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례 운조루(雲鳥樓) 공식 홈페이지 ▒

ㆍ작성자	송병운
ㆍ작성일	2010-11-09 (화) 17:52

ㆍ추천: 0 ㆍ조회: 2728

올레길에서 만난 사람
올레길에서 만난 사람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목요야간반 송병운

바닷길이었다. 눈을 들어보면 예쁘게 이어지는 파도와 작은 섬들. 그러나 늘 보던 바다는 아니었다. 여느 바닷가처럼 시원한 바람과 아름다운 경치가 펼쳐지고 있었지만 유달리 사랑이 있고 미소가 숨 쉬는 길이었다.

제주도 출장 중에 짬을 내어 올레길 중에 가장 아름답다는 7코스를 걷게 되었다. 올레길은 본래 제주도 주거 형태 때문에 생겨난 제주도만의 독특한 골목길 모습으로, 그 뜻은 마을의 큰 길에서 집의 대문에 이르는 좁은 골목길을 의미하는 제주도 방언이라고 한다. 이제는 일부러 멋지게 개발한 총 22개 코스가 있는데, 제주도 둘레를 잇는 정규 코스 17개와 섬 등 비정규 코스 5개로 이루어졌으며 357㎞정도나 된다고 한다. 계속해서 새로운 길이 만들어지고 있다니 얼마나 멋진 코스가 더 생길지 기대가 된다. 요즈음에는 전국적으로 유행처럼 걷기문화와 연결된 길들이 만들어 지고 있어 신선하다. 전주 주변의 ‘아름다운 순례길’이나, 지리산의 ‘둘레길’도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길 중 하나다.

대개 길은 멋진 곳이 있는가하면 평범한 길도 있다. 그러나 7코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감탄을 자아내는 풍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다른 관광지를 가지 않고 올레길을 택한 것, 특히 7코스를 고른 것은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레꾼들이 한결같이 7코스를 추천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총 16.4km의 길이 어느 한 곳도 지루하다거나 평범하지 않아 내내 기분 좋고 평안하였다. 경치의 아름다움 못지않게 주변의 나무나 풀 한 포기마저도 정감이 넘치는 가을 하늘의 뭉게구름이었다.

시간만 허락한다면 7코스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걷고 싶은 욕망이 일었다. 우리의 삶속에서 내가 가는 길도 늘 이처럼 아름답고 신나는 길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쉽게도 기쁨과 아픔의 길이 함께 엮어지는 것이 인생길이 아니던가. 나의 삶 역시 두 길이 섞여있는 복잡한 여정이었고, 앞으로도 거의 비슷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운 길보다는 편안한 길만 걷고 싶다는 이기적인 생각이 자꾸만 나를 앞서간다. 이게 인간의 본능일까 아니면 나의 부족한 인격 때문일까.

기쁘게 여행을 하다보면 생각지도 않은 일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올레길에서 반가운 일행을 만났다. 17세 이하 태극낭자 축구단이었다. 아마도 월드컵우승에 대한 축하로 가족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시켜주는 것 같았다. 미처 몰라보고 지나치는 사람도 있고 알아보고 환호와 축하를 해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특히 최고의 스타였던 여민지 선수가 단연 인기를 끌었다.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성인 팀에 가서도 세계적인 스타가 되라고 했더니 꼭 그러겠단다. 그러나 사람들이 여민지만을 환호하는 바람에 다른 선수들과 부모에게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일부러 전라도 출신인 삼례 한별여고의 김빛나 선수를 불러내어 사진을 찍기도 하였다.

약간은 지치고 목이 마를 때쯤 그늘 밑에서 과일을 파는 아줌마를 만나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조금 있으니 한 여자가 왔다. 우리와 똑같은 과일을 사먹으며 이마의 땀을 닦던 여인. 살포시 호기심이 일었다. 간편한 배낭과 카메라를 목에 걸고 있었으며 피로함보다는 행복함과 즐거움이 묻어있었다.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수원에서 혼자 왔단다. 수원은 아내의 고향이라 더욱 호감이 갔다. 요즈음엔 혼자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떠날 수 있다는 용기가 차라리 부러웠는지 모르겠다. 낭군님이 혼자 가도록 허락해주더냐는 장난스러운 질문에 대답대신 미소로 답하였다.

인간은 언젠가는 혼자 떠나야 되는데 떠나는 연습을 하는 것일까. 외롭고 때론 두렵기도 하련만 오히려 행복해 보였다. 가끔씩 나도 그런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지만 아직 실천에 옮겨보지 못하였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살다보니 그렇게 됐다. 혼자 여행가겠다고 하면 아내는 흔쾌히 응해줄까. 아니 아내가 혼자 여행을 떠난다면 나는 어떤 마음일까. 언젠가는 모든 것을 팽개치고 꼭 그런 여행을 해보고 싶다. 진짜 즐거운 여행이 무엇인지, 인생길이 무엇인지를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만 같다.

그녀의 편안하고 잔잔한 미소가 가을날의 억새처럼 내 마음에 살포시 아른거린다. 그리고 올레길의 멋진 경치와 어우러졌던 그 바다가 또 보고 싶어진다.

( 2010. 11.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