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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최정순
ㆍ작성일	2010-12-30 (목)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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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보인 날의 풍경
속 보인 날의 풍경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최정순

병원에 가기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 진료를 받든, 입원을 하든, 예방접종이나 무슨 검사를 하든지 간에, 때로는 문병조차 가기 싫은 곳이 바로 병원이다. 그런 나에게 건강검진을 받으라는 통보가 왔었다. 이렁저렁 미루다가 벼랑 끝 12월말에 와서야 병원 문을 두드렸다.
점심시간인데도 대기실에는 많은 사람이 앉아있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돌아왔다. 갑자기 환자가 된 기분인데 간호사가 취조하듯 이것저것 묻기에 나는 차근차근 대답했다. 그리고는 피검사를 마치고 검사날짜와 환자가 조치 사항이 적힌 쪽지랑 미리 먹어야 할 약을 받아가지고 돌아왔다.

대장내시경을 몇 번 해봤지만 2~4리터의 물에 장세척제인‘코리트산'이란 가루약을 타서 1시간 내에 마셔야하는 일이 어려웠다. 물 한 컵도 벌컥벌컥 들이키지 못하는 내가 쌀뜨물처럼 뿌연 물을 마시자니, 사약을 마시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던‘장희빈'이란 사극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라 장세척물이 마치 사약처럼 보였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렇다고 아니 마실 수도 없었다. 신령한 생각을 해야 할 판에 방정맞은 생각을 하다니 눈을 질끈 감고 물 한 컵을 단숨에 들이켰다. 역겨운 입맛을 갈아 앉히려고 얼른 박하사탕 한 알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는 두 컵 세 컵을 연신 마셨다. 죽을 힘을 다하여 물을 마시고는 어찌나 지겨웠던지 물통을 훌떡 던져버렸다. 그러고 나니 올챙이처럼 불룩해진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를 내며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맑은 물이 나도록 깨끗하게 빤 빨래처럼 속을 씻어낸 나는, 밑이 터진 훌렁한 바지를 입고 도마에 오른 새우처럼 다리를 접고 침대에서 옆으로 누웠다. 만좌중에 심판이라도 할 셈인가. 모니터가 사방에 놓여있었다. 나도 내 속을 들여다보라는 듯이 내 코앞에도 모니터가 놓여있었다. 도망칠 힘도 없는 내 팔에 수갑을 채우듯 링거를 꽂고는 생포라도 할 듯이 마취주사까지 놓았다. 점점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몸이 갈아 앉았다. 그런데 웬일일까. 몇 초나 지났는지 정신이 다시 초롱초롱해졌다. 드디어 나를 신랄하게 재판할 의사와 간호사가 실뱀 같은 레이저로 내속을 휘젓기 시작했다. 코앞에 놓인 모니터로 적나라하게 내 속이 들여다보였다. 만감이 교차되는 순간이었다.

아득한 옛날이야기다. 내 손으로 닭을 잡아본 기억이 되살아나 그때 죽은 닭이 행여 내가 아닐까하는 엉뚱한 생각까지 떠올랐다.
나는 이렇게 닭을 잡았다. 숫돌에 번쩍번쩍하게 간 칼로 닭의 배를 갈라놓고서 간, 염통, 콩팥, 쓸개, 모래주머니를 차례차례 들어냈다. 알주머니에는 대추만한 노란 알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창자를 꺼내어 칼끝으로 무명천 자르듯이 쭉~~쭉 갈라서 굵은 소금으로 싹싹 문질러 씻었던 기억이 떠올라 나를 만감의 도가니 속에 가두어 버렸다.
무엇을 얼마나 걷어 먹었기에 이런 변(變)을 치르는 걸까. 식성이 촌스런 탓에 김치와 시래기에 된장과 고추장 그리고 푸성귀를 먹은 일이며, 흰쌀밥을 고집한 죄밖에는 없는데 말이다. 이런 일을 안 하고 살 수는 없는 걸까. 푸념 섞인 말로 합리화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사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

얼마쯤 지났을까. 의사의 손놀림에 따라 오른쪽, 왼쪽, 바르게, 오른발을 왼발위로 올리라는 등 자세를 바꿔가며 혹여 덜 씻긴 오물에 숨어있는 복병을 찾으려고 내 몸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졌다. 내시경이 가슴팍까지 올라온 기분이었다. 여직 말 한마디 없던 의사는 모니터를 멈춰 놓고서 여기가 맹장부분이라 일러주었다. 나는 의학적인 용어는 단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는 문외한이다. 그런데도 의사와 간호사의 말투와 표정을 보고서 나는 짐작할 수 있었다. 갑자기 밑이 시원해지더니만 실뱀 같은 레이저 선은 제몫을 다했는지 빠져나가고 의사선생님은 이제 끝났다면서
“깨끗합니다!”
라는 말을 남기고는 내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수술실을 빠져나갔다.

참으로 긴 송사였을까. 변호사도 없이 마음을 졸이고 조인 외로운 재판이었다. 무죄라고 혐의를 벗은 피고인이 법정의 문을 턱! 열고 나오는 기쁨이 이러했을까.

(2010년 12월 27일 대장내시경 하던 날)