 에어콘이나 선풍기 없이 자연풍을 쐬며 휴식을 취한다. 농한기에는 마을회관에서 주로 주부들이 모여 48페이지 동양화를 넘기면서 즐기고 옆에서 구경하면서 점심도 같이 먹기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 저녁 식사 무렵 각자 집으로 돌아간다. 1년에 한 번쯤 마을 사람들이 함께 관광버스를 대절하여 유명한 관광지를 다녀온다. 유두절(음력 6월 보름)은 농촌의 오랜 전통인 중간 명절이라서 온 마을 사람들이 모정에 모여 여름철 보양식인 삼계탕에 막걸리와 맥주, 소주를 마시고 수박 등 과일을 나눠 먹으며 하루를 신나게 보낸다. 이때 면장과 농협조합장, 군의원이 마을마다 선물(주류, 음료수 등) 꾸러미를 가지고 오셔서 주민과 대화를 나누며 애로 사항도 듣고 함께 즐기다 가는데 이는 옛날에 보지 못했던 좋은 예라 생각된다.
또 시골에도 생활이 넉넉해지니 면(面), 군(郡)에 산악회가 많다. 그 산악회는 매달 1-3회 정도 전국 방방곡곡 관광지를 저렴한 비용으로 찾아가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어 행복하다.
요즘 시골에서도 문화원, 예술회관, 주민자치센터, 수영장, 체육관 등을 운영하면서 얼마든지 건강과 문화, 취미 생활을 할 수 있고 마을회관에는 운동기구가 비치되어 있어서 본인만 부지런하면 운동도 마음대로 하고 노인건강대학에서는 에어로빅, 가요, 민요 등도 마음껏 배울 수 있다. 나는 1주일에 두세 가지 취미생활과목을 수강하고 있다. 무료 영화상영, 공연 등이 주로 야간(19-21시)에 있어서 관람하기 힘들지만 읍 소재지 인근이나 자가용을 가진 분들은 모두 무료 관람이 되니 시간 보내기 좋은 게 시골생활이다. 많은 도시민들이 농촌생활을 옛날과 비교하지만 옛날과는 크게 다르다. 농촌에도 의료기관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오지를 빼고는 어느 곳이든 1시간 거리 안에 큰 종합병원이 있어서 큰 걱정은 안해도 좋다.
나 같은 반쪽 귀농인의 소견으로는 은퇴 후 연금 월 100만원 정도, 전 재산 2~3억원 정도면 고향으로 귀농하여 살면 좋을 것 같다. 택지구입시 도로변이나 마을은 평당 5~20만원, 주택 건축 시 양옥은 평당 250~300만원, 텃밭은 2~400평 정도 평당 3~8만원 정도에 구입하여 갖가지 부식재료를 심어, 내외가 먹고 남으면 자녀들이 시골에 올 때 한 아름씩 안겨주거나 또는 택배로 송부할 수도 있다. 운동 삼아 하는 농사는 건강에도 좋다. 교통 문제는 농촌에 버스가 자주 없으니 소형 승용차 또는 오토바이나 자전거 등을 구입하여 사용하면 된다. 형편이 이에 못미처도 우선 고향으로 돌아와 동네마다 빈집이 몇 채씩 있으니 이를 무상으로 임대(빈집 수리비 정부 무상지원)하고 한두 해 살다보면 연로한 노인들이 짓다가 그만둔 논밭 임대가 가능하니 운동 삼아 하는 텃밭 정도 농사는 가능하니 건강에도 아주 좋다.
우리나라 실정으로 보아 수도권 집중현상이 심한데 농촌에도 도시 못지않게 문화 및 건강생활을 하는데 별 차이가 없다. 은퇴한 분들 중에 혹 귀촌이나 귀농을 생각한다면, 고향이면 더 좋고 친지나 친족이 있는 시골로 오셔서 지방자치단체의 큰 어려움인 시, 군의 농촌 인구 증가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공기도 맑고 교통 스트레스와 경제적 어려움이 적은 농촌으로 돌아와 노후생활을 즐기라고 권하고 싶다.
* 모정(茅亭,정자) : 경치 좋은 곳에 놀거나 쉬기 위하여 지은 집, 벽이 없이 나무 판자 바닥이 있고 지붕 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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