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온 전화였다. 정기적으로 받던 자궁암검사에서 이상 세포가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순간 모든 것이 멈춰 버린 듯 먹먹했다. 잘못 들은 게 아닐까도 생각했다. 일주일 뒤에 바이러스 검사까지 받았다. 양성 반응이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다. 몸이 부실하여 아이 둘을 모두 제왕절개로 출산할 때 정기적인 검사로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말이 있었다. 그 뒤 늘 관심을 갖고 검진을 했으나 20여 년이 넘도록 아무 이상이 없었다. 정기 검사는 그냥 의례적인 절차로만 생각했었다.
며칠은 아무 생각도 없었다. 가족들도 걱정이 태산이었다. 마음이 산란했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글도 써지질 않았다. 이렇게 내 인생이 끝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우연히 낮에는 잘 켜지 않던 TV를 보게 되었다. 수원에 있는 oo대학 병원 종양학과 어느 여교수가 소개되었다. 주로 여성암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의사였다. 그녀의 특별한 치료 방법으로 많은 환자들이 새 삶을 찾았다는 보도였다. 약물과 방사선 치료와 더불어 식이요법과 불가(佛家)의 참선을 추가하고, 걷기 운동을 병행하여 암의 치료에 좋은 효과를 보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나도 저렇게 해 보자. 나의 전공은 식품 영양학이 아닌가!’ 하고 두 주먹을 굳게 쥐었다.
의사가 암에 도움이 된다고 소개한 음식은 가지와 소고기, 죽순과 들깨 가루였다. 그동안 서재 한구석에 방치해 놓았던 전공 서적을 찾아보았다. 여교수가 제시한 식품들은 전부 항암에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가지 속에 함유 된 보라 빛깔의 안토시아닌(Anthcyanin) 색소와 폴리페놀(Polyphenol) 성분은 항암 작용이 뛰어나며, 가지 특유의 알카로이드(Alkaloid) 성분은 난소암 세포의 증식을 억제한다. 소고기의 단백질은 그 역할을 도와준다. 죽순의 섬유질은 변비나 대장암 예방에 효과가 높고, 초조하고 걱정이 많을 때 신경을 안정시켜 준다. 들깨 가루는 불용성 식이 섬유를 많이 갖고 있어 체내의 발암물질과 결합하여 제거해 주며, 들깨 속의 플라보노이드(Flavonoid)는 발암 물질에 의한 돌연변이를 억제한다. 한마디로 육체와 정신을 안정시키고 강하게 해주는 음식들이었다.
바로 가방을 메고 마트로 향했다. 방송에 소개된 재료들을 사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나만 텔레비전을 본 것이 아닌가 보았다. 죽순도 가지도 동이났다. 할 수 없이 똑같이 안토시아닌 색소를 많이 갖고 있는 블루베리와 포도, 소고기를 샀다. 그리고 내가 친환경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산으로 갔다. 가지와 호박, 고추를 땄다. 그날 이후 석 달 동안 나는 보라색 음식과 과일을 집중적으로 섭취했다. 가지, 포도, 체리, 블루베리를 주로 먹었고, 퇴비만 주어 내가 직접 키운 채소나, 유기농 식품만을 조리해서 먹었다.
매번 같은 재료의 음식을 먹기는 지루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요리를 했다. 가지를 찜솥에 쪄서 무치기도 하고, 얇게 썰어 프라이팬에 부쳐서 양념에 버무리거나, 토막 낸 가지의 끝부분은 그대로 두고 윗부분을 열십자로 잘라 그 속에 다진 소고기를 넣어 쪄서도 먹었다. 가지 무침에 생수를 부어 냉국도 만들었다. 죽순은 체로 쳐서 볶다가 들깨 가루와 버무려 요리를 했다. 하루에 한 번은 된장국을 먹고, 후식으로는 보라색 과일을 먹었다. 그리고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려 노력하고, 불경을 들으며 내 안의 나를 들여다보았다. 틈나는 대로 운동화를 신고 집 둘레를 산책하고 신선한 공기를 마셨다. 모든 것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2차 검진을 했다. 결과는 정상이었다. ‘아’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담당 의사도 기뻐해 주었다. 항암에 좋은 보라색 음식만 먹었다고 말하니 잘했다며 웃었다. 늘 노력하는 사람이어서 좋은 결과가 있을 줄 알았다며 격려도 해 주었다.
3개월 뒤 확인 검사를 한 번 더 해야 한다. 다음에도 정상 판정이 나오길 기대한다. 오늘도 내 밥상에선 보라색들이 잔치를 벌인다. 나를 다시 웃게 해 준 보라색 음식에 신비로움을 느끼며 고마움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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