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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이애란
ㆍ작성일	2010-10-09 (토)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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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봐 준다는 것
바라봐 준다는 것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이애란

베란다에 있는 난초가 꽃을 피웠다. 난초뿐 아니라 올망졸망한 작은 나무들도 꽃을 피웠다. 나는 꽃을 잘 돌보지 못한다. 꽃을 보면 사랑스럽고 예쁜 모습이어서 행복하지만 꽃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곱게 잘 가꾸지는 못한다.
엄마는 꽃을 좋아해서 친정에 가면 정원에 꽃이 가득하고, 집안에 들어가도 화분들이 많다. 그 많은 화분들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하나같이 다 건강하고 싱싱하다. 친정에 가면 엄마는 날 보자마자 내가 안부를 묻기도 전에 꽃이 얼마나 예쁜지 좀 보라고 성화다. 엄마는 사람보다 꽃을 더 좋아하는 게 아닐까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나는 꽃만 바라보지 말고 사람을 많이 만나는 게 더 낫지 않느냐면서 무성의하게 예쁘다고 말하곤 한다. 땅에서 살면서 사람에게 의지하여 사는 화초들이 엄마에겐 사랑스러움이기도 하고 안쓰러움이기도 한 것 같다. 땅이 메마르면 당신이 목마른 것 같이 답답해서 참을 수 없다며 얼른 물을 줘서 항상 촉촉하게 보살핀다. 하루 종일 바라보고 있어도 심심하지 않다니 엄마에게 화초들은 친구 그 이상인 것 같다.
얼마 전 우리 집에 부모님이 오셔서 한 달 가량 같이 살게 되었다. 우리 집엔 아주 작은 정원과 누군가 선물해 준 화분이 여러 개 있다. 그 동안에도 나무들은 잘 자라고 있었지만 엄마가 우리와 함께 머문 한 달 사이에 달라졌다. 집에 있던 모든 화초들이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내가 키울 때는 물을 자주 주는데도 생기가 없었다. 신기하게도 엄마가 돌보기 시작한 뒤로는 화단의 모습이 달라졌다. 그래서 엄마와 내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엄마가 꽃을 가꾸는 행동을 지켜보았다. 나와 크게 다른 건 없어보였다.
그러다 두 분은 본가로 들어가시고 화분들은 다시 내 차지가 되었다. 나무들은 다시 빛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 틈날 때마다 나무들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나무들이 뭘 필요로 하는지 보이기 시작했다. 언제 나무들이 물을 필요로 하고, 그늘이 필요한지 알 것 같았다. 몇 달 동안 그렇게 나무들이 원하는 것을 맞춰 주었더니 나무들이 나에게 보답을 하듯이 여기 저기 작은 꽃망울을 맺기 시작했다. 잎들도 생기발랄한 모습이 되었다. 난 하루에 몇 번 씩 지켜보기만 했을 뿐인데도 나무의 필요에 맞게 돌봐줄 수 있었다.
나무를 돌보는 건 사랑이었다. 그 사랑이 크고 어려운 게 아니었다. 나무를 봐주기만 해도 그의 필요를 느끼는 건데 그동안 나는 잠깐의 시선조차도 주질 않았던 것이다. 이제까지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약간의 의무감과 귀찮음을 참으며 물을 주기만 했다. 그런데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봐주는 작은 사랑에 나무들은 내게 예쁜 모습으로 보답을 해 주었다.
어떤 심리학자가 했다던 실험이 생각난다. 그는 똑같은 상황의 두 그루의 나무를 심고 영양분과 물은 똑같이 주었다. 한 그루 나무에겐 사랑과 칭찬이 담긴 따뜻한 말을 하며 보살피고 다른 한 그루에게는 아주 형편없는 비난의 말을 하며 키웠다. 시간이 흘러 사랑을 충분히 받은 나무는 정말 멋진 나무가 되었지만 그렇지 못한 나무는 성장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한다. 가볍게 듣고 잊었던 말이 불현듯 생각난 건 내가 나무를 돌보며 정말 그럴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든 때문이다.

나는 생기를 되찾은 나무들을 보며 사람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했다. 세상에 지치고 힘든 이라 할지라도 누군가 바라봐 주기만 해도 생기가 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의 만남 속에서 살게 마련이다. 소중한 만남들을 귀찮다거나 불편하다는 사소한 이유 때문에 잃어버리기도 하고 상처 입히기도 한다. 내 할 일만이라도 잘하고 살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이웃을 지켜봐주지 못하고 지나치는 일도 많다. 누군가 들어줬으면 하는 상대방의 목소리조차도 들으려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사랑이란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저 따뜻한 애정을 가지고 바라봐 주는 것이 곧 사랑이었다. 이렇게 쉬운 일을 모두가 한다면 세상이 얼마나 더 따뜻하고 아름다운 곳이 되겠는가. 사람과의 만남에서도 내가 나무를 바라본 것처럼 작은 사랑을 나누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201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